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 : 다섯 군대 전투 - 세기의 로맨스가 될 수 있었던



기왕 개봉 초창기는 놓쳤으니 그냥 느긋하게 볼까 하다가, 아이맥스에 '국제시장'이 걸리기 시작하는걸 보고는 위기감이 폭발해서 허둥지둥 아이맥스 HFR 3D로 보고 왔습니다. 1편 때 아이맥스 HFR 3D로 봤다가 상당히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있었고 2편 때는 그냥 아이맥스 3D로 봤는데 꽤 화면이 만족스러웠지요.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아이맥스 3D로 볼까 했지만 선택지가 없었어요.


호빗 : 뜻밖의 여정 아이맥스 HFR 3D 감상 (링크)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 아이맥스 3D 감상 (링크)


보면서 놀랐던 것은 1편을 볼 때와는 달리 긴 러닝타임 동안 HFR 3D를 감상했는데도 불구하고 지쳐 나가떨어질 것 같은 피로감이 없었다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 추측해보니 1편에서는 많은 부분들의 배경이 실내나 지하였고 빨간색 등의 색감이 과장스럽게 눈을 찌르고 있었죠. 그에 비해 이번 3편은 거의 대부분이 야외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눈이 피곤한 색감의 향연도 별로 없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던 것 같군요.

그리고 1편 때에 비해 기술이 확실히 진보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HFR 3D의 48프레임이 주는 부드러움과 빠른 움직임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3D 효과라는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화면이 좀 돈 들인 느낌이 나요. 그 기준으로만 보면 여전히 HFR이 아닌 그냥 아이맥스 3D로 봤던 2편의 만족감이 더 크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1편보다는 더 나아진 느낌이었습니다. 적어도 일부 판타스틱한 배경들이 CG 병풍처럼 느껴지거나 배우와 배경이 따로 노는 위화감이 느껴지진 않았으니까요.


2시간 20분을 넘는 러닝타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봤습니다. 하지만 보고 나서 참 없는 내용 길게 부풀리느라 애썼구나... 라는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에요. 원작 '호빗'에서는 이 다섯 군대 전투에 해당하는 부분의 분량이 정말 얼마 안 된다고 하는데(원작을 오래 전에 봐서 구체적으로 기억이 안 나지만) 다 보고 나면 참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만 정작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계속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는 물량 공세 전투 볼거리의 향연이 이어질 뿐. 그것만으로도 판타지 블록버스터로서의 미덕은 충분히 챙겼지만 차라리 2부작으로 만드는 편이 내용 면에서는 훨씬 좋았을 것 같더란 말이죠.

물론 피터 잭슨이 덕심을 발휘해서 3부작으로 만들고 싶어했고 영화사는 돈 벌리는 걸 한편 더 늘려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그리고 어쨌거나 팬들은 3부작이 아니라 4부작이 되었어도 투덜거리면서 보러 갔겠지만.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작 부분부터 몰아치는 스마우그의 최후는 참 좋은 볼거리였지만 동시에 '이건 여기 있었으면 안되는 것 같은데' 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이거 보기 전에 2편을 경건한 마음으로 복습하고 온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저는 1년 전에 영화관에 앉아서 2편을 보았고 마지막 부분에 대한 감정선은 흐릿해져 있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초반부터 클라이맥스 분위기로 몰아치는 게 적응이 되질 않습니다. 그냥 오오, 멋져, 로 끝나버리죠. 아무리 봐도 이 부분은 2편에서 마무리를 지었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랬으면 2편 엔딩에서 사람들이 그토록 허탈해하는 일도 없었겠지요.


스마우그가 최후를 맞이한 후에 시작되는 '다섯 군대 전투'의 이야기는 전투로 꽉 차 있습니다. 거기서 벗어난 이야기는 용의 저주를 받은 것처럼 타락해가는 소린과 빌보의 갈등 정도에요. 소린의 타락은 정말 집요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러닝 타임을 줄이고 좀 분량을 줄였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빌보와의 갈등은...


이거, 빌보가 미소녀였으면 완전 로맨스네!


...빌보를 여성으로 바꾸고 작중에서 언급하는 '우정'을 '사랑'으로 바꾸기만 하면 더이상 아무런 수정도 필요없이 모든 게 맞아떨어집니다. 정말 훌륭한 로맨스가 될 수 있어요. 그랬으면 정말 세기의 로맨스가 될 수 있었던 작품인데 왜 빌보를 호빗 미소녀로 설정하지 않는 겁니까, 톨킨 오오오오옹! (야)


그나저나 전 톨키니스트도 아니고 원작주의자도 아니지만 보는 내내 타우리엘의 존재가 거슬렸습니다. 2편에서도 그리 좋게 보진 않았지만 3편에서는 정말 얘 나오는 분량을 죄다 통편집해버렸으면 완성도가 훨씬 좋았겠다 싶을 정도에요. 사실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프리퀄이려고 노력한 결과물인 레골라스도 그렇게 잘 맞아떨어지진 않아서 남의 이야기에 나와서 애쓰는 인상이지만, 그래도 스란두일과의 갈등 구조가 있어서 그럭저럭 자리가 있긴 있다는 느낌이죠. 하지만 타우리엘은 진짜...


