하울의 움직이는 성 - 마법과 경이,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호평과 악평과 중평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가운데 관객수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어제 드디어 봤습니다. 당초 '인크레더블'과 '오페라의 유령' 감상 포스팅을 먼저 할 생각이었지만 그냥 이거 먼저 지릅니다. 생각나는 순서대로 써버리기로 결정!

일단 작품 자체에 대해서 말하자면, 재미있었습니다. 보는 내내 지루하지도 않았고 화면에 매료되어서 보았습니다. 단점도 많긴 했지만 왠지 상관없는, 솔직히 말하자면 아스트랄한 분위기의 작품이었지요; 그리고 자막은 보면서 좀 불만이 많았는데, 왠지 모르지만 작중에서 등장인물들이 서로 이름을 부분을 거의 다 생략해버렸더군요. '소피'라고 부르는걸 '할멈'으로 번역한다던지, '소피, 뭐뭐 해요'라고 말하는 부분을 '뭐뭐 해요'라고만 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자막도 글자수 제한이 있어서 그걸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글자수가 널럴해보이는 부분도 그렇게 번역한 이유는 의문입니다.(그냥 번역자 스타일일까요 역시)



자, 그럼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분이 듬뿍 함유된 이야기.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생각하는 '마법'과 '경이'를 화면으로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작품 전체에 그런 영상과 분위기가 가득하고,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최대규모였다는 제작비가 어디에 쓰였는지 확실히 알게 만들어주지요. 시작부터 하울의 성이 안개 속을 걸어 저편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저는 그것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말이 많았지요. 개연성이 전혀 없다는 평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이건 재미있게 보았다는 사람들도 인정하는 부분이었고요. 저도 재미있게 본 사람 중에 하나이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확실히 고개를 끄덕이고 싶습니다. 만약 '개연성이 전혀 없다'는 평을 미리 보고 애당초 그쪽으로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감상 포인트를 딴데로 날리지 않았더라면 저도 보는 내내 '대체 어째서?'라는 의문에 시달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보고 나면 제작진이(정확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렇게 외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겁니다.


내용을 알고 싶으면 원작을 봐 주세요★


아아, 상큼하도다. 너무나도 상큼하도다. '스토리'로 말하자면 하울은 정말 최악의 작품이라는 말을 들어도 할말이 없습니다. 정말 개연성이 하나도 없고, 캐릭터들은 납득할 수 없으며, 후반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허탈한 웃음을 흘리는 사람이 속출하지요. 제가 지브리 작품 중 '원령공주'를 보면서 '이거 제대로 생각은 하고 만든 거냐?'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한술 더 뜹니다. 정말 레벨이 높아요. 다 보고 나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묻고 싶어집니다. '이거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기획은 하고 만든 겁니까?' ......진짜 아무런 계획성 없이 질렀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거든요 이 물건;

개연성 없음에 단단히 한몫 한 것은 바로 주인공 소피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녀의 행동을 보다보면 개연성뿐만 아니라 리얼리티까지 함께 어디론가 야반도주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녀가 할멈이 된 이후로 보여주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까지 긍정적인지 알 수 없는' 행동은 뒷받침되어주는 현실적, 심리적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자기를 할멈으로 만들어버린 '황야의 마녀'를 대하는 태도는 그야말로 황당무계) 게다가 중간중간에 왜 나이대가 계속 변하는지, 왜 막판에 갑자기 저주가 풀려서 은발머리미소녀가 되는지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알고 싶으면 원작을 봐!'라고 말하는 듯한 불친절함과 무성의함과 무계획함. 3박자를 고루 갖추고 최종격 아스트랄로피테쿠스를 때려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건배!(의미불명) 소피라는 캐릭터에 대한 저의 평은 '상상 속에서조차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성이 결여된 캐릭터'쯤 되겠습니다.

