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숙제였던, 2015년 10월 12일~16일까지 다녀온 일본 간사이 여행기를 끝내고 이제 올해 3월 22일~29일까지의 캐나다 여행기. 이 여행의 목적은 아주 명확했습니다.
'옐로나이프에서 오로라를 봅시다! 일생에 한번쯤은 오로라도 봐주고 그래야지! 그리고 머나먼 캐나다 가는 김에 나이아가라 폭포도 보고!'
아무래도 일정 부담과 비용 부담이 일본 여행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여행이라 한참 전부터 이 여행을 위한 일정을 벌어두느라 빡세게 일했죠. 어쨌거나 저는 이때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이라고는 일본 간사이 지방과 오키나와 밖에 안 가본 사람인지라 머나먼 캐나다로 갈 생각을 하니 두근두근.

언제나 그렇듯 일단 인천국제공항에 도착. 비행기 출발은 오후 5시 15분이었는데, 이렇게 늦게 출국하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주 일찍이거나 아니면 낮이거나였거든요. 이 여행갈 당시에는 비수기라 그런지 공항에 다소 사람이 적은 편이었고 그래서 출국까지의 모든 과정이 좀 쾌적하게 진행됨.

캐나다는 처음인지라 카드결제가 얼마나 잘 되는지도 모르겠고, 팁 문화가 있는 곳이라고 하니 팁 줄만한 돈은 있어야 할 것 같고...
지금까지 일본 밖에 안가본 관계로 일본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캐나다 달러를 넉넉히 환전했습니다. 캐나다 달러는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없다 보니 동네 은행에서는 100달러 짜리랑 50달러 짜리로만 바꿔줬음. 흑.
하지만 저는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이 쓸데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알고 좌절하게 됩니다. 캐나다 카드결제 짱 잘됨. 한국 수준으로 잘됨. 심지어 식당이나 택시 타고 팁을 주는 것조차도 다 카드 결제로 처리함. 따라서... 캐나다 가면 진짜 현금 쓸 일을 찾기가 힘들 지경입니다-_-; 저는 가져갔던 돈 거의 고스란히 가져와서 다시 원화로 환전했음. 내 환전 수수료... 환율... 엉엉. 앞으로 또 캐나다 여행 갈 일이 있으면, 그래도 만약을 대비하긴 해야 하니 100달러 정도만 환전해야겠습니다.



시간이 좀 애매했기 때문에 밥을 먹어두기로 했습니다. 게이트 안쪽의 푸드코트에서 먹었는데 가격은 공항답게 비쌌고 맛은 나쁘지 않았음.

인천공항에서 타는 비행기는 에어캐나다. 에어캐나다를 타고 캐나다 밴쿠버 국제공항으로 갔다가, 거기서 또 캘거리 공항으로 갔다가, 거기서 또 옐로나이프까지 가는... 아주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에어캐나다 비행기는 생각보다 별로 크진 않았습니다. 멀리 가니까 당연히 와방 클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더라고요. 항상 일본 갈 때 타던 저가항공의 비행기와 비교하면 앞뒤 길이는 별로 안 다른데 대신 뚱뚱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인천국제공항 -> 밴쿠버 국제공항까지는 최소 10시간 이상이 걸리는 대장정입니다. 기상여건 등에 따라서 오차가 큰지 여행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이 코스만으로 12시간 이상 걸렸죠-_-;
이코노미석이었으면 진짜 가다 지쳐서 죽었을 것 같은데... 여행사도 그 점을 감안했는지 그냥 이코노미석이 아닌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을 잡았습니다! 만날 저가항공 타고 일본만 다녀봤는지라 이런 등급의 좌석이 있다는 거 자체를 처음 알았어요.
이코노미면 이코노미지 프리미엄 이코노미는 또 뭐야... 라고 생각했는데, 와... 저가항공의 이코노미석하고는 차원이 다르군요. 비즈니스석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아! (물론 비즈니스석을 한번도 타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순진한 발상)
좌석 자체가 편안하고, 다리를 죽 뻗을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좌석을 마음껏 뒤로 젖혀도 뒷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에요. 의자 뒤에 화면이 붙어있긴 하지만 이것도 각도 조절이 되기 때문에 문제 없고. 멀티 콘센트가 있어서 어느나라 규격을 꽂아도 다 대응하는 위엄. 10시간 이상의 비행에서도 폰 배터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환경이란 말인가. 좌석에 따로 미니쿠션과 무릎담요도 있었는데, 에어캐나다는 이거 유료래서 준비했는데 좀 허탈했어요. 프리미엄 이코노미 좀 짱인듯? 생수 한통에, 수면안대, 칫솔, 그리고 수면양말까지 들어있어요, 푸하하.

