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 - 세계 규모의 커플 층간소음이 부른 대재앙




스포일러분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아이맥스 3D로 봤습니다. 저한테는 무척 만족스러웠던 영화인데, 그런 한편 우리나라 웹에서 실망했다는 혹평이 많은 것도 이해는 갑니다. 기대 포인트를 어디에 맞추느냐가 무척 중요한 영화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괴수가 신나게 날뛰는 활약상을 보고 싶다, 그런 기대를 품고 간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괴수의 실체나 활약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은 별로 없고 전부 부분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혹은 한바탕 지나가고 난 다음의 참상을 보여주는 식으로 그 존재감을 극대화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전 이 영화가 괴수의 활약 그 자체보다는 괴수가 등장했을 때 인류가 보이는 리액션에 더 무게를 둔 재난 영화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류의 대응입니다. 고지라와 무토라는 미증유의 재난에 맞서는 인물들 중에서 악당이거나, 방만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고 모두가 고결한 정신으로 무장한 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합니다. 정말 인류가 쌓아온 역량을 총동원해서 맞섰지만, 그러나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는 아득한 절망감. 심지어 인류는 괴수들에게는 적으로 인식되는 것조차 실패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괴수들은 그저 한결같이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을 뿐이에요. 인류가 뭘 하건 좀 거슬려하는 정도일 뿐, 싹 무시하고 지나간 자리마다 대파괴, 참극의 현장, 폐허.

이런 느낌을 잘 살려주는 것은 디테일입니다. 도시의 디테일, 폐허의 디테일, 그리고 각 장면에서 인물들이 보이는 행동의 디테일. 열차로 핵폭탄을 운송할 때 원칙을 지켜가면서 성실하게 교각 위아래를 다 확인하지만 뒤쪽 산에서 무토가 일어나는 부분, 도도하게 목적지로 헤엄쳐가는 고지라를 항공모함을 포함한 함대가 뒤쫓는 장면, 무너지는 다리에서 화력을 쏟아붓는 부분 등등...


다만 만족스럽게 본 저도 지적하고 싶은 단점은 직접적인 괴수 활약씬을 너무 아꼈다는 겁니다. 절제함으로써 오히려 괴수의 존재감을 극대화시키는 의도는 좋았는데, 좀 지나쳤어요. 괴수를 통해서 기대감을 부채질하고는 해소는 나중으로 미루거나, 이 광경을 보는 시점을 바꿔버림으로써 피시식 꺼버리는 일을 반복하는데 이건 보다 보면 종종 빡치기까지 하거든요.

예를 들면 공항에서 고지라와 무토가 처음으로 격돌하는 부분이 그렇죠. 여기까지만 해도 관객들은 꽤 긴 기다림을 겪은 상황이었는데 격돌 그 순간에 장면 전환, 아니, 그걸로 끝났으면 모르겠는데 그 다음에 뉴스에서 작은 화면으로 싸우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진짜 해도해도 너무한 부분이었습니다. 괴수 활약씬을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풀었으면 훨씬 쉽게 어필하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서 아쉽더군요.


그리고 결전의 무대가 샌프란시스코인 것도 안 좋았어요. 건물들이 너무 높아서 고지라가 충분히 커다란 데도 불구하고 그 부분에서는 생각만큼 안커보이더군요. 건물이 좀 낮은 도시를 고르던가 아니면 고지라와 무토의 사이즈를 좀 더 키웠으면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만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괴수대결전 부분은, 정말 아낄 만큼 아낀 보람이 넘쳐났습니다. 혼신의 꼬리 카운터와 꼬리부터 불이 하나씩 켜지면서 마침내 작렬하는 방사능 브레스 부분에서는 전율이 흐르더군요.


아, 불만점 하니 인간 캐릭터 중에도 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인물이 있습니다. 와타나베 켄이 연기한 세리자와입니다. 고지라를 직접 본 시점부터는 완전히 멘붕 상태가 되어서 뜬구름 잡는 헛소리만 계속 해대는 게 참... 이게 원작 헌정용 클리셰라면 거기까지야 이해를 해주겠는데 히로시마 운운하는 부분은 너무하더군요. 히로시마를 언급한 것 자체를 뭐라고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상황하고 전혀 맞질 않잖아요. 만약 미군 측에서 시민들이 아직 다 대피했건 못했건 도심 한복판에다가 핵폭탄을 때려박으려고 했다면 모를까, 더 이상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먼 바다로 유인한 뒤에 거기서 터뜨리겠다고 하는데 이런 소리를 하니 그저 생뚱맞죠. 그 다음에 나온 예전에도 핵폭탄 쐈지만 안 먹혔다는 지적은 당연히 나올 소리지만요.


