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피센트 - 마녀의 스토킹 육아일기



스포일러분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제법 이상한 영화입니다. 영화가 재미있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최소한 저는 만족스럽기는 했어요. 기대치를 어디다 두느냐의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이 영화는 로버트 스트롬버그 감독의 연출 데뷔작입니다. 그는 이 영화 전까지는 상당히 굵직한 작품들의 미술을 담당해온 사람이에요. 필모그래피를 검색해보면 나오는 작품이 아바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이 셋이죠. 이 사람이 판타지 영화를 연출한다면 대충 어떤 화면이 나올지 감이 오지 않나요?

저는 처음부터 안젤리나 졸리의 판타지 화보 같은 느낌을 기대하고 갔는데, 아, 그런 점에선 정말 큰 만족을 줍니다. 영화 러닝타임 내내 안젤리나 졸리가 말레피센트로서의 아름다움을 과시해주는 데다가 미술적인 부분은 참으로 흡족하거든요. 다만 역동적인 액션이나 스펙터클은 별로 없고 그나마도 앞과 뒤에 다 몰아넣어놨는지라 그런 류의 볼거리를 기대하는 분들은 실망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단 예고편은 깨끗하게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가시길 권합니다. 디즈니 역사상 가장 사악한 마녀? 이 영화에 그런 캐릭터는 없어요. '엄청 사악해 보이는 얘도 사실 알고 보면 불쌍하거나 혹은 착한 녀석이야' 정도로 생각하고 가시다간 큰코 다칠걸요.


말레피센트는 대놓고 착하고 불쌍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좀 애가 비뚤어... 졌다기보다는 그러고 싶어하지만 그래봤자 본성이 워낙 착해 빠져서 제대로 비뚤어지지도 못한 캐릭터입니다. 예고편을 보면 처음부터 사악함 만땅으로 나오는 말레피센트에게 이런 반전이 있었어! 라는 식으로 뻔한 이야기를 할 것 같지만 그거 다 속임수에요. 이 이야기에 반전 따윈 없습니다. 이야기가 뻔하다는 의미로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 반전으로 뒤통수 때릴 의도가 없거든요, 이 영화. 심지어 후반부에는 지금까지의 디즈니 작품과는 좀 다른 의미로 '어이어이, 설마... 설마 진짜로 그럴 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 설마가 들어맞을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정중한 이야기입니다. 말레피센트가 왜 그 모양 그 꼴이 되어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차근차근 보여주지요. 이야기 자체는 진짜 뭐 없어요. 나쁜 놈은 그냥 나쁜 놈이었고 착한 애는 착한 애였고 바보들은 끝까지 바보이며 백치는 끝까지 백치입니다. 백치가 누구냐고요? 그야 당연히 오로라 공주죠. 요정들이 근심 걱정 없이 자라게 될 거라고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마법을 걸어준 덕분에 오로라는 정말 근심도 걱정도 모르는 백치가 되었더군요. 애가 어쩌면 이렇게 생각없이 살 수가 있는지 보다 보면 감탄스러울 지경이에요. 이런 성향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일관적이며 결말부까지 가면... 음. 전 왠지 동정할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 남자와, 진짜 뭐 잘못한 것도 없이 불행해진 그 부인에게 동정심이 일 지경입니다.


영화 분위기는 사고방식이 사차원인 애들이 모여서 시리어스한 척 개그를 남발합니다. 이 뒤틀린 개그 센스에 피식피식 웃는 걸 재미있어 하느냐, 아니면 시큰둥하느냐가 이 영화에 대한 만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취향적인 요소라고 봐도 될 거에요. 말레피센트가 '따, 딱히 내가 저 애를 좋아해서 돌봐주는 거 아니거든!' 하면서 실질적으로 오로라의 숨은 보호자이며 부모 역할을 하는 것부터가 그렇죠. 말레피센트나 진정한 사랑을 외치는 요정들이나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의 극한을 보여주는 오로라 공주나... 하나같이 나사 빠진 캐릭터들이 모여서 어벙한 행동으로 실소를 자아내는데 이게 재미있다면 재미있을 것이고 아니라면, 저처럼 미술적인 부분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취향이 아닌 한에는 재미없을 거에요. 전 다행히 이 둘에 모두 속하기 때문에 내용적인 면에서도 별 불만이 없었지요.


보면서 진지한 부분을 좀 줄이고 오로라의 성장기 부분의 비중을 늘렸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사실 애 키우는게 아니라 애 죽이기 딱 좋아보이는 요정들을 보다 못해 말레피센트가 스토커 겸 실질적인 보모 노릇을 하는 부분이 제일 재미있었거든요. 여기에만 중점을 둔 영화를 만들었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가 나왔겠다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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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타누키 2014/05/30 20:35 # 답글

    츤데레의 매력이 세계로 퍼지고 있네요. 안젤리나 졸리가 츤데레로 나오니 딱 어울리던 ㅎㅎ
  • 로오나 2014/05/31 14:48 #

    따 딱히 내가 저 꼬맹이를 좋아하는 거 아니거든!

    부끄럽거나 당황스러우면 일단 재우거나 변신시키고 보는 졸리 누님...
  • Darlin 2014/05/30 21:49 # 답글

    아하.. 그런식의 영화구나..
  • 킨키 2014/05/30 22:03 # 답글

    요정 셋은 진짜 으아아 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안젤리나 졸리 1인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 로오나 2014/05/31 14:48 #

    이 영화의 미덕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안젤리나 졸리의 출연분량을 충분히 늘려놨다는 거죠.
  • 듀얼콜렉터 2014/05/31 04:32 # 답글

    이번주는 그냥 엑스맨 두번째 볼 생각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보기엔 개인적으로 애매하고 밀리언웨이는 평이 바닥을 뚫을 기세라 볼 게 없네요 쩝.
  • LONG10 2014/05/31 10:22 # 답글

    라푼젤의 고델과 함께 둘이 육아전문 보모 회사를 창업하면...

    그럼 이만......
  • 로오나 2014/05/31 14:48 #

    아마 둘이 잘 안맞을걸요. (...)
  • Uglycat 2014/05/31 23:04 # 답글

    반전이 없다는 게 반전...?
  • 회색의겐달프 2014/06/05 10:57 # 삭제 답글

    of the 졸리, by the 졸리, for the 졸리
    ...인 느낌.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만 아쉬운 건 아쉽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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