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 엄마, 나 타스랑 케이스 사줘!



개봉 초창기에 보고 왔는데 요즘 바쁘고 시간 없고 이러쿵저러쿵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제야... 으아아아. 그냥 안쓰고 넘어갈까 했는데 초안은 다 작성해놓은 걸 그냥 지나치기는 아깝고 해서 끝까지 쓰기로 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일단 한줄 요약부터 하겠습니다.


"엄마! 나, 타스랑 케이스 사줘!"


저 둘이 귀여워서 하악하악. 군용 로봇 주제에 왜 이렇게 귀여운 건지 모르겠어요. 내 군용 로봇이 이렇게 귀여울 리 없어!


보는 내내 수많은 태클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녔습니다. 저거 말이 되나? 아니, 저게 뭐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과학적인 부분이 아니라 배경 설정과 각본에서 문제를 많이 느꼈습니다. 식량난이 와서 엔지니어가 쓸모없는 세상이 왔다거나, 설득해보라고 하니까 튀어나오는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러브 드립이라던가, 저기서 한시간 지나면 수십년 지나가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려가는건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하는 건지 모르겠다던가... 등등. 그러나 그런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지구에서의 초반부와 막판의 블랙홀 진입 이후는 지루했지만.


작품 자체는 굉장히 고전적인 이야기입니다. 요즘 이런 SF 보기 힘들잖아요. 20세기의 SF들은 인류가 미래에 겪게 될 인구폭발이나 식량, 에너지 문제 등등의 심각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우주 진출 자체를 굉장한 것으로 다루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그런 이야기는 보기 어려워졌죠. 물론 그런 이야기들은 작품의 저변에 깔려있는 역사 등으로 다뤄집니다만 그 자체를 메인 테마로 다루는 경우는 드물어졌습니다. SF 영상물은 우주로 가는 것 자체보다는 아득한 우주 저편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한 인류가 다루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더 많은 관심을 할애하고 있었죠.

인터스텔라는 그런 점에서 새롭지는 않아요.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다 어디서, 그것도 꽤 오래 전에 본 것들이에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비롯해서 얼마나 많은 고전 SF 소스가 있는지를 신나게 떠들었지요. 크리스토퍼 놀란도 이 영화를 기존에 없었던 혁신적이고 새로운 이야기로 포장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고전들에 경의를 표하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낭만적이에요.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영화입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딸의 사랑으로 출발해서 마지막에는 남녀간의 사랑이 되고 거기에 대한 집착이 삭막하게 흐르기 쉬운 소재들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를 감상적인 분위기로 만들지요.


크리스포터 놀란의 필름, 아날로그 촬영에 대한 집착은 유명하고 이 작품에서도 옥수수밭을 진짜로 만들었다거나 하는 일들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집착이 좋게만 작용한 것 같지는 않아요. 지구의 황사 장면은 그런 보람이 있었다고 해야겠지만 우주로 나간 후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보다 보면 종종 화질이 거슬릴 정도로 떨어지는 부분들이 있고 미니어처로 만든 우주선도 그렇게 리얼해보이지 않거든요. 굳이 이런 장르를 찍으면서까지 CG와 디지털이 싫다고 발버둥칠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도 웜홀과 블랙홀은 압도적입니다. 그리고 이 둘로 이 영화의 블록버스터적인 볼거리는 끝이기도 하지요. 압도적이지만 짧아요.


이 작품의 과학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웹상에서 정말 수도 없이 갑론을박이 오고갔습니다. 본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한마디씩 하고 싶은 충동을 부채질하는 영화에요. 아주 전문적인 부분들은 다른 분들에게 맡겨두고, 제가 보면서 정말 납득 안갔던 부분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지구 대기권 탈출 때와 비교하면 기술이 2세기는 더 앞서간 걸로 보이는 레인저호의 성능


2.블랙홀이 항성 역할을 해서 행성이 그 주변을 돌고 있는 게 이론적으로 말이 된다는걸 알지만, 거기가 사람이 살 수 있는 동네가 될 수 있냐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지요. 저 행성에서는 1시간만 보내도 밖에서는 수십년이 지나 있는 동네에 내려가서 확인해보자고 하는 것부터가 얘네가 이성적인 판단과는 담을 쌓은 걸로 보이고, 거길 인류 제2의 요람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하는건 도대체 무슨 약을 해야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고...


3. 이렇게 된 이상 답을 알자고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자는 패기 넘치는 결단은... 그래요. 이론상으로는 블랙홀 속에서 통신도 가능하다고 하죠. 근데 블랙홀 주변의 어마어마한 열은 도대체 어떻게 버텨내고 안으로 들어간 건데? 열혈과 근성? 아니면 위대한 사랑의 힘? 위대하지만 나사빠진 5차원의 존재님들이 도와줬다는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애당초 뭘 믿고 그렇게 하자고 하는 걸까요?


