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 아포칼립스 - 그들의 패션이 아포칼립스




아이맥스 3D로 보고 왔습니다. 3D 효과가 크게 뛰어나진 않은데 워낙 요란한 볼거리들이 많아서 아이맥스로 볼만 하군요.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한 엑스맨 중에서는 가장 대규모로 난장판을 벌이는 영화이며, 그가 연출한 엑스맨 영화들이 항상 그래왔듯 몇몇 장면들은 꽤 인상적인 볼거리입니다.

해외 초반 반응이 호불호가 아주 강하게 갈리는 편이었는데, 다 보고 나니 왜 그런지 이해가 갑니다.

새로운 캐릭터들(정확히는 예전 엑스맨에 나왔지만 새로운 버전으로 소개되는 캐릭터들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을 소개하고 과거 캐릭터들의 현재 행적을 보여주는 초반이 좀 지루한 편이긴 한데 중반부터는 나쁘지 않아요. 물론 내용 자체가 여태까지 몇 번이고 했던 말들을 같은 캐릭터들을 통해서 또 하고 있는 느낌 때문에 지겹다는 느낌이 있긴 합니다. 매번 같은 주제를 같은 결론으로 이끄는 걸 보고 있자니 슬슬 다른 주제를 다룰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그런 것들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이 영화의 문제는 바로 몇몇 캐릭터들의 코스튬 디자인이에요.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한 엑스맨 영화들이 다 그렇듯 이 영화도 기본적으로 묵직하고 진지한 톤으로 전개됩니다. 그런데 코스튬이 등장할 때마다 그 분위기가 다 박살나요. 아포칼립스 일행이 등장해서 뭔가 할 때마다 화면 속에서는 하염없이 진지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웃음이 나오는, 부조리극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고요. 아포칼립스 일당들과 그외의 부분들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기 때문에 진지해야 할 부분들이 진지하지 못합니다. 그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어떻게든 이야기에 이입하는데 성공했는가, 아니면 완전히 실패했는가에 따라서 반응이 갈릴 수밖에 없겠더군요. 이건 어찌 보면 일본 특촬물이나 만화 원작의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진입장벽입니다.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미 만화 같은 코스튬을 입고 나오는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진지한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많이 봐왔어요. 엑스맨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전편인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도 그런 일은, 매그니토의 헬멧 디자인에 좀 태클을 걸고 싶긴 했어도 큰 무리없이 이루어졌죠.

그런데 왜 이 영화에서는 이렇게 이 문제가 크게 거슬리는 걸까요? 아무래도 디자인 완성도의 문제가 가장 커 보이고, 다른 부분들이 그것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조정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건 엑스맨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영화인 이상 큰 결점일 수밖에 없지요.

그 조정이 불가능하다고 봤으면 과장스러운 코스튬을 포기하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엔젤만 하더라도 처음에 날개 펼치고 나왔을 때는 이런 강렬한 이질감의 일부가 아니었죠. 아포칼립스 일당이 되어서 코스튬을 챙겨입는 순간부터 그는 이 영화의 독소가 되었어요. 가뜩이나 이 캐릭터들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너무한데 이 코스튬이 더해지니, 오, 브라이언 싱어, 솔직하게 말해봐요. 당신은 그냥 스톰이랑 엔젤이 싫은 거 아닌가요?


이야기 자체는 평이합니다. 3부작의 끝이자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으로서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앞서 말했다시피 브라이언 싱어가 엑스맨 연출할 때마다 매번 하던 이야기를 매번 하던 방식대로 하고 있고 딱히 이전보다 확장되거나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주진 못합니다. 오히려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다 보니 정작 이 모든 것을 초래한 아포칼립스의 이야기는 정말 그냥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재난으로서만 소비된다는 점이 아쉬웠고요. 9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차기 엑스맨 시리즈부터는 좀 신선한 이야기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엔딩 크레딧 후에 쿠키 영상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소스를 푹푹 찍어먹으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아포칼립스는 이 캐릭터 영 아니라는 소리가 많이 나오던데, 정말 그렇습니다. 일단 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코스튬 문제의 핵심인걸요. 그리고 전반부에는 인자한 아저씨였다가 후반부에는 찌질한 3류 악역의 전형으로 전락하는 것도 치명적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자기가 선택한 부하들에게 코스튬을 입히지만 않았어도, 아니,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쳐도 막판에 엔젤에게 '쓸모없는 것'이라는 대사만 던지지 않았어도 느낌이 지금보다는 훨씬 좋지 않았을까.