소피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황야의 마녀'도 꽤 강력합니다. 다 보고 나서 꼭 한가지 묻고 싶었던게 있습니다. '당신 왜 나왔어요?' ......정말 소피를 할멈으로 만들어버린거 빼고 그녀가 나올 이유나 있었는지 의심스럽군요.(아, 소피와 함께 왕궁 계단을 걸어오르며 박빙의 승부를 연출하던 부분은 꽤 재미있었습니다만;)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원작을 보면 알 수 있지요.'라는 포스가 뭉게뭉게 피어오릅니다. 중간에 정신을 차린 것 같았는데 전혀 아니었고, 또 나중에는 노망 든 행동이나 하고... 역시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다구!

사실 이런 개연성도 개연성이고, 끝이 너무 황당한건... 허수아비의 경우 저는 그 행동을 보면서 '저건 소피를 꼬시고 있는 거야, 꼬시고 있는 거라구!'라고 계속 생각했는데 그게 들어맞아서 피식 웃었지요. 하지만 그가 사실은 이웃나라 왕자였고 '자, 이제 전쟁 끝내야지 랄랄라~'하고 가버리는 부분에서는, 그 다음에 설리번이 너무나도 쉽게 '전쟁 끝내자'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입을 떠억. 너네 대체 뭔 생각이냐? 당신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진짜 개연성 없어요. 고향 떠날 때 정표 받고 중반부터 까맣게 잊어먹은 '원령공주' 따윈 저리가라 라니까요_no 스토리에 비중을 두었던 물건이라면 이 엔딩은 '작품의 모든 가치를 한큐에 말아먹는' 멋진 엔딩 되시겠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이 물건은 스토리 따윈 진짜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다만 아스트랄한 분위기와 순간순간의 센스, 그리고 영상을 즐길뿐.

하울의 경우 보러 가기 전부터 '이 작품은 하울 하나로 모든게 용서돼요' '초꽃미남이에요' 등등의 찬사를 들었는데(주로 여성분들의 평이었죠) 보고 나서 좀 실망했습니다. 솔직히... 초반에는 저도 '허억, 이게 진짜 지브리 작품에서 나온 녀석이란 말이냐!?'라고 놀랐을 정도였어요. 금발에 약간 흐트러뜨린 머리로 허스키 보이스로 말하는 하울은 그야말로 초꽃미남 그 자체! 하지만 이게 중반부터 갑자기 '하쿠 & 도우야 아키라 스타일'로 변하면서 미모도가 하락하기 시작하더니(대체 왜 그 머리 스타일로 한 걸까?) 검은 머리가 되면서부터는 '쳇. 별볼일 없잖아' 레벨로 다운되어버렸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초반 머리 스타일로 밀어붙였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그래도 그 '아름답지 않으면 살아갈 의미가 없어' 부분은 멋졌죠. 응.(...) 성우가 기무라 타쿠야였다고 들었는데 저는 꽤 맘에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하쿠&도우야 아키라 스타일'만 빼면요.(아, 덤으로 괴물 부분도 나올 때마다 웃겼음;)

이 작품의 최대매력이라면 바로 캘시퍼가 아닐까 싶습니다. 초반에 마르클이 하는 짓도 그럭저럭 귀엽긴 합니다만, 마르클은 그냥 가족적인 분위기 연출을 위해서 귀여운 꼬맹이 하나 박아놨다는 인상인데 비해 캘시퍼는 작품 그 자체를 살릴 정도로 멋져요. 나올 때마다 뒤쪽에서 '꺄아~'하고 여성분들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죄송해요. 저도 넘어갔어요_no) 불 주제에 어딘가 포링... 아니 젤리가 생각나는 질감으로 그려져서는 '하울, 이거 어때? 소피가 준 장작이야'라고 하면서 그걸 소중하게 끌어안고 조금씩 씹어먹는 그 모습이란_no 캘시퍼, 네가 최고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바로 너야!!!;ㅁ;

