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질주 : 더 익스트림 - 자동차로 핵잠수함을 이김




국내 개봉명만 보면 도무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어느덧 시리즈 8편입니다. 할리우드에서 프렌차이즈가 이만큼이나 오랫동안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죠. 제작비 빵빵하게 들어간 블록버스터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것도 도중에 리부트 등을 겪지 않고 순수하게 시리즈가 이어지는 경우는 더더욱...


1편 분노의 질주
2편 패스트 & 퓨리어스2
3편 패스트 & 퓨리어스 - 도쿄 드리프트
4편 분노의 질주 : 더 오리지널
5편 분노의 질주 : 언리미티드
6편 분노의 질주 : 더 맥시멈
7편 분노의 질주 : 더 세븐
8편 분노의 질주 : 더 익스트림


7편이 시리즈의 위치를 격상해줄 정도의 어마어마한 초대박을 쳤음에도(월드와이드 15억 달러 돌파. 그 전까지는 7억 9천만 달러가 시리즈 최고 기록) 8편은 제작에 난항을 겪었습니다. 7편 촬영 중에 폴 워커가 사망했고, 그로 인해 최악의 여건 속에서 7편을 완성하느라 고생한 제임스 완 감독이 8편은 도저히 못하겠다면서 '컨저링2'와 '아쿠아맨'을 만들러 도망가버렸기 때문이죠. (...)

4, 5, 6편을 만들어서 지금의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는 저스틴 린 감독은 '스타 트렉 비욘드'를 찍으러 갔기 때문에 대체할 감독을 찾기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감독을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고 그 사이 빈 디젤이 직접 연출하느니 하는 이야기까지 나왔었어요.

다행히 그들은 좋은 감독을 찾았습니다. '이탈리안 잡', '모범시민',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을 연출한 F. 게리 그레이가 8편 감독직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독이 바뀌었으니 과연 시리즈의 정체성이 지켜질 것인가, 아니면 많이 변할 것인가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데... 결론적으로 이번편은 놀라울 정도로 이 시리즈답습니다. 저스틴 린 감독이 4, 5, 6편을 하면서 만들어낸 시리즈의 정체성은 제임스 완 감독이 연출한 7편에서도, F.게리 그레이 감독이 연출한 8편에서도 전혀 바뀌지 않았어요. 그만큼 저스틴 린이 만들어낸 정체성이 견고하며 7, 8편의 두 감독들 역시 그 점을 잘 이해하고 존중했다는 뜻이겠지요.

1, 2, 3편만 해도 스트리트 레이싱이 메인 이벤트였던 이 영화는 4편 이후로는 거기에 첩보, 범죄액션을 끼워넣어서 자동차로 온갖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저지르는 것을 아주 화끈한 볼거리로 만들어내는데 주력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있는 허풍 없는 허풍을 떨어대면서 자동차로 더 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할 수 있을지 그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당연해져 버렸죠. 전작에서 이만큼을 보여준 이상 다음작에서는 더 멋진 거, 더 막 가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은 항상 있어왔을 겁니다.


자동차로 탱크를 이김, 자동차로 거대 수송기도 이김, 자동차로 성층권부터 낙하작전도 해봄, 자동차로 아부다비 빌딩을 부숨...

그리고 이번에는 예고편부터 대놓고 이런걸 보여주겠다고 암시합니다.


자동차로 핵잠수함을 이김.


저게 말이 되냐는 지적은 의미가 없죠. 우리는 오래 전부터 이 시리즈가 이런 물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4~6편을 거친 후로 이 영화는 이제 자동차로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해도 괜찮은 영화가 됐습니다. 슈퍼히어로물에서 온갖 SF, 판타지적인 설정이 난무해도 사람들이 그걸 작품 속 세계관의 리얼리티 일부로 받아들이고 보듯이 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그래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세계는 그래도 되는 세계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럴싸한 볼거리로 만들어내는 것은 2억 5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의 힘입니다. A급 인력들이 모여서 빵빵한 제작비 지원을 받으면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퀄리티인 것이죠. 그리고 똑같은 짓을 하더라도 이 퀄리티의 차이가 B급 쌈마이나 아니면 A급 블록버스터냐를 갈라놓는 것이고.


