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맥스 3D로 보고 왔습니다. 일단 아이맥스 카운트다운이 스파이더맨 오리지널 버전으로 나옵니다. 저 이런 거 좋더라고요. 의외로 이걸 준비하는 영화가 얼마 없죠. 그리고 3D 효과도 꽤 훌륭합니다. 영화 전반적으로 3D를 신경 쓰고 만들었다는 게 보여요.
액션은 솔직히 좀 별로였습니다. 스파이더맨에 기대할 만한 기본기를 열심히 선보이는데, 그 기본기도 좀 부실하고 그 이상을 하지도 못해요. 시빌 워 때도 그랬는데 여기서도 스파이더맨의 액션에는 신선미는 없어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부작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부작이 워낙 훌륭하게 레퍼런스를 제시하고 응용과 변주까지 보여줬기 때문에 그 소스를 갖고 와서 써먹고 있는 정도죠.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일부러 앞선 두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오마쥬적인 연출들이 많아서 보다 보면 제작진 측에서 의도적으로 그 이상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느낌마저 받습니다. 어쩌면 이게 사실일 수도 있겠죠. MCU 스파이더맨은 이제 시작이고,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미숙한 청소년임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니까요.
근데 그 정도에 그치면 모르겠는데... 같은 레퍼런스를 갖고 와서 활용해도 시빌 워 때보다 많이 못한 느낌입니다.
스파이더맨의 첫 솔로 영화지만 오리진은 아닙니다. 시빌 워 때도 오리진은 생략되긴 했지만, 어쨌거나 출발은 거기서부터였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MCU 서사 안에서의 속편이죠. 일단 시빌 워를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고, 거기에 아이언맨3도 봐야만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한 영화에요. 기본 배경 자체가 철저하게 MCU 종속적이기도 하고요. 지금까지의 MCU 솔로영화 첫편 중에 가장 독립성이 약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몇몇 MCU 솔로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MCU의 부품 노릇을 하느라 자기 이야기를 못하는 실수를 범하진 않습니다. MCU 세계관을 배경으로 깔아놓고 자기 이야기를 하며 노는 영화에요. 아이언맨이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한다고 했을 때, 아이언맨이 이 영화를 잡아먹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언맨의 비중은 아주 잘 조정되어 있습니다. 충분히 비중 있는 역할로 스파이더맨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치면서도, 딱 선을 지켜요. 그는 분명 스파이더맨의 멘토지만 이 영화는 온전히 스파이더맨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대체로 좋았습니다. 스파이더맨은 시빌워 때부터 수다스러운 꼬맹이 캐릭터를 분명히 했고 여기서도 잘 살립니다. 내용상 그때보다 훨씬 폭주하는 사춘기다운 느낌이 팍팍 들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의 앤드류 가필드가 너무 하이틴 스타스러운 반짝임이 강해서 너드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던데 비해 MCU 스파이더맨인 톰 홀랜드는 영화 속에서 딱 자기 옷을 입은 듯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다만 루저들의 학창생활이라는 전형적인 미국 하이틴 스토리가 기본 배경이고, 그 속에서 사춘기의 영웅심과 미숙함으로 덜컥거리는 내용이다 보니 이 또한 신선미는 없었어요. 이건 아마도 철저하게 의도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다만 캐스팅에서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서 정치적 올바름(PC)를 크게 신경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요. 배우들의 말에 따르면 '현실을 반영했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어쨌거나 캐릭터의 연령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보다 보면 종종 짜증나고 힘들어지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당장 피터 파커부터가 조급하고 순진한 영웅심으로 폭주하는 사춘기 소년의 흑역사를 적나라하게 기록해나가는걸요. 그리고 네드. 네드는 참... 오, 적당히 해줘, 제발. 이런 생각이 든 적이 한두번 아니었습니다. 뭐 그런 것도 후반부의 그 장렬하기까지 했던 한 장면으로 모든 게 용서되긴 했습니다만. (...)
근데 잘 생각해보면 네드도 범상한 인물은 아닙니다. 토니 스타크가 만든 슈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킹하다니 대체 해킹 스킬이 몇렙이란 말인가. 언젠가 네드가 인공지능 수트를 만들어서 스파이더맨을 두들겨패는 빌런이 된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전개.
플래시 톰슨은 여러모로 미묘한 캐릭터입니다. 원작 코믹스에서는 거구의 백인 일진 양아치로 피터를 괴롭히는 역할이라는데... 음. 이 영화 속에서는 워낙 당하는 모습만 나오다 보니까 불쌍해 보여요-_-; 객관적으로 보면 플래시가 하는 짓은 집단 괴롭힘의 중심이 되어 선동하는 짓이고 실제 학교나 직장 같은 곳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툭툭 건드리는 짓을 당하면 스트레스가 엄청날 겁니다. 게다가 이들이 다니는 테크하이스쿨은 대체로 잘 사는 집안의 아이들이 다니는 곳인데 피터는 집안사정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이 저 괴롭힘의 이유가 될테니 이건 뭐...