캘시퍼는 캐릭터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영상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멋진 존재였어요. 스틸컷으로 보면 그냥 평범한 셀화 질감의 불 같지만, 실제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불 주제에 어딘가 포링... 아니 그러니까 젤리를 연상시키는 질감으로 움직이면서 물건을 잡고, 집어삼키고, 씹어먹지요. 그런 부분들이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집니다.(그레이트 피레니즈 강아지만큼이나 귀엽다구 젠장_no)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돈을 퍼부어서 아름답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생각하는 '마법'과 '경이'의 이미지를 구현해낸 영상도 볼만하지만(하울의 성 그 자체나, 아니면 마법이 사용되는 부분, 몇몇 배경들 등등 돈을 쓴 느낌이 팍 드는 영상들) 의외의 부분들에서 세심하게 신경쓴 흔적을 찾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캘시퍼는 존재 자체가 그렇고, 사실은 소피도 그렇지요. 소피를 자세히 보면 노인일 때도, 중년일 때도, 처녀일 때도 언제나 '저건 소피다'라는 느낌이 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꼿꼿하게 등을 펴고 선 자체라던가, 걷는 모습이라던가, 시선과 표정 등등...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매우 세심하게 공을 들여서 '소피'라는 존재를 표현해냈어요. 그 세밀함이란 작중에서 '저건 아무리 봐도 사람이라는 느낌이 안 들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리얼리티가 없는 소피라는 캐릭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지요. 그런 부분들도 무척이나 마음에 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음악' 말입니다만... 지브리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BGM은 참 좋았습니다. 분위기를 충분히 살려주는 음악이랄까요? 특히 메인 테마곡으로 여겨지는 곡은 여러모로 대만족이라 나와서도 흥얼거려씨요. 다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때도 그랬듯이 엔딩곡은 별로였습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 수준의 엔딩곡은 다시 안나와주는 것이냐 지브리!?

다 써놓고 보니 분량비중으로는 악평인지 호평인지 애매모호한 감상이 되었습니다만, 마무리로 단언하건데 이건 호평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스토리의 개연성 따위는 원작에서나 찾아보겠다고 마음 먹고 감상 포인트를 딴데 둔 채로 즐기고 오세요.' 그것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추천하면서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이로군요^^




덧글

  • 소울이 2005/01/07 22:39 # 답글

    으음.. 하울은 8일날 개봉한다지요, 제가 사는 곳은..-_-;;
    사실 고개를 살짝 기울여 눈을 아래쪽으로 놓은 우수에 젖은(?) 금발의 하울이 좋았었는데 말이에요오~;; 캘시퍼(혹은 가루슈파)도 하는 짓이 굉장히 귀여웠지요;;;
  • 세피로스 2005/01/07 23:15 # 답글

    저어; 죄송하지만 켈시퍼가 아닌가요;
  • 설아 2005/01/07 23:18 # 답글

    저도 스토리는 논외로 치고 봤지요; 영상이 히트급+_+ 그리고 키무라 타쿠야 씨 목소리가 생각 외로 하울 역에 상당히 어울렸고, 검은 머리 하울 보면서 '어째서 또 하쿠 닮은 남자 주인공을?'하고 생각했다는; 이 애니 보면서 제일 마음에 든 캐릭터는 단연코 캘시퍼-_-b 그리고 마지막, 허수아비가 저주가 풀려 본모습으로 돌아갔을 때 극장에 있던 관객들이 하나같이 '와하하하하하~~'하고 웃더군요.
  • 아리나스 2005/01/07 23:19 # 삭제 답글

    저번에 라그에서 아이디기 '구울의 움직이는 고성' 이라는게 있더군요.. 정말 이름 센스 한번 좋다는..[응?] 잡다한 이야기는 저리 치우고 저거 보고 싶어요 ;ㅅ;
  • 시릴르 2005/01/07 23:23 # 답글