그리고 이번에도 해냈습니다. 8편도 이 시리즈다운 것들의 종합선물세트입니다. 스트리트 레이싱으로 시작해서 자동차로 러시아 군부대를 초토화시키고 핵잠수함과 싸우는 것까지.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편의 하이라이트는 자동차로 핵잠수함을 이김이 아니었어요. 자동차 좀비물이었습니다. 세상에. 하다하다 자동차로 월드워Z를 찍을 줄이야. 발상 자체가 요즘 시대라서 가능하다는 느낌이었고, 연출도 정말 잘 해놨습니다. 코너에서 좀비 자동차 수십대가 동시에 드리프트해서 나타나는 부분은 정말 호러블하더군요. 그리고 좀비 자동차 대규모 낙하부분은... 으어, 저게 CG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봤기 때문에 정말 두근두근하더라구요. 저거 실제로 자동차 수십대를 낙하시켜서 폐차시켜버리면서 찍은 장면이었죠.


스토리는... 음. 이 시리즈에 스토리가 말이 되느냐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꼼꼼히 살펴보면 따지고 싶은 부분이 수두룩하지만 보다 보면 그런 건 중요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이쯤 되면 트집잡고 싶은 생각도 안 들 정도인 거죠.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캐릭터, 유머, 액션을 위해 깔아놓은 판일 뿐이고, 그 의도에 충실해요. 스토리 자체로 뭔가를 이루려고 하지 않아요.


캐릭터성은 이 시리즈가 계속 잘 유지될 수 있는 정체성입니다. 비록 폴 워커가 고인이 되어 빠졌지만, 이들은 영화 내내 그를 잊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기존 멤버들의 매력도, 새로운 멤버들의 매력도 잘 살려냈어요. 악당은 7편만은 못했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사이퍼는 참 깊은 중2병에 시달리는 사이코인데, 샤를리즈 테론의 비주얼과 연기가 더해지니 제법 그럴싸해 보이더군요.

그러고 보면 이번에 '킹스맨 : 골든 서클'에서 줄리안 무어가 악역으로 나오는 것도 그렇고, 여기서도 악역이 여성인 것은 꽤 인상깊습니다. 이 또한 요즘 시대를 반영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7편에서 시리즈 최고의 악역을 보여줬던 제이슨 스타뎀은 이번에는 아군으로 활약하는 참 소년만화적인 전개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혼자도 아니고 6편의 악역이었던 동생 오웬 쇼까지 함께... 오, 맙소사. 악역들의 스토리텔링은 뭐 할말이 없어요. 그냥 웃김. 6편에서 CIA고 뭐고 전세계의 정보조직을 농락하고 좌우하지만 하는 짓은 한탕주의였던 이상한 악당 오웬 쇼. 7편에서는 그의 형이며 최강최악의 적인 데카드 쇼가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사실 이 둘은 8편의 악역인 궁극의 해커 사이퍼의 하수인일 뿐이었던 거죠. 그녀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진 꼴이 된 두 사람이 복수하기 위해 아군이 된다니... 이쯤 가면 태클 걸고 싶은 기력마저 사라지고 맙니다. 어쩌면 이리도 90년대 소년만화적인 전개일까.

그리고 드래곤볼을 좋아하는 우리가 베지터를 좋아하듯, 이쯤 되면 그들이 매력적인 캐릭터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요. 솔직히 오웬 쇼는 어찌되건 상관없는데 데커드 쇼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누가 적이었다 아군된 캐릭터 아니랄까봐 7편하고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매력 터지고요.

소년만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도 이제 아군이 된 오웬 쇼와 데커드 쇼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얘네들이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과거의 일로 미워해야겠어?' 물론 그게 어른의 사정이 우선한 핑계 만들기라는 것은 제작진도 알고 우리도 압니다. 그렇게 가는 게 재밌으니까 납득해주는 거죠.

그리고 들려오는 소식을 보면 아무래도 제작진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3편의 끝이며 6편의 끝이기도 한 그 시점에서 사망한 그 남자, 성 강이 연기한 한이 9편에서 살아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걸 보면요. 죽은 사람 살려내기는 이미 레티로 한번 했으니 또 한번 한들 어떠하리. 그리고 한이 살아나면 데커드 쇼의 면죄부는 완벽해지는 셈이죠.


근데 보면서 참 그랬던 부분도 있습니다. 엘레나의 취급은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더군요. 레티가 살아 돌아오면서부터 너무한 취급을 받은, 그 전까지 히로인이었던 캐릭터를 이렇게 취급해버리다니. 어휴...