출발도 하기 전에 주스를 줌. 크... 주스 한잔도 안주는 저가항공하고는 다르구나.


옆의 창문은 셔터를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전자식으로 버튼을 누르면 선팅이 되듯 어두워지고 밝아지는 방식. 서서히 어두워지고 서서히 밝아지지만 최대로 어두울 때와 최대로 밝을 때의 차이는 엄청 큽니다. 이런걸 처음 봐서 신기하더군요. 21세기 신문물을 접하고 신기해하는 원시인!

기내식 서비스도 미리미리 메뉴를 주고 물어봅니다. 앞뒤로 한글 / 영어 메뉴가 제공됨.

그리고 마침내 출발.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에 한국을 떠남.
우리 일행이 다섯 명이라 저는 옆자리에 모르는 사람과 같았는데 그 사람은 미국인 청년이었음. 21세고 대구에서 근무 중인 미군이며 휴가를 받아서 미국으로 가는 중이었어요. 저쪽에서는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데 저는 정말 영어를 못해서 간단한 뜻조차 전하기 어려워서 쩔쩔 맴... 으으; 이럴 바에는 그냥 한국어로 뻔뻔하게 말했으면 서로 뉘앙스로 알아들어서 더 분위기가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야말로 때늦은 후회.

기내식 나오기 전에 뜨거운 스팀타올을 줍니다. 오오, 서비스 좋아.


첫 번째 기내식입니다. 의자의 테이블 위에 테이블보도 깔고 냅킨도 줌. 전 선택 메뉴 중에 닭고기를 골랐는데, 닭고기 질은 별로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퍽퍽한 수준까진 아니었어요. 기내식 전체 퀄리티는 그냥저냥이지만 많은 걸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긴 하지요. 음료수를 마음껏 주는 게 참 좋았습니다. 콜라와 주스는 물론이고 맥주와 와인도 있었음.

만날 저가항공으로 일본만 다니다 보니 비행기 안에서 좌석의 디스플레이로 뭔가를 본다는 게 익숙지 않았어요. (이어폰도 같이 제공됨. 이어폰 잭은 디스플레이에 꽂을 수도 있고 좌석에 꽂을 수도 있음) 볼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는 제법 많았고, 최신 컨텐츠도 있었습니다. '마션'이나 '스누피 : 더 피너츠 무비' 같은 건 이 여행을 갈 당시에는 정말 최신작이었죠. 한글자막 지원도 되긴 했는데, 좀 부실한 편이라 모든 작품이 되는건 아니라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4시간쯤 지나니 비행기 안 조명도 꺼서 완전 깜깜함. 비행기 타면서 이렇게 깜깜한 거 처음 경험해봤어요. 창밖에 진짜 완전 까만데... 이 틈을 타서 잠을 좀 자보려고 했는데 시차적응은 쉽지 않더군요. 비행기를 이렇게 오래 타보는 게 처음이라 슬슬 비행기 안에 앉아있는 게 힘들어지는데 잠도 잘 수 없다니!
이 당시 바깥 상황을 보니 온도는 영화 50도 이하였고 고도는 11800미터 이상... 오오, 이곳이 성층권인가!