    사실, 저 애니메이션은 '캘시퍼님께서 성을 움직이고 계셔'로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더빙판을 봤었는데 '꽃미남으로 살지 못하면 살아도 사는게 아니야'라든지 하는 대사센스는 그야말로 최고지요. 뭐, 입이 움직이는 시간에 맞추기 위한 거라지만 말입니다.
    허수아비의 등장이나, 마지막 대사는 확실히 생뚱맞죠.
  • Sion 2005/01/08 10:41 # 답글

    저는 음악 마저도 딱히 꽂히는게 없어서 난감하게 봤습니다;; 순간의 이미지는 좋았습니다만...;;
  • 락온유 2005/01/08 10:55 # 삭제 답글

    음, 역시 처음 알퀘이드 버전(?)이 하울 역사상 최강의 미남;(?)
    그후 부터는 솔직히 별로라고 생각해요. 처음만났을적에 약간 능글맞은 얼굴로 계속 걸어가하는 부분이....혹은 소피에게 밥해줄때..(코피 질질)
  • 미르 2005/01/08 13:15 # 답글

    역시 지브리 역사상 최고의 꽃미남이죠'-' 근데 처음 스타일로 끝까지 갔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제일 맘에 드는 캐릭터라면 역시 허수아비(...) 캘시퍼도 귀여워요
  • 로오나 2005/01/08 14:50 # 답글

    소울이// 그때가 좋았죠. 중반부터는 영...

    세피로스// 아, 맞아요. 수정했습니다^^;(가장 좋아한 캐릭터 이름을 틀리다니... 쿨럭;)

    설아// 역시 캘시퍼가 최고-_-b 스토리쪽에 조금이라도 감상포인트를 두고 보면 아무래도 너무 산만해서 집중이 안되고 뭐가 뭔지 알아먹을 수가 없지요. 평이 나뉘는 것도 이해할만 합니다.

    아리나스// 라그 아이디 중에 센스가 빛나는게 맞죠^^

    시릴르// 맞아요, 맞아요. 더빙판도 괜찮았나보군요 :)

    Sion// 음, 보고 나면 평이 갈릴만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요는 감상포인트가 어디냐, 랄까. 저는 그래서 어느 영화든 보러 가기 전에 감상을 좀 접하고 감상포인트를 잡고 가는 편이죠;


    락온유// 역시 초반 이미지가 최고. 그 후로는... 도우야 아키라 스타일은 좀 어떻게 해줬으면_no

    미르// 그러게 말입니다. 허수아비라... 역시 캘시퍼가 최고에요!
  • 歸鄕 2005/01/09 01:57 # 삭제 답글

    하울이 소피와 걸어가는 극초반부가 워낙 맘에 들었기에 그 이후의 개연성은 저 세상으로 날려버린 듯한 전개 또한 용서할 수 있습니다.(냥)

    전 영화시간에 조금 늦어서 타이틀 뜬 이후에 본지라 안개속의 움직이는 성 부분을 놓쳤지요. 나중에 그런장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우왓, 진짜? 그랬는데..

    그런데 영화 보러 가기 전에 씨네21과 한겨례, 중앙일보의 관련 기사들을 읽고 간지라 이런 보충 자료가 부족한 개연성을 조금 채워주는 느낌을 받았네요. 소피의 나이대가 변하는 이유도 설명되어 있었는데.. 소피의 내면적인 문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 묘르닐 2005/01/09 11:45 # 삭제 답글

    아이고!! 로오나님.. 제가 보면서 생각했던 부분!! 정말 200%공감합니다. 세상에 글로 쓸 능력이 없어서 속으로만 끓이고 있었는데...
  • 로오나 2005/01/09 18:14 # 답글

    歸鄕// 뭐 그렇다곤 생각했지만(소피의 연령대 변화) 저주가 어떻게 해서 풀리는가 라던가 그런 거에 대한 설명도 근거도 전혀 없었다는게 문제지요.(게다가 갑자기 과거로 날아가서 '난 먼 옛날에 너를 만난 적이 있었어'를 연출하다니_no) 여러모로 내용면에선... 훗;

    묘르닐// 공감해주셨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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