8편은 시작부터 역대 월드와이드 오프닝 기록을 갈아치우는 대박을 터뜨렸고, 8편부터 시작된다는 9, 10편까지의 트릴로지 제작에는 순풍이 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다음편에서는 또 어떤 있는 허세 없는 허세를 보여줄지 기대가 커요. 8편에서 자동차로 핵잠수함을 이김을 실현했으니 아무리 봐도 9편에서는 자동차로 항공모함을 이김을 실현해줘야할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슬슬 다음편에서 항공모함이 사이퍼의 손에 들어가서, 자동차로 항공모함과 그 곁을 따르는 함대의 방어선을 뚫고 침투했더니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사이퍼가 아이언맨 슈트를 입고 돔과 홉스와 데커드를 두들겨 패도 놀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이쯤 되면 또 10편도 예상해봐야겠죠. 항공모함도 이기고 나면 그 다음엔 역시 우주밖에 없습니다! 이미 성층권까지는 다녀왔으니 아예 우주 스테이션까지 가서 자동차로 인공위성을 부수면서 시리즈 피니시! 자동차로 인공위성을 이김!


이렇게 끝나려고 했던 시리즈는 너무나 대박이 터진 나머지 11편을 제작하게 되고, 주인공들은 비밀리에 건설된 달기지를 점거한 악당들과 싸우기 위해 달 표면을 질주하게 되는데... 자동차로 월면 군사기지를 이김!


그리고 그런 11편조차 초대박을 치자 어쩔 수 없이 12편을 제작되게 되고, 주인공들은 NASA가 화성 탐사 중에 조우한 미지의 외계인과 싸우기 위해 화성으로 향하게 되는데... 자동차로 화성인을 이김!


12편 또한 초대박을 치게 되자 13편이... (그만해)





덧글

  • 빅원 2017/04/19 20:04 # 삭제 답글

    저는 전작의 데카드쇼가 계속 생각나서 이입이 안되더군요.
    살인을 그렇게 저지르고 한 팀이되어 쿨가이라니 ㅡㅡ
  • 로오나 2017/04/19 20:14 #

    90년대 소년만화 서사죠 뭐. 베지터...!
  • UnPerfect 2017/04/19 21:11 # 답글

    솔직히 리부트할 건덕지도 없는 듯... 이것도, 예전의 007이나 나우 유 씨 미처럼 충실한 내러티브보다는 멋들어진 퍼포먼스를 기대하게 되는 시리즈 같습니다.
  • 로오나 2017/04/19 22:00 #

    없죠. 이제와서 어디로 돌아가겠어요 ㅎㅎ
  • Yusaku 2017/04/19 22:17 # 답글

    사실 1편부터 생각해보면 빈 디젤은 도둑놈이었고 폴 워커는 잠입수사한 경찰이 도둑을 오히려 도망가라고 도와준게 엔딩이었죠.

    아무리 그래도 살인범은 아니지않나 싶기도 하지만... 뭐 재밌었고 넘어갈 수도 수준이라고 보입니다.
  • 로오나 2017/04/20 15:54 #

    어느 정도 범죄 액션이긴 했죠 처음부터.
  • Uglycat 2017/04/20 00:24 # 답글

    로오나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다음에는 무엇이 나올까하는 예상에 인공위성과 맞장 뜨는 구도까지 가는 생각을 하셨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아무튼 이번 편은 물량공세에 육해공을 아우르는 스케일로 가서 보는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편을 보고 나서는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란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황새...가 아니라 제이슨 스태덤이 데려다준단다...
  • 로오나 2017/04/20 15:55 #

    스케일 자체로만 보면 뭐 이미 갈데까지 가서 뭘 보여주느냐의 싸움인데... 자동차 좀비 부분은 정말 좋았습니다 ㅎㅎ
  • 오오 2017/04/20 12:16 # 답글

    맨손으로 어뢰를 튕겨내는 것을 보고 할 말을 잊었는데...
    역시 이 영화는 다음편에서 어떤 황당한 허풍을 보여줄 것인가가 관건인 듯
    이런식이라면 나중에는 사이퍼도 든든한 한편이 될지도요?
  • 로오나 2017/04/20 15:55 #

    그건 제발 아니길 바라지만요. 그냥 아이언맨 슈트 입고 나와서 주인공들을 쥐어패는게... (...)
  • 노량진촌놈 2017/04/21 14:45 # 답글

    맨손으로 어뢰의 침로를 바꾸는...

    하지만 홉스라면 진짜 가능할지도 몰라
  • 로오나 2017/04/21 18:43 #

    뭐 홉스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게 만드는게 이 시리즈의 매력이 되었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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