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크래프트2 공허의 유산 - 17년간의 대장정의 끝



블리자드가 제 계정을 휴면 처리하는 바람에 되살리는데 며칠 시간을 잡아먹었고, 그 후로 사흘간 캠페인 모드를 달려서 엔딩을 봤습니다. 총 플레이타임은 한 15시간 정도 되는 것 같군요. 만족스러운 볼륨이었습니다.




게임 플레이 면에서는, 전략 게임으로서의 면모에 대해서는 제가 별로 할 말이 없고(이쪽 장르하고는 잘 안맞는 편이라서) 기술적인 발전에 꽤 놀랐습니다. 맵에서의 몇몇 연출도 전편까지는 볼 수 없었던 박력을 자랑하는 것들이 있고 컷씬의 경우는 그야말로 진일보했더군요. 분명 자유의 날개, 군단의 심장도 같은 컴으로 플레이했는데 이번에는 눈에 띄게 컷씬의 광원효과가 좋아졌어요. 전편까지의 컷씬들은 시네마틱 영상하고는 색감 차이가 확연했는데 이번에는 거의 비슷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진행 면에서는 컷씬이 나올 때마다 매번 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살짝 괴로웠습니다. 감정적으로 고조되는 내용이라서 성우 연기까지 다 듣고 싶은 부분이 있는가 하면 설명적인 내용이라 텍스트만 빠르게 읽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도 있는 법인데 이건 플레이어 마음대로 완급 조절을 할 수가 없어요. 넘기는게 가능하긴 한데 대사 하나 단위로 넘어가는데 아니라 두세개, 혹은 서너개씩 뭉텅이로 넘어가버리는 바람에 다 보긴 봐야겠다는 입장에서는 그냥 음성까지 다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플레이 타임이 한 3시간 이상은 짧아지지 않았을까 싶군요.


공허의 유산은 스타 크래프트2 3부작의 완결편이며, 동시에 1부터 이어져 내려온 장대한 스페이스 에픽 스토리의 끝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전편인 군단의 심장을 플레이했을 때 1부터 시작된 짐 레이너와 캐리건, 그리고 멩스크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었고 엔딩이 워낙 깔끔해서 이제 그 뒤의 이야기가 나오건 말건 별로 상관없다는 감상이었습니다. 주인공 캐릭터들의 드라마는 마무리되고 배경 세계관 떡밥만 남은 상황이고, 개인적으로 프로토스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랬지요.

하지만 공허의 유산은 그 뒤의 이야기를 꽤 맛깔나게 그려나갑니다. 자칫하다가는 감정 이입할 캐릭터 드라마는 뒷전이고 배경 서사에 치중하게 되기 딱 좋은 상황이었는데 프로토스 캐릭터들을 생생하게 그려나가면서 이야기를 몰입감 있게 끌어나가서 좀 감탄했어요. 특히 주인공이 (삐-) 하고 (삐-) 하는 전개는 꽤나 충격적이면서 뒤의 전개를 불안하게 만들었는데 그 문제도 훌륭하게 해결하더군요.

캐릭터성은 아무래도 군단의 심장 때의 매력 넘치는 저그 친구들에 비할 바는 못되었습니다마는, 대사 하나하나가 참... 프로토스는 하나같이 '내 분노는 천개의 태양보다도 뜨겁게 타오른다!' 같은 대사를 진지하게 하는 친구들 뿐이라고요. 다른데서 봤으면 그들의 가슴 속에 어둠이 다크한 중학교2학년생들이 살고 있나 보다 하겠는데 워낙 진지하게 에픽 스토리를 찍고 있다 보니 그게 또 어울린다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이지요.


프로토스를 중심으로 어둠의 신 아몬의 군세와 싸우면서 시리즈를 관통하는 젤나가의 비밀에 접근하는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캐릭터들간의 갈등관계가 변하는 과정 역시 이야기에 추진력을 부여하고요.


다만 조각조각 갈라졌던 프로토스 세력들이 하나로 모여 아이어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이 끝나고 나면 그 후의 이야기는 더 이상 프로토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해야겠군요. 자유의 날개가 테란의 이야기였고, 군단의 심장이 저그의 이야기였듯 공허의 유산은 프로토스의 이야기지만 그것은 에필로그 전까지입니다. 에필로그는 공허의 유산의 에필로그라기보다는 1 때부터 이어져온 대서사의 끝이고, 여기서 이야기의 바통은 짐 레이너와 캐리건 두 사람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공허의 유산의 주역이었던 프로토스 친구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이 두 사람이야말로 대장정을 끝낼 자격이 있는 캐릭터들이지요.


