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 - 오로지 재능과 실력만을 긍정하는 괴물




이 영화는 먼저 18분 짜리 단편으로 선보였던 영화를 장편화한 경우입니다. 단편은 보지 못했지만 정보를 찾아보니 캐스팅이나 골조는 거의 그대로인 것 같더군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야기가 보여서 도대체 누구의 이야기인가 했는데, 일반적으로 말하는 '실화 바탕의 영화'는 아니고 음악 전문 학교의 재즈 오케스트라 드러머였던 감독 본인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는군요. 이 영화는 다미엔 차젤레 감독이 각본, 연출을 모두 담당했습니다.


참고로 이 영화는 제87회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 편집상, 음향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남우조연상 수상자는 플렛처 교수를 연기한 J.K. 시몬스였지요. 영화를 본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플렛처 교수라는 캐릭터의 카리스마는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며, J.K 시몬스의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으니까요.


주인공 앤드류를 연기한 마일즈 텔러는 모든 연주 파트를 대역 없이 소화해냈다고 합니다. 저는 재즈에도, 드럼에도 지식이 없어서 전문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지만 순수한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정말 대단해 보이더군요. 모든 연주 장면에서 긴장감이 넘쳐흐르고 몇몇 장면은 폭발적이었어요. 물론 연출의 힘이기도 하겠지만 배우의 연기에서(연주를 포함해서) 어색함이 보였다면 그런 폭발력은 안 나왔겠지요.

그러고 보면 음악 영화... 라기보다는 음악을 소재로 다룬 작품 중에서 드러머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은 처음 봤습니다. 찾아보면 이것저것 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본 것들은 대체로 기타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지휘봉을 들거나, 작곡을 하거나... 음. 또 뭐 있더라. 어쨌든 드러머가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이것 말고는 없었어요. 하지만 그 소재 선택은 완벽했습니다. 주인공이 드러머가 아니었다면 이런 이야기도, 이런 박력도 나올 수 없었을 거에요.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습니다. 음악영화인데 신나는 음악 연주, 뜨겁고 흥겨운 열정과는 거리가 멀어요. 어느 장면이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장치된 것 같은 불안과 긴장이 넘쳐 흐르고, 열정을 보여주는 부분도 광기의 사슬에 묶인 것 같은 꺼림칙함과 두려움이 묻어납니다.

언뜻 진정한 열정을 긍정하는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전 보는 내내 그런 긍정적인 느낌은 받지 못했어요. 분명 그들은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가졌고 그것으로 모두를 감동시키는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열정과 독선으로 자기 자신의 인간성을 망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까지 상처입혔지요. 영화 속에서 앤드류가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별로 그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마음이 일지 않습니다. 권력과 폭력으로 강요당한 열정으로 인한 폐해가 보일 뿐.


괴팍한 스승과 그 밑에서 고생하는 제자의 이야기는 많습니다. 그런 스승과 제자 관계에 대한 로망, 클리셰들은 아주 보편적인 것이죠.

하지만 플렛쳐 교수는 그런 보편적인 로망에 속하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이 사람은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폭군이에요. 폭군이지만 하필이면 권력과 유능함을 다 가진, '폭군 상사'로 분류할 수 있는 인물이죠.

그는 주인공 앤드류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그의 재능이 너무나도 아까우니 담금질해서 성장시켜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몰아치는 게 아닙니다. 음악학교의 권력을 쥔 교수라는 입장에서 계기가 무엇이건 적당히 눈에 띄면 기회를 줘보고 못하면 바로 잘라버리죠. 재능의 종류나, 공들여서 잘 가르쳐서 키워봐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습니다. 당장 쓸만한 실력과 자기 눈에 띄는 재능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마지막에 앤드류가 도달하는 지점은 플렛처 교수를 스승으로 생각하고 제자로서 보여주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폭군에게 휘둘리며 상처투성이가 된 후에야 자신의 밑바닥에 있던 재능을 발견한 연주자가 악에 받쳐서 정면으로 힘싸움을 거는 광경이었어요. 상대의 인간성에는 아무런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 괴물을 상대로, 그가 물러날 수 없는 무대에서 오로지 자신의 재능과 실력만으로 맞부딪쳐서 긍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 이야기에 인간적인 성장 따윈 없어요. 앤드류는 처음에는 좀 찌질해 보이기는 해도 열심히 노력하는 청년이었지만 플렛쳐 교수에게 휘둘린 후에는 스트레스와 강박관념으로 인간 쓰레기로 전락해갔고, 마지막까지 거기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로지 마지막 순간에 재능이 폭발했을 뿐이죠.


하지만 물론, 그 순간은 엄청나게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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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ChristopherK 2015/03/20 18:39 # 답글

    문득 영화를 보다가, 내가 "풀메탈 자켓"을 보고 있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로오나 2015/03/23 12:27 #

    긴장감이 넘치죠. 음악 영화인데...
  • 露彬 2015/03/20 19:42 # 답글

    드러머가 주인공인 영화는 댓씽유두가 생각나는군요...
  • 로오나 2015/03/23 12:27 #

    아 있었군요. 댓씽유두라...
  • 시안레비 2015/03/27 02:32 # 답글

    '하지만 물론, 그 순간은 엄청나게 매력적입니다.'
    무척이나 매력적인 문장이네요
    영화도 재밌게 봤는데 감상글도 잘 보고 갑니다
  • 로오나 2015/03/27 10:29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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