개인적으로 정말 뜬금없었던 부분은 스란두일이 엘프 군대를 철군시키려고 하니까 그 앞을 가로막고 활 겨눈 채로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하는 부분. (다소 왜곡있음)


...아니, 저기서 왜 사랑 타령이 나오는 거죠? 저기서 스란두일을 설득할 거라면 명예라던가 정의라던가, 그런걸 논하면서 우리는 지금 희생을 감수하고 싸워야만 하는 때라고 말해야죠. 활을 겨눌 이유도 전혀 없어요.


사실 그런 식으로 설득하려고 해도 스란두일이 넘어갈 이유는 없지요. 애당초 그들은 조상의 보물을 찾으러 왔다가 오크들이 공격해오니까 간달프의 선동에 넘어가서 싸움에 참가한 것에 불과합니다. 간달프의 설득도 그저 그 자신이 추구하는 대의만을 위한 설득이고 기만인데 타우리엘이 사랑 타령하는 건 대략 정신이 멍해질 뿐.


간달프 : 악의 군대가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끼리 이럴 때가 아닙니다! 다같이 힘을 합쳐서 싸워야 해요! (물론 보물은 안줄 거지만! 내가 드워프들한테서 보물을 받아다가 당신들한테 줄 거라는 어떤 약속도 하지 않을 거지만!)


아무리 봐도 엘프들은 정말 답없는 호구... 아, 아니 정의로운 이들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저기서는 안 싸우고 물러나는 게 옳아요. 드워프들의 싸움이고, 드워프들은 약속한 보물을 안 주겠다고 결사항전을 부르짖었고, 아르켄스톤 줄 테니까 약속한 보물만 달라고 하는 협상에조차 응하지 않았습니다. 엘프 군대들은 정말 아무것도 약속받지 않은 채로 남의 전투에서 명예와 정의를 위한 피를 흘렸죠. 왠지 불공평한 연출 때문에 스란두일은 되게 차갑고 욕망만 추구하는 나쁜 놈인 것 같은데 잘 따져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철군하려고 하는 이유도 자기 판단으로 인해서 엘프 백성들이 너무 많이 죽은 것에 왕으로서 상처받아서고 참 엘프왕답게 잘 생겼고 싸움도 잘 하잖아요!


그리고 아조그도 스란두일 만큼 불쌍해요. 치밀한 계획과 준비로 전장의 마에스트로가 되고자 하였으나 오크들이 너무 싸움을 못해! 중반까지는 적들의 의표도 잘 찔렀고 병력의 우세도 있어서 잘 나가고 있었는데 드워프 만렙 전사 열두명이 각 잡고 돌진하는 것만으로도 전술적 승기와 지리적 이점이 다 한방에 날아가다니 이런 어이없는... 잘 보면 오크들은 덩치도 크고 근육도 불끈불끈한데 훨씬 작고 체중도 덜 나가고 근육도 없는 인간이나 엘프랑 붙어도,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완력만 놓고 봐도 전혀 압도하는 모습을 못보여줍니다. 아무리 봐도 얘네는 진짜 허당이에요. 정말로 얘네 저질 전투력 때문에 답이 안나와서 나중에 우르크하이를 만든게 아닌가 싶을 지경.


어쨌거나 이걸로 호빗 3부작과 반지의 제왕 3부작은 총 6부작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건 호오가 갈릴 만한 부분이지만 전 이 영화가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의 프리퀄이 되기 위해서 지나치게 노력한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호빗은 분명 반지의 제왕 프리퀄이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마무리지어진 이야기이기도 한데, 이 영화는 3부작의 끝이라는 느낌이 안 들어서 마지막까지 보고 나서도 찜찜함이 남아요.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와의 연관성을 위한 부분들은 좀 줄이고, 굳이 늙은 빌보와 절대반지를 보여주면서 꺼림칙함을 남기기보다는 빌보의 여정이 끝났음을 편안하게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떠들어대지 않아도 이게 반지의 제왕 프리퀄이라는걸 모르는 사람은 없는걸요.



덧글

  • 알렉세이 2014/12/30 21:14 # 답글

    엘프들은 차갑고 시크하지만 착한 호구였습니다.ㅠㅠ
  • 로오나 2014/12/31 16:00 #

    오와 열을 맞춰 아름다움을 겨루다가 정의와 명예를 위해 호구의 길을ㅠㅠ
  • 냐무 2014/12/31 01:00 # 삭제 답글

    저도 보면서 당황했던게 타우리엘이었어요. 정말 뜬금없이 사랑 타령이라니요. 보면서 으잉하며 벙쪄 있었답니다.
  • 로오나 2014/12/31 16:01 #

    애가 사랑에 빠진건 알겠는데 거기서 왜 그 소리를 하는지_no
  • 키르난 2014/12/31 08:30 # 답글

    호빗과 반지의 제왕은 본편 분량 자체가 엄청 차이나는데.. 동일하게 3부작이라. 뭔가 억울해요!(..) 하여간 이제 피터 잭슨은 마음 편히 테메레르에 집중할 수 있겠군요. 이건 원작 자체가 산, 아니, 세계로 가고 있어서 더 걱정됩니다. 하하하..
  • 로오나 2014/12/31 16:01 #

    그래서 전 2부작으로 나왔으면 영화 완성도 측면에선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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