프로토스, 테란, 저그를 차례대로 플레이하게 되는 에필로그 구성은 꽤 좋았습니다만 엔딩은 여러모로 불만입니다. 사실 엔딩의 내용 자체에는 별로 불만이 없어요. 엔딩이 유출되었을 때부터 '이게 뭐야!' 하는 반응은 있었는데, 전 그 자체로만 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보여주는 방식의 문제죠. 엔딩 전까지 긴장감을 잘 유지하다가 거기서 힘이 빠져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조금만 공들여서 보여줬다면 느낌이 완전 달랐을 텐데...


마무리가 좀 아쉽기는 합니다만 이것으로 1998년 스타 크래프트 때부터 시작된 17년간의 대장정이 엔딩을 맞이했습니다. 블리자드가 3편을 만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만든다고 해도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짐 레이너와 캐리건의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이 펼치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덧글

  • 무명병사 2015/11/15 21:15 # 답글

    적어도 전 17년의 마무리로는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여운이 남는, 좀 허무한 듯한 엔딩을 좋아합니다)
    아 참, 그리고 "아니, 잘 자라는 말을 하러 왔다, 이 망할 놈아."는 에필로그 최고의 명대사라고 봅니다 b-.-b
  • 로오나 2015/11/15 22:24 #

    전 엔딩의 내용 자체에는 불만이 없는데 보여주는 방식이 너무 무성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사 좋았죠.
  • 무지개빛 미카 2015/11/15 21:29 # 답글

    이제 남은 적은 지구 섭정 정도인데.... 과연 지구가 가만히 있을지, 지구가 누군가에게 침공당할지 그게 궁금해집니다.

    그나저나 이 스타2의 가장 비운의 캐릭터. 타이커스.... 그는 정말 어디서 구원받아야 하는거지?
  • 로오나 2015/11/15 22:25 #

    그쪽은 줄곧 언젠가는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국 안나오고 이야기가 마무리되더군요. 뭐 3에서 그 이야기를 다룬다 해도 레이너와 캐리건과는 관계없는 이야기겠지요.

    타이커스는... 1편의 엔딩이 참 뭐했던 가장 큰 이유였지요.
  • 지나가던한량 2015/11/15 21:49 # 답글

    아직 황혼 떡밥이 힘을 잃지 않았으니 다음은 충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엄청난 시간이 걸리겠지만 새 이야기는 반드시 찾아오겠지요. 싱글만으로 소장판의 가격이 안 아까운 작품의 다음 이야기 정도는 궁금해 해도 되겠지요:) 일단 멀티를 하며 기다리겠습니다.
  • 로오나 2015/11/15 22:26 #

    새 IP 뭐야 그거 무서워... 인 블리자드인 만큼(결국 17년만에 새 IP를 내놓긴 했습니다만) 3편도 기대해볼 수는 있으리라 봅니다. 다만 제 추억 속의 스타크래프트는 이걸로 끝났구나, 란 느낌.
  • 알렉세이 2015/11/15 22:11 # 답글

    난이도가 제게는 보통도 약간 어려웠다는 걸 빼면 엔딩도 나름 좋았어요 :)
  • 로오나 2015/11/15 22:26 #

    전 쉬움으로 했는데도 막판은 꽤 어렵더군요;
  • 메타트론 2015/11/15 23:47 # 답글

    이제 좀있으면 세편합본 싸게 팔겠군요...


    그런데 중간부터 공허의 심장;;;;
  • 로오나 2015/11/15 23:56 #

    아, 이런^^; 수정했습니다.
  • asdf 2015/11/16 00:15 # 삭제 답글

    요즘 트리플 A급 게임들이 스토리가 메롱하게 나오는 판국이라 공허의 유산 정도면 의외로 멀쩡하게 나온 것 같을 정도라 아쉽긴 해도 나쁘진 않은 듯

    그래도 프롤로그 에필로그 미션 제외하면 미션 수가 17개 정도인건 심했습니다 저는 황금함대와 아둔의 창의 최후 함대전을 플레이해보고 싶었단 말입니다!
  • 로오나 2015/11/16 14:16 #

    의외로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멀쩡했죠. 엔딩이 좀 아쉬웠다 정도고... 인데 요즘 블리자드 게임들 스토리 평가가 어땠는지를 생각해보면 의외긴 하군요. (...)

    전 별로 볼륨에는 불만이 없었습니다. 플레이타임이 15시간쯤 됐는데 자유의 날개와 군단의 심장 때보다 길었어요. 대사 스킵 문제도 있긴 했지만...
  • 다물 2015/11/18 11:36 # 답글

    게임은 못하고 유투브로 동영상 시청 중인데 괜찮더라고요. 스타1때 아무 의미도 모르고 미션 하던때랑 비교하면...;;;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7 대표이글루_mo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