기왕 성층권까지 올라왔으니 성층권에서만 부릴 수 있는 허세를 부려야겠다는 허세허세한 마음으로(...)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타닥타닥. 여러분, 이 여행기는 성층권에서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

한국 시간으로 밤 11시경, 간식이 나왔어요. 음료수는 애플 주스를 골랐고, 햄버거형 샌드위치와 아몬드를 냠냠.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2시가 다 되어서,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완전 깜깜하다가 점점...
휴대폰 시계는 새벽 2시인데 밝은 환한 상황은, 아 내가 시차가 다른 곳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들면서도 참으로 기묘한 기분.
이때쯤 아침도 나왔어요. 아침은 볶음밥과 스크램블 에그 중에 택일하라길래 후자로. 도저히 볶음밥 같은걸 먹을 상태가 아니었거든요. 으으, 비행기 오래 타는 거 넘 힘들어요. 프리미엄 이코노미처럼 좋은 자리에 타고도 이렇게 힘든데 일반 이코노미에 탔다면... 아, 물론 이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은 일본 가는 저가항공의 이코노미보다는 훨씬 넓고 쾌적해 보이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요.


밴쿠버 공항으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기 시작할 때부터 구름을 뚫고 나온 설산들이 너무 멋짐. 도시의 비주얼도 이국적이라 여기가 바다 건너 다른 대륙이라는 실감이 팍팍 들고요.

폰 시계가 한국과 밴쿠버의 시차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시차 때문에 좀 짜증이 났는데, 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어디까지나 그 당시 시간을 기준으로 사진을 정렬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밴쿠버에서 찍은 사진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찍은 사진보다도 더 먼저 찍은 걸로 정렬이 되는 거예요. 나중에 시간 맞춰서 정리하는 게 상당히 스트레스였습니다-_-; 이거 어떻게 좀 안 되나.






밴쿠버 공항은 국제공항이라 상당히 컸어요. 공항은 구경하면 재밌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구경할 시간 따위는 없었음. 여길 경유해서 캘거리로 가야 하는데 짐은 정말 늦게 나왔고, 캘거리로 떠나는 다음 비행기 시간은 매우 촉박했거든요! 초조한 마음으로 짐을 찾은 후에는 내내 가는 곳마다 직원들의 'hurry up!' 소리를 들으며 팔자에도 없는 공항 런! 진짜 너무 시간이 아슬아슬해서 캐리어 끌고 막 뛰어다녔음. 캐리어를 간발의 차로 수화물로 맡기고 나서는 또 비행기까지 전력질주.
...밴쿠버는 그렇게 우리에게 해외 나와서 엿될 것 같은 위기감과 공항 런의 추억을 안겨주었습니다.




벤쿠버 국제공항에서 캘거리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는 당연하게도 인천 -> 벤쿠버 때 탔던 비행기보다 작았어요. 제주도나 일본 갈때 탔던 저가항공들이랑 비슷하지만 앞뒤 좌석 공간은 훨씬 넉넉한 느낌. 같은 에어캐나다라 그런가 더 작은 비행기지만 USB 충전포트가 있는게 흥미로웠어요. 자리에 따라서는 디스플레이가 없는 대신 충전용 코드도(그러나 국제선과 달리 220볼트는 꽂을 수 없었어요) 있었고요.
캘거리 공항까지는 한 1시간 정도의 짧은 거리... 지만 이 정도면 한국에서 일본 가는 거리죠! 기내식으로는 과자랑 물을 줬습니다.

캘거리 공항 도착. 정작 편안한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에서는 생활리듬이 안맞아서 자려고 해도 못잤는데, 10시간 비행하면서 쌓인 피로가 밴쿠버 공항 런으로 폭발... 슬슬 잘 시간이고 게다가 엄청 피곤하기도 해서 비행기 안에서 죽은 듯이 자고 깨니 도착해있었습니다. 시차 때문에 슬슬 저쪽은 새벽인데 이쪽은 낮인 것이, 와, 진짜 먼 다른 나라에 왔다는 실감이 팍팍 들었어요.
근데 웃긴 게 밴쿠버와 캘거리만 해도 시차가 좀 나더군요. 시간이 한 시간 사라졌어!