근데 영화 속에서 드러난 것만 보다 보면 피터가 더 너무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 거죠. 플래시 입장에서 보면 자긴 진짜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만날 동아리 활동도 빠지는 불성실한 놈이 머리 좀 좋다고 대표로 선출되고, 빠진다고 해서 겨우 대표 선출되나 싶었더니 또 변덕으로 돌아와서는 자기 대표 자리를 휙 빼앗아가버리고... 그래놓고는 또 정작 피터는 놀리듯이 시합에 불참해버리는 바람에 준비도 못하고 대표로 나가서 망신당하기까지 하잖아요. 영화 속에서 얘가 겪는 일을 보면 피터를 좀 더 증오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게다가 스파이더맨한테 자기것도 아니고 어른거 빌려 나온 아우디 스파이더를 강탈당해서 날려먹기까지 하는걸;
플래시 톰슨이 좀 더 알기 쉽게 짜증나고 미운 놈이었으면 이렇게 당해도 꼬시다 하겠는데 워낙 불쌍한 모양새로만 나오다 보니까 좀 미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스파이더맨 슈트에 관해서는 좀 불만이 있습니다. '슈트 누나 캐런' 캐릭터는 매우 좋았고, 아이언맨과의 연계도 살아나며, 이 기능과 관련한 개그들도 꽤 쓸만하긴 했는데... 지나치게 최첨단인데다 다기능이에요. 원래대로라면 스파이더맨의 본신능력인 스파이더 센스가 활약해야 할 부분을 슈트가 다 처리하고 정작 스파이더맨은 스파이더 센스가 없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단 말입니다. 이쯤 되면 얘가 스파이더맨 기믹의 슈트를 입고 다니는 거 말고 스파이더맨일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좀 헷갈릴 지경. 기능이 좀 덜하고 스파이더맨 본연의 능력을 많이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토니 스타크는 재미있는 기준을 제시해줍니다. 벌처 일당에 대해서 '어벤져스가 나서기에는 너무 레벨이 낮다'고 단언하면서 스파이더맨에게 당분간 땅에 붙어서 자기가 하지 않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중간쯤을 걸어가라고 하는데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모습입니다. 대충 'MCU 드라마보다는 레벨이 높은데 어벤져스 멤버들이랑 놀기에는 레벨이 낮은' 정도인 거죠. 토니는 자기가 상대하기에는 너무 레벨이 낮으니까 FBI한테 잡으라고 시키기나 하고...
실제로 벌쳐 일당은 어벤져스한테 들켜서 찍히면 끝이라고 설설 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건 보다 보면 종종 안쓰럽기까지 해요. 이 사람들은 뭔가 대단히 코믹스 빌런다운 이유가 있어서 저런 장비 갖고 저런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먹고 살자고 발버둥치는 생계형 악당이죠. 사실 토니는 수송선 추락해서 물건 다 잃어도 '아, 내 장난감들 날렸네. 뭐 또 만들면 되지' 하고 말텐데 그중 한상자라도 챙기면 평생 돈 걱정 안한다고 눈에 불을 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구에 습기가.... 크흡.
벌쳐의 탄생비화를 보다 보면 역시 MCU 전체를 관통하는 메인 빌런은 토니 스타크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 뭐 이 경우는 토니가 나쁜 놈이라기보다는 대기업 대리점 하나가 갑질해서 동네 전파상 하나 죽여버린 거고 대기업 CEO는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모르는 그런 느낌에 가깝지만;
작중에서는 이런 생계형 악당, 그러면서도 좋은 가장으로서의 이미지가 참 잘 표현되었습니다. 마이클 키튼은 좋은 배우에요. 그 옛날 배트맨 형님께서 버드맨 시절을 거쳐서 이제 생계형 악당 벌쳐가 되어 돌아오셨는데 이 가면을 어찌나 잘 연기해주시는지... 스파이더맨과 벌쳐로서가 아니라 피터와 툼스로서 마주하는 부분은 정말 영화 속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부분이었죠.
아, 참. 쿠키 영상은 두 개가 있습니다. 특히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서 나오는 두 번째 쿠키 영상은 놓치지 말고 꼭 보도록 하세요. 이 쿠키 영상을 봤을 때의 기분은 모두가 공유해야만 해요. 덧글란에서도 두 번째 쿠키 영상에 대해서는 스포일러 엄금이에요!
덧글
그나저나 네드 리즈는 홉 고블린의 본명이라는데..
아무리 그래도 지금같은 개그캐를 빌런화 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거기다 대인배잖아요. 친구를 위해 야동쟁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는..
후반부의 장렬한 전사는 네드에 대한 모든 짜증을 용서하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사이드킥으로 활동할거 같은데 능력이 좀 심하게 출중하긴 함.
https://twitter.com/he1lot/status/882979022849753090
1대와 2대랑 비교해서 너무 평범하게도 높은데를 무서워하는 스파이더맨은 신선하긴 했는데 그닥 마음에 들진않았어요. 고층빌딩에서의 웹스윙 비중이 너무 적은것도 그렇고.
MCU 스파이더맨 슈트는 코믹스에서 그대로 튀어나온것 같다는 찬사가 있는모양인데 전 굉장히 미묘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멋지게 리파인된 샘스파, 어스파와 달리 색감이 너무 밝고 붕뜬 가짜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인지 후반부 홈메이드 슈트 재등장이 반가웠어요
슈트의 대비는 피터의 성장과도 대비해서 의도한 모양입니다. 고성능 슈트는 그 자체로 작품 내에서 잘 활용해먹었다고 생각하는데, 애당초 그 컨셉 자체가 약간 에러였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더군요.
특히 주인공이 울다가 각성해서 일어서는모습에서 감동하기도했고요
그런데 화룡점정 찍어줘야할 막판 액션씬이... 허허
전 홈커밍 파티 즈음부터 화장실이 너무너무너무 가고싶었는데 그걸 정말 초인적인 인내로 참고 두번째 쿠키를 봤는데 너무 신나더군요. 진짜 신남.
토니가 직접 나서면 차가 식기전에 감방에 배달해버릴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