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테일 - 너무나도 상냥한 / 잔혹한 RPG



2015년 최고의 인디게임으로 불린다는 언더테일. 전 최근까지 이 게임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왠지 트위터 타임라인에 그림쟁이 여러분이 팬픽을 마구 올려대서 '이것은 대체 무엇의 팬픽인고?' 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국내에서 한글패치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리고 얼마 전 심한 감기로 며칠간 일을 쉬게 된 김에 스팀에서 질러서 한번 해보게 되었죠.

그리고 사흘간 달려서 엔딩을 봤습니다. 감상은...


이 아저씨, 좋은 이야기를 보았다... (눈물 반짝)


요즘은 인디게임이라고 해도 꽤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고 나오는 게임들이 많은데, 이건 정말 고전적인 인디게임의 이미지에 맞는 궁핍한 그래픽을 자랑합니다. 슈퍼패미컴도 아니고 거의 패미컴 시절이 생각날 정도에요. 레트로 시절부터 게임을 해온 올드 게이머들이라면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마더 시리즈가 연상될 수도 있는데, 나중에 제작자가 마더 시리즈의 광팬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완전 납득했습니다^^;

어쨌거나 요즘 시대에 용량 제한 없이 패미컴 게임을 만든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그런 그래픽인데...


그런데 연출이 좋아요. 정말 좋습니다. 요즘 시대에 이런 그래픽으로, 연출로 사람을 전율하게 만들다니... 초반에 토리엘과의 이야기나 후반에 아스고어에게 가는 길은 진짜, 와......

이건 진짜 거의 반칙입니다. 이런 그래픽으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울리지 말라고ㅠㅠ


그리고 전투시스템이 기가 막힙니다. 이 게임은 적과 랜덤으로 조우해서 처치하고 나면 경험치를 얻고 레벨이 올라가는 시스템임에도 아무도 안 죽이고 엔딩을 볼 수 있어요. 심지어 고전 게임들의 꼼수도 아니고 게임 속에서 지향할 수 있는 정식 공략법입니다.

그게 가능한 것은 이 게임의 전투시스템이 기존 RPG와는 다른, 사실 탄막 슈팅이라고 불러야 맞을 방식이기 때문인데, 적마다 다른 패턴으로 탄막 공격을 해오면 그걸 피하면서 공격 외에 다른 수단을 이용해서 승리를 거두는 게 가능하거든요. 근데 탄막 슈팅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난이도 높은 작업이기도 해서, 전 늘 회복 아이템을 든든하게 사갖고 다니면서 템빨로 불살의 신념을 관철했죠. (...)


이런 시스템 덕분에 이 게임은 유저의 선택에 따라서 모든 것이 극단적으로 바뀝니다. 엔딩만이 아니라 그 과정까지도요.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도 죽을 필요없는 상냥한 이야기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학살의 극단을 달리는 잔혹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엔딩은 노멀 엔딩 / 불살 엔딩/ 학살 엔딩 세 가지로 나뉩니다. 전 처음부터 불살 엔딩을 볼 생각으로 진행했는데 노멀 엔딩을 한번 보지 않으면 불살 엔딩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 했다가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게임은 세이브 파일이 단 하나밖에 없어요. 한 가지 엔딩 보는 세이브 파일을 놔둔 채로 새로 세이브 파일을 파서 진행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죠. 처음에는 뭐 이렇게 고전스럽게 불편한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전투 시스템이 그렇듯이 이것 또한 언더테일이라는 게임의, 아니, 이야기의 정체성에 깊게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었어요.

이 게임의 세이브 & 로드는 단순히 시스템적인 부분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것은, 심지어 클리어조차도 이야기의 시공간에 간섭하는 행위로 그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를 한번 죽여버렸는데 그 사실이 마음이 안들어서, 진행을 바꾸고 싶어서 다시 그 이전의 세이브를 로드해서 다시 진행했을 경우에 캐릭터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으니 이쯤 할게요. 이제부터 이 게임을 하실 분들에게, 이 게임은 절대 스포일러를 찾아보지 말고 진행하세요. 그냥 엔딩 루트와 방침에 대한 정보 정도만 얻고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을 겁니다. 언더테일의 진정한 매력은 역시 이야기의 힘이거든요.


어쨌든 정말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노멀 엔딩도 좋았지만 불살 엔딩은 정말 찡했어요. 노멀 엔딩을 앞둔 시점부터 멈출 수가 없어서 밤을 하얗게 불태우면서 불살 엔딩까지 봤는데... 마지막 남은 학살루트는 안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학살 루트는 그냥 공략식으로 나온 디테일한 대사 번역 스포일러와 동영상들만 찾아봤는데, 여기까지 해야 이야기의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굳이 플레이해서 지금의 기분을 깨고 싶지 않네요.



언더테일이 인기있는 이유는 20년 전 생각나는 그래픽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들이 디자인부터 매력적이라는 점도 있지요. 엑스트라지만 귀여웠던 스노우딘 마을의 상점 아가씨.


정말 귀여움 말고는 쓸모없는 테미... 아, 물론 중고 물품을 잘 사주는건 좋지만.


주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다 좋았지요. 개인적으로 아스고어는 별로지만 배틀시에 보여준 패기만큼은 아주 그냥... 샌즈는 진행하다 보면 종종 보여주는 날카로운 부분들이 사람을 울리고, 그리고...


역시 토리엘이 제일 좋습니다. 잊지 않을 거에요, 토리엘...


이런 나쁜 게임에는 돈을 더줘야 한다는 생각에 OST도 질렀습니다. 처음부터 패키지로 샀으면 할인이 됐겠지만 상관없어! 게임을 해보시면 알겠지만 음악들도 참 좋아요. 혹시라도 속편 만든다고 하면 킥스타터 모금에도 참여해주겠다.....


결론 : 디즈니는 주토피아 제작진 데리고 언더테일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라! (어?)



덧글

  • 자유로운 2016/03/02 20:28 # 답글

    어떤 의미로 진짜 RPG네요. 행동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한다니...
  • 로오나 2016/03/02 21:32 #

    멋진 게임이에요. 가격도 저렴하니 여유날 때 해보시길 권합니다.
  • 몬토 2016/03/02 21:26 # 답글

    등록금!
  • 로오나 2016/03/02 21:31 #

    대학교 등록금을 내주면 우리 테미가 글쎄... 앗, 스포일러는 안되니 커트.
  • 이굴루운영팀 2016/03/02 21:55 # 답글

    스포일러보고 플레이하면 절대로 후회하는게임이죠
  • 로오나 2016/03/02 23:14 #

    네. 정말 그래요. 하지만 엔딩 분기 정도에 대한 기초지식은 갖추고 하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돌이킬 수 없는 것도 있어서...
  • 2016/03/02 22:0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3/02 23:1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死海文書 2016/03/02 23:37 # 답글

    노멀 -> 불살 식으로 했는데. 하고 나니 정말 학살 루트는 안 타고 싶어집니다. 좋은 게임이죠.

  • 로오나 2016/03/03 02:26 #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학살은 그냥 스포일러로만...
  • 알렉세이 2016/03/02 23:52 # 답글

    테미 말투 너무 귀여워욬
  • 로오나 2016/03/03 02:25 #

    하지만 테미가 대학교를 다녀와서 똑똑해진다면...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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