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 - 정말로 어중간한 지점에서




사실 한참 전에 보고 왔습니다. 그때 감상문을 쓰다가 일에 치여서 미뤄놨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랜 시간이...

아, 이런. 흔한 일이죠.


'너의 이름은' 이후 3년만에 돌아온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입니다. 캐릭터 작화도 전작과 같아서 대중을 상대로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미려함을 보여줍니다. 전반적인 영상미는 말할 것도 없죠. 전작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정말 홀릴 정도로 아름다운 화면의 향연이에요. 지금까지 도쿄에도 몇 번 다녀왔기 때문에 보다가 종종 알고 있는 곳들이 나오는데, 지금까지 도쿄라는 도시를 이렇게나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에요.

다만 몇몇 장면들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3D로 그려진 몇몇 부분들은 이런 걸 대체 왜 한 걸까 의문스러울 정도로 확 깼어요. 이런 싸구려 퀄리티로 할 거면 그냥 하지 말지... 특히 불꽃놀이 씬은 이 작품 영상미 평균을 전력으로 깎아먹는 수준이었습니다.


RADWIMPS의 노래들과의 궁합은 이번에도 좋습니다. 특히 메인 테마곡인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는 정말 좋았어요.

다만 보컬곡을 이용하는 연출이 좀 과하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몇몇 부분들은 정말 좋지만 전체적으로는 너무 많고, 종종 뜬금없이 시작되어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어요. 거기서부터 다시 몰입해서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내용은 '너의 이름은' 때에 비해서 심플합니다. 그때처럼 굳이 앞뒤를 맞추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고, 그럼에도 전개를 위해 맞추길 포기할 것도 없는 굉장히 심플한 내용이에요.

주인공이 고향을 떠난 이유처럼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보고 나면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싶습니다. 정말로 그런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인물에 대한 설명을 비롯해서 설명이 꼼꼼한 작품이 아니지만, 분위기와 감성으로 밀어붙이는 작품이다 보니 정말로 그런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심플한 내용 자체가 좋았냐 하면, 저는 별로 좋진 않았습니다. 결말에 대한 감상을 제외하고라도 날씨의 아이 노릇을 하러 다니는 부분들은 갑자기 아동 어드벤처물이 된 느낌이라 보면서 좀 집중력을 유지하기 힘들었고, 후반부는 그야말로 급발진이에요. 좀 더 차분하게 분위기를 깔고 달려나갔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결말에 대해서는... 정말로 쓴웃음이 지어집니다.


작품 속에서 내내 어른이 되라고 말하고, 그걸 거부하며 어른이 되지 않고 순수한 채로 남겠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결말은 굉장히 어중간하고 해괴한 지점에서 멈춰 있어요. '세상을 위해 한 사람이 희생되는 것은 옳지 않으니까, 세상 전부를 말아먹더라도 나는 이 사람과 사랑하기를 선택하겠어' 요약하면 그런 이야기입니다. 아름다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결말의 형태는 전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현실도 못되고 판타지도 못된, 그래서 이상하고 찝찝하기만 한 엔딩이 나버렸어요. 수해라는 현실적인 재해를 소년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위한 예쁜 배경으로만 취급하는 태도는, 올해 일본이 입은 수해 피해를 떠올리게 해서 정말로 쓴웃음을 짓게 되더군요.


보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왠지 신주쿠의 러브 호텔 부분이었습니다. 아마 러브 호텔을 이렇게나 근사하고 매력적이면서, 스토리적으로 중요한 부분으로 그려낸 작품은 이 작품이 유일하지 않을까요?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덧글

  • 포스21 2019/11/21 16:02 # 답글

    아.. 러브 호텔 쪽은 저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외엔 비내리는 , 네온 광고판이 넘치는 도쿄의 모습이 어릴적 본 "블레이드 런너"를 연상시켜서 묘하게 감흥이 오더군요.
    오히려 해가 나는 쪽이 좀더 이질적이랄까? 매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결말도 그럭저럭 맘에 들더군요. 글쓴 분 이야기 처럼 감성이 저랑 잘 맞은 경우 같습니다. 뭐 맘에 들면 다 좋게 보이는 덕에 제 눈에는 - 한번에 비가내려 도쿄 일대가 쓸려나간 것도 아니고 꾸준히 내렸으니 대피할 시간은 충분히 줬겠지... 사실상 수도 이전이 되었을 테고... 오히려 건설경기 붐이 일어나서 일본 경제에 보탬이 되었을 수도 있겠구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 로오나 2019/11/21 16:39 #

    사실 그런 사이버펑크한 느낌은 이제는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더 찾아보기 쉽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도쿄에 직접 가봐도 그런 느낌이더군요.

    수해는 그렇게 낙천적으로 볼 수 있는 건 아니라서... 막판에도 막판 스퍼트로 잠겨버렸을텐데 그때 수많은 비극이 있었겠죠. 올해 일본 여기저기서 그런 것처럼.
  • 더카니지 2019/11/21 18:14 # 답글

    작중 묘사보면 도쿄에만 비가 일정하게 계속 내리는 거니까 순차적 대피, 대비 작업으로 인명피해는 거의없지 않을까 싶긴 해요. 재산 피해는 막대하겠지만...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다시 초창기처럼 SF를 다뤄주셨으면 좋겠어요. 초자연적인 이능의 존재는 인류의 과학 기술로 사라질 것이다!!! ㅠㅎㅎ
  • 로오나 2019/11/21 23:17 #

    인명 피해 없다고 웃어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 블링블링한 눈의여왕 2019/11/25 19:10 # 답글

    음,그럼 어떤식으로 결말을 바꾸는게 났다고 보시나요?
    저는 굳이 표현하자면 재미있게는 보았지만 보고나니 뭔가 걸리는게 있는데 뭐가 문제인지 감이 잘 안오는 느낌이라 좀 이거다 싶은 의견으로 구체화가 안되네요.
    이영화가 호불호가 심하게 갈려서 양쪽 의견을 모두 찾아보는데 양쪽다 와닿는 느낌이 좀 없어서 혼란스럽습니다.
    여기와서 로오나님의 리뷰를 보고도 아직 정리가 안되는 느낌이네요.
  • 포브스 2019/11/28 18:22 #

    로오나님께 왜 이리 뻔한걸 물어보시나요.쓴웃음 나오고 웃어넘길 상황이 아니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럼 당연히 희생하는 엔딩으로 끝냈어야죠.아니 세상을 구하는 일인데 여자아이 한명과 세상이 비교대상이 될것같나요?
    세상을 구한다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제물로 한두명정도 갈아넣는건 당연합니다.
  • 로오나 2019/11/28 19:04 #

    포브스 // 아니 전 그런 생각 안 했는데요...

    블링블링한 눈의 여왕 // 애당초 설계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판타지로 가려면 아예 상쾌한 판타지로 가든지 아니면 현실은 시궁창이란걸 보여주려면 확실하게 그쪽으로 가든지... 어느쪽도 되지 못한 어중간한 지점이란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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