게다가 후반부는... 아, 이건 진짜 너무해요. 아포칼립스가 자비에의 머리를 아포칼립스 하는 장면은 너무한다고ㅠㅠ 이걸 웃기려고 넣은 거라면 성공적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 의도 자체가 최악이었고, 웃기려고 넣은 게 아니라면 센스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하긴 이 영화를 보고 나니까 후자를 지지하고 싶어지는군요. 만드는 쪽에서는 하염없이 진지하게 만든 거고 이것도 나름 진지한 클라이맥스인 거죠. 어쨌든 머리를 아포칼립스 당해버린 자비에는 에필로그까지 가면 화면에 비출 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듭니다. 아, 그만 좀 웃겨줘... 그걸 보고 웃는 것 자체가 굉장히 나쁜 짓 같은데 웃음을 참을 수 없다고요. (먼 산)


매그니토는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듭니다. 마치 로맨틱 코미디의 끝에서 그럭저럭 결합되는 엔딩을 맞이했지만 다음편에서는 또 헤어져서 난장판 ABC를 반복하다 또 같은 엔딩을 맞이하고, 다음편에서는 또 반복... 여기서 소개한 사연이 납득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제 그만해'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어쨌거나 아포칼립스와 손잡은 매그니토는 분명 엑스맨 영화 시리즈 기준으로는 역대 최강의 매그니토입니다. 이 시리즈가 계속되는 동안 최초로 매그니토 때문에 세계가 멸망할 뻔해요! 자비에가 아니라 매그니토의 능력으로 세계가 멸망할 뻔하다니 매그니토에게도 이런 빌런으로서의 영광의 날(...)이 오는군요.



덧글

  • 이젤론 2016/05/27 15:29 # 답글

    엑스맨 시리즈를 볼때마다 뭔가 이질감이 들었는데
    ...매그니토 때문이군요. Orz
  • 로오나 2016/05/27 15:51 #

    왜 이제와서 매그니토의 저 헬멧까지...

    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
  • 더카니지 2016/05/27 15:31 # 답글

    처음 엑스멘1에서 엑스맨 코스튬을 블랙 통일-그리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죠-한 싱어가 데오퓨를 기점으로 원작 코믹스의 요소를 어느정도 받아들이는것 같은데 전 괜찮았던것 같아요.
    문제는 액션....때려부수는 스케일은 대단한데 울버린 씬빼고 기억에 남는 인상적 전투신이 없는느낌이에요. 클라이막스 전투신도 밋밋했죠.
  • 로오나 2016/05/27 15:51 #

    전 데오퓨에서는 이런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어요. 퍼스트 클래스도 코스츔적인 요소가 강했지만 이러지 않았죠. 그냥 아포칼립스 쪽의 디자인에 문제가 크다고 봐요.

    전투씬에 대해서는 동감입니다. 이 영화의 볼거리 중에 포인트로 꼽을 만한 건 초반 피라밋 붕괴와 (20% 정도는 짧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 퀵실버의 활약씬이고 전투씬들은 다들 좀 그냥 그렇죠. 특히 엔젤과 스톰의 전투연출은 보다 보면 굉장히 무성의하단 느낌이 들 정도고요.
  • lelelelele 2016/05/27 19:53 # 답글

    원래 기존의 브라이언 싱어표 엑스맨 영화들은 원작코믹스의 만화적으로 느껴지는 부가적 요소들(특히 코스튬)을 철저히 배제하는 방향으로 갔는데(심하면 은근히 무시하는 느낌까지...), 최근의 히어로무비 트렌드가 코믹스이 재미를 살리는 방향인, 본가의 MCU가 되어버리면서, 이거에 어느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특히 제작의 중심에 있는 사이먼 킨버그가 이런 부분에 강하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초기작시리즈인 1편에서 코스튬을 까던 대사가 있었는데, 역으로 이번 영화가 역으로 그 대사를 정면으로 받게 되어버렸네요.

    확실히 싱어 감독 본인은 이런 요소들은 크게 신경쓰질 않는 것 같았어요. 본인이 코믹스에 크게 흥미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보니
    (오히려 과거엔 엑스맨감독직을 여러번 거절한 경우도 있고, 애초에 리처드 도너판 슈퍼맨 영화의 광팬인 사람이니까요...)
    실사영화에 코스튬을 자연스럽게 녹여보려는 수고를 크게 들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근래에 나온 싱어감독의 인터뷰를 보니까 과거로 돌아가 1편을 다시 찍고 싶다면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냐는 질문에 '하나도 바꾸고 싶지 않다' 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하더군요.
  • 로오나 2016/05/28 14:35 #

    근데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보면 꽤 노골적인 코스츔들이 있는데도 이 영화처럼 튀어보이진 않습니다. 애당초 퍼스트 클래스는 훨씬 노골적이었고, 매그니토가 그 코스튬 입고 나오는 부분에서도 그래요. 그래서 보다 보면 의아한 거죠. 왜 이 영화만 이 모양인가...
  • 북극양 2016/05/27 21:39 # 답글

    눈 버릴까봐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엑스맨은 안 좋아하기도 하고;;) 엄마가 보고 싶어하셔서 끌려가겠어요ㅠㅠ
  • 파티마ZERO 2016/05/28 20:35 # 답글

    자비에의 머리는 슬슬 밀때도 됐고(?!),
    아포칼립스가 자신의 몸에 맞게(대머리니까.) 머리를 강제로 밀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퀵실버를 홍길동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 Uglycat 2016/05/30 07:05 # 답글

    확실히 대결 기반이 되는 이야기는 전편의 그것을 재활용하는 수준이라는 느낌입니다...
    헌데 이번 편은 전편에서의 갈등 요소가 다소 해소되어서 그런지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인상이...
  • 듀얼콜렉터 2016/05/31 04:44 # 답글

    무난히 재밌게 봤습니다, 뭐 그래도 배댓슈 보다는 나았던것 같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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