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 팩맨이 지구침공하는 영화 픽셀. 예고편을 봤을 때부터 관심 가진 영화였는데, 개봉 후에는 평이 많이 갈렸지요. 저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도, 까는 사람들도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이런 멋진 소재를 이렇게밖에 활용 못하다니 아까운 짓을 했다는 말도 있던데 그 의견에는 동의 못하겠습니다. 고전 게임이 현실세계를 침공한다는 소재는 이 영화의 원작인 2분 짜리 단편에서는 굉장히 좋은 소재겠지만 장편에서는 글쎄요? 그 소재 자체가 뭔가 획기적인 활용이 가능하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우리가 본 '픽셀'이라는 결과물보다 더 좋아질 수 있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건 장편 영화를 구성하는 디테일의 문제지 가장 기본적인 아이디어의 활용은 아니에요. 이 소재로 팩맨과 동키콩과 갤러그가 지구를 침공하자 고전 게임을 잘 아는 게이머 친구들이 맞서 싸워서 지구를 구했다는 것 말고 더 훌륭한 활용이라는 게 뭐겠어요? 적어도 전 이것보다 확실히 좋다고 주장할 만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는군요.
일단 보면서 이 발상 자체에 태클 걸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아무리 주인공이 그 게임들의 세계 챔프였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그 패턴을 모조리 꿰뚫어보고 대응하는 게 말이 되는가? 물론 조금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됩니다. 2D가 3D 됐고, 조이스틱으로 대응하던걸 몸으로 뛰면서 해야 되는데 그게 똑같이 될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그런건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는 것이 어른의 약속이지요.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역시 예고편부터 힘줘서 만들었다고 어필했던 팩맨 파트입니다. 누가 봐도 팩맨이 이 영화의 메인 이벤트잖아요. 팩맨의 아버지 이와타니 교수까지 동원한 개그 파트는 예고편에서 봤을 때는 빵터졌는데 몇번이나 예고편을 본 다음이다 보니 정작 영화 볼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는 게 좀 아쉽군요. 아, 참고로 이와타니 교수가 카메오 출연을 하기는 했지만 작중에서 활약하는 이와타니 교수 캐릭터는 대역이라고 합니다.
캐릭터는 좀 거슬립니다. 어렸을 때 게임으로 날렸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루저 친구들이 황당무계한 사태를 맞이하여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된다... 는 것은 정통파 왕도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보다 보면 영 호감이 안가는 녀석들이 있어요. 주인공인 샘은 이 컨셉에 부합하는 적당한 캐릭터고 윌은 애당초 루저가 아이니까 논외죠. 하지만 러드로우와 에디는 보다 보면 불쾌해지는 인물들입니다. 그건 그들이 루저라서 그런게 아니라 가까스로 생긴 호감도 날려먹을 만한 행동을 해대서지요. 보다 보면 너무 오버해서 캐릭터를 짜증나게 만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이 갈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가 노골적인 추억팔이 영화라는 점 때문일 것 같습니다. 모든 추억팔이에는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팩맨과 갤러그와 동키콩이 당신의 추억이라면, 이 영화는 괜찮은 추억팔이 상품이에요. 하지만 그것이 당신이 태어나기 전의 역사에 불과하다면 이건 당신을 위한 축제가 아닙니다.
쿠키 영상은 끝난 후에 바로 붙어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보너스는 역시 엔딩 크레딧에 레트로 게임스러운 2D 도트 그래픽으로 영화 내용 다이제스트를 내보내는 부분이겠지요.
덧글
한 20년 전이었다면 또 달랐을지 모르겠습니다만...아무리 상업주의적으로 이전에 써먹지 못한 소재를 내놓으려 해도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반면교사만 남기고 있는거 같아 안타깝네요
(이렇게 되면 도대체 소문으로만 듣던 지뢰찾기 실사판은 어떻게 될지 걱정)
모든 캐릭터와 스토리 라인이 그저 추억팔이를 위해 존재할 뿐이죠. 물론 이런 영화를 스토리 개연성 하나하나를 짚어가면서 볼 필요는 없다지만...... 솔직히 최근 4dx로 본 영화 중에 실망한 영화가 없었는데 처음으로 돈이 아깝더군요.
어쨌든 제게는 그럭저럭 괜찮은 추억팔이였습니다.
고전게임의 감성을 따르느냐, 어메리칸 조크를 따르느냐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다소 미묘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동네에서 잘 나가는 친구(나이는 두 살 위였습니다만)네 집의 아타리로 접한 팩맨은 말 그대로 컬쳐 쇼크였습니다.
오락실보다도 그 집에 놀러가는 시간이 더 많았을 정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