보다 보면 나사는 인류 구원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인류는 이미 글렀어. 연구 예산 타내려고 하는 거지' 그걸 명분 삼아서 멸망하기 전에 그래도 블랙홀에 대해서는 알아야겠다는 블랙홀 덕심으로 똘똘 뭉친 집단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만 박사였습니다. 중간에 이 양반이 주인공을 죽이려고 하면서 나불대는 부분은 정말 감탄스러웠어요. 세상에, 사람이 저토록 경이로운 자기합리화로 듣는 사람을 빡치게 할 수도 있구나. 이 영화에서 제가 세 번째로 멋지다고 생각하는 장면입니다. 첫번째랑 두번째는 물론 웜홀과 블랙홀이죠.


블랙홀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흥미진진하게 봤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탁 풀렸습니다. 5차원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부분은 좋았지만 그 안에서의 진행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어요. 굳이 이미 겪은 과거랑 그걸 이어서 시간의 인과를 완전하게 만들어놓느라 발버둥치는 부분도 하품 나왔고요. 그리고 블랙홀 속의 주인공과 지구의 딸내미를 교차로 보여주는 부분에 가면... 저는 '인셉션' 때도 막판에 지겹도록 현실-꿈-꿈을 교차로 보여주는 부분에서 고통받았는데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연출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군요.


엔딩은 보면서 좀 어이없었습니다. 영화 내내 딸만 편애하는 관계 설정도 이상했는데 엔딩에서 주인공은 아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하나도 관심이 없어요. 늙은 딸을 만나는 부분은 짠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동안 죽 끌어온 감정을 납득가게 풀어주는게 아니라 그냥 브랜드 박사 구하러 가버리죠. 거기에 대해서 뭔가 공식적인 지원은 하나도 없이 우주선 훔쳐타고 간걸 암시하는 부분까지 가면 이거 도대체 뭔가 싶더군요. 주인공과 브랜드 박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하던 사이도 아닌걸 감안해도 납득이 안 가는 일이고, 무엇보다 인류의 태도가 이상해요. 인류는 주인공 일행을 영웅시하고 있고, 브랜드 박사가 웜홀 저편에 살아있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아무도 구하러 가지 않았던 걸까요?



덧글

  • 긁적 2014/12/17 17:27 # 답글

    각본은 대실망이지만 비주얼이 워낙 엄청나서 평타는 친듯 합니다.

    아. 왕십리 아이맥스에서 봤어야 했는데 ㅠ.ㅠ
  • 로오나 2014/12/17 17:31 #

    아무래도 각본상으로 '이거 좀...' 싶은 부분들이 많았지요. 차라리 앞뒤 좀 안맞으면 어때! 막 달리면 되지! 하는 영화였으면 모르겠는데 그런 영화도 아니다 보니.

    전 상암 아이맥스에서 봤었는데 웜홀 장면과 블랙홀 부분은 정말 대단했지요.
  • 샘그레코 2014/12/17 18:18 # 답글

    근데 사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도 개봉 당시에는 내러티브가 엉성하다는 평을 받았었죠. 어차피 인터스텔라도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처럼 비주얼로 사람들을 홀린 영화라 전 후대에 비슷한 평을 받게 될거 같습니다.
  • 로오나 2014/12/17 21:02 #

    이야깃거리는 충분히 많은 영화 같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례적으로 SF로서 천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기도 하고.
  • 잠본이 2014/12/19 00:19 #

    2001은 아서 클라크의 소설판으로 보완이라도 가능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것도 없는지라(...)
  • 더카니지 2014/12/17 21:40 # 답글

    중력방정식 이후 태양계에서 식민지-스페이스 콜로니-를 만드느라 경황이 없어서 의도적으로 무시한거 같네요. 영화에 나온 기념비를 보면 탐사대 전원을 사망자 취급;; 아마 지구측에선 모두 죽었다고 간주하고 스페이스 콜로니 만들고 인류 재건하는데만 집중한듯
  • 로오나 2014/12/17 22:21 #

    그렇게 쳐도 말이 안되죠. 주인공은 우주선 하나만 훔쳐타고 가는데요? 그게 뻔히 죽을 행동이 아니라면 엔딩 시점의 인류에게 있어서 그건 더 이상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는 결론이 됩니다.
  • 리오넬메시 2014/12/17 21:56 # 답글

    찾으러갈 자원이 없었던거겠죠.. 저는 쿠퍼가 에드먼드에 안가는게 질투처럼 느껴젔습니다.
  • 로오나 2014/12/17 22:21 #

    1. 그렇게 쳐도 말이 안되죠. 주인공은 우주선 하나만 훔쳐타고 가는데요? 그게 뻔히 죽을 행동이 아니라면 엔딩 시점의 인류에게 있어서 그건 더 이상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는 결론이 됩니다. (2)


    2.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근데 솔직히 전 그렇게 보이지 않았어요. 러브 드립은 가장 생뚱맞은 부분이었고.