캘거리 공항은 정말 지방 공항이란 느낌이 드는 아담한 곳. 그러면서도 여기가 외국이구나 하는 느낌 건 확실해서 좋았어요. 여기서는 1시간 30분쯤 대기했는데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은 외국인 대학생들이 바글바글... 공항 바닥에서 뒹굴뒹굴하는 자유분방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캐나다는, 특히 우리 목적지인 옐로나이프는 엄청 춥대서 단단히 대비하고 왔는데... 밴쿠버도 따뜻했고 캘거리에서도 여전히 따뜻해서 더웠음;


그리고 공항 한켠에 오락실이 있었는데... 오래된 세가 게임들이 있었습니다! 저도 일행도 '오오오오오!' 하고는 버처파이터3을 해봄. 한판에 25센트였는데, 오래된 기계라 레버가 제대로 말을 안 듣더군요^^;


그리고 이제 캘거리 공항에서 옐로나이프 공항으로 렛츠 고! 이 기나긴 여정의 끝이 보인다!
이번에는 한층 더 작아진 프로펠러기! 더 이상 충전포트도 없는 자리. 그런데도 한국 저가항공보다는 좌석의 앞뒤 공간이 여유 있더군요-_-; 그리고 간식하고 음료도 괜찮게 나옴.
옐로나이프 공항까지는 2시간 반 정도 걸렸습니다. 직전 비행기보다 불편한 자리에도 불구하고 죽은 듯이 자고 깨니 도착.

창밖으로 옐로나이프가 보입니다. 밴쿠버도, 캘거리도 과연 다른 나라구나 싶었지만 여긴 비행기가 하강할 때부터 계절감이 확 달라서 그런 느낌이 한층 강했습니다. 캘거리까지도 따뜻했는데 여긴 온통 눈이야!

우리가 타고 온 프로펠러기. 멋지게 찍혔어요. 여기서 내리니... 오오, 드디어! 드디어 패딩과 방한장갑이 활약할 때가 왔다!
이때 바깥은 영하 10도 정도의 날씨로, 캘거리까지 따뜻했던 것에 비하면 확 추워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춥진 않았어요.

옐로나이프 공항은 캘거리 공항보다도 한층 더 지방공항스러운 느낌. 공항 건물도 작고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까지는 걸어서 바로 코앞임. 공항건물과 비행기 사이를 버스 타고 이동한 적은 있어도 걸어가는 경험은 또 처음이었어요. 비행기를 여러 각도에서 촬영할 수 있어서 재미있는 경험이었음.

안에 들어와봐도 작은 옐로나이프 공항. 공항 건물 면적에 비해 밖에서 봐도 작고 활주로만 엄청 넓은 느낌.


수하물 찾는 곳에 백곰상이 있는 게 강렬한 임팩트. 완전 귀여워!


옐로나이프 공항은 작아서 비행기 한대 도착하면 복작거리지만 또 시간 지나면 금방 한산합니다.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직 숙소로 떤기 전에 이렇게 한산한 풍경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요.

여행사 직원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일정 설명해주고 웰컴 키트를 주는데, 이중에서 쓸모있었던 건 미니 손전등 정도?


공항 밖의 풍경. 옐로나이프는 어딜 봐도 눈이 있고, 차들이 일본 오키나와 갔을 때하고는 정반대에요. 크고, 네모나게 각지고, 체고가 높습니다. 작은 차는 정말 드물고 엄청 큰 차들만 있는데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큰 차들이 일반적이라서 차의 크기를 가늠하는 감각이 이상해지는 것 같은 느낌.
하여튼 여기까지 장장 16시간 30분.... 으아아, 길었어요. 여기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파김치가 됐음.
하지만 '오늘은 피곤하니 쉬고 내일부터 관광해야지'라는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오로라 관광은 이제부터다ㅠㅠ
(다음편에 계속)
덧글
개인적으로 캐나다에서는 북극곰을 볼 수 있는 처칠하고, 가스페 반도에 꼭 가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