    근데 그런걸 떤서 어떤 선택을 했건 그 행성들을 인류의 새로운 거주지로 삼자고 하는 것부터가 다 미친짓으로밖에 안보였다는게 가장 크고.
  • minci 2014/12/17 23:21 # 답글

    이제 굽시니스트의 '가카스텔라'를 보시는 겁니다.
  • 잠본이 2014/12/19 00:22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859
    내가 굽본좌 만화는 데뷔 전의 ○○기어스 말고는 별로 재미를 못느꼈는데 이건 참 절묘하더군요
  • 2014/12/17 23: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LONG10 2014/12/18 00:09 # 답글

    전 아버지의 옥수수밭에 불을 지른 여동생을 용서? 라고 하기엔 표정이 너무 허탈해보이지만 하여간 폭력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은 오빠를 감히 대인배라 부르겠습니다.

    "오빠와 여동생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관계와 같은 거요!" by 심슨 가족의 윌리.

    그럼 이만......
  • 알트아이젠 2014/12/18 09:02 # 답글

    정말 아들에 대한 묘사가 좀 아쉽더군요. 나머지는 만족하면서 봤습니다.
    조조로 왕십리 아이맥스로 본 건 좋았는데, 초반에 우주선 발사부터 첫번째 행성에 도착할 대, 살짝 졸았던게 이래저래 아쉽네요.
  • 치노 2014/12/18 10:19 # 삭제 답글

    그들을 보내기 전에 늙은 박사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란 식의 말을하죠. 실제로 수정란도 실어 보냈고요. 여력이 되지 않았다..그 이후에 딸이 아버지가 가르쳐 주었다 하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는 말이나 콜로니 안에 탐사선의 대원들을 기리는 비를 세운걸로 봐서 전원 사망으로 간주하고 콜로니 개척에 전념한 듯 합니다.
  • 잠본이 2014/12/19 00:22 # 답글

    아마도 브랜드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쿠퍼가 둥둥 떠다니는걸 구조한 시점을 전후하여 극히 최근에 지구에 도달한 것 같더군요.
    그래서 아마 찾으러 갈까말까 논의중이거나 준비중이었는데 쿠퍼가 선수를 친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근데 극중에서 명확히 드러난게 아닌지라 좀 미묘)

    만아저씨 얼굴 보며 "와 되게 찌질한데 얼굴은 맷데이먼 닮았네" 요랬는데 진짜 맷데이먼이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낮술먹은 루돌프 2014/12/19 00:28 # 답글

    방금보고왔는데 로오나님 리뷰가 있을줄은 몰랐네요. 저도 첫번째 행성의 설정은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차라리 블랙홀을 통과할때 계산착오나 도중에 사고에 의해서 시간이 흐르는데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생각하네요. 몇년전에 2001스페이스오딧세이를 본적 있는데 영화에는 무지해서 무슨 내용인지는모를정도로 막바지에 아무설명이나 대사가 없어서 이해를 못했는데 지금생각하면 구차하고 이런저런 설명보다는 오딧세이 처럼 그냥 보여주는것도 좋아 보이네요. 갑자기 사랑어쩌고 하면서 설명하는데 거기서 확 집중이 깨져버려서.. 초자연적인 블랙홀의 생성이나 고차원의 이야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거면 차라리 그런 설명없이 진행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비로그인죄송 2014/12/19 17:01 # 삭제 답글

    쿠퍼일행이 타고간 로켓이 마지막 로켓이라고 나오고요
    아마 그 방정식을 완성하고나서
    실현하는데 걸린 시간이
    그래도 몇십년은 걸렸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인류가 인공핵분열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손에 넣고나서 그걸 어떤 방향으로든 써먹을수 있게 될 때까지 걸린 시간이랑 비교해 보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저는 이야기 구조보다는 인물이 얄팍해서 깼었습니다
    또한편으로는
    결국 문과가 만든 SF라서
    과학적인 듯 보이지만 말하고자하는 주제랄까 포인트가 그쪽에 맞춰져있질 않고
    설국열차보다야 덜하지만 우화스럽달까 그런 느낌도 받았고요
  • Uglycat 2014/12/20 03:05 # 답글

    보면서 입이 벌어지게 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웅대한 우주 비주얼 때문이든 하품 나오게 하는 스토리 때문이든(...)
  • 2015/02/18 10:3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2/18 11:2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2/18 14:0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2/19 08:3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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