요약하자면 이번 '고질라'는 세계 규모의 커플 층간소음이 부른 대재앙입니다. 무토 커플이 지구 저편에 자리한 채, 그 사이에 영원한 솔로 고지라를 둔 채로 서로에게 외치죠.


'자기야~' '왜 불러~' '사랑해~' '아잉~' '우리 짝짓기할까?' '응!'


...그리고 빡친 고지라가 정의의 마음으로 일어나 사악한 커플을 조지러 가는 한편의 모험 대재앙극.




덧글

  • FREEBird 2014/05/17 19:41 # 답글

    초대부터 쇼와 시리즈까지만 해도 일본에 고층건물이 그리 많질 않았으니 55m로도 충분했지만(그리고 헤이세이 시리즈는 80m부터 시작해서 100까지 커지는데 그래도 점점 건물과의 격차가.... ㅡ.ㅡ ), 현대의 미국에서 104m로는 확실히 좀 작은 감이 있지요..
  • 로오나 2014/05/17 19:42 #

    배경을 다른 곳으로 바꾸거나, 어차피 이 정도로 무적의 존재라면 150미터 이상으로 만들었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좀 아쉬워요.
  • 2014/05/17 20:3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dam 2014/05/17 20:43 # 답글

    솔로부대의 영원한 큰형님을 알고온 기분입니다
  • 치노 2014/05/17 20:59 # 삭제 답글

    마더 오브 네이쳐는 영원한 솔로부대였습니다. 보는 내내 고질라의 마음이 이해가 됬어요.xxx년을 솔로로 살아왔는데 부활한지1x년된 꼬꼬마들이 자갸~♥우리 애 어디서 기를까? 그러고 있었으니..이전에 먹은 비키니섬 방사능까지 토나오려 했을 겁니다. 결론은 우리 고질라짱은 카와이하고도..(응?)
  • 지드 2014/05/17 21:12 # 답글

    http://bossz.egloos.com/5820537

    히로시마 관련 언급은 해당글 하단부의 고질라: 어웨이크닝(영화의 프리퀄 그래픽 노블)을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영화에서도 고질라가 이전부터 나타나왔고, 고질라도 핵무기로 제거하려 시도했던 적이 있다고 언급하는 부분이 나오지만)
  • 로오나 2014/05/17 21:59 #

    언급하는 부분은 영화 맥락상 비키니섬 건으로밖에 안보이죠. 이런 연계가 있어서 히로시마 언급이 나온 거라면... 생뚱맞은걸 넘어서 최악이군요. 멀티유즈 전략 때문에 영화의 독립적인 퀄리티가 훼손당하다니....

    그리고 핵무기로 고지라를 해치울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미군은 거기에 대한 반박을 하고 있죠.

  • 지드 2014/05/17 22:30 #

    해당 장면의 히로시마 언급이 고질라와 무토를 자극했다는 것인지, 일본도 피해자라는 것인지 오해의 여지도 생기게 애매모호한 편집을 보였고, 오히려 그래픽 노블에서 이를 확실하게 보강해준 것이었죠. 영화의 제작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트랜스포머처럼 오히려 영화가 완성되고 난 뒤 생겨난 헛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타이인 작품들이 보완하며 수습하느라 고생하는 경우도 있었죠(...)
  • 로오나 2014/05/17 22:57 #

    그렇게 봐도 그냥 깨끗하게 그 부분을 쳐냈으면 해결되었을 문제였고...

    그래픽 노블과의 연계를 염두에 두고 기획해서 그렇게 편집을 한 건지, 아니면 영화가 다 완성되고 나서 그래픽 노블이 그것을 확장, 보완하는 기획으로 나온 건지가 문제가 되겠군요. 일단 저한테는 전자로 보입니다.
  • Let It Be 2014/05/18 00:39 # 답글

    원작충실을 제외하면 전투씬구도라던가 인물관계도
    기승전결 스토리텔링에서 오히려 롤랜드에머리히버전이 낫더군요

    주인공이 무토 알 태울때 아무런 긴장감없이 진행시켜서 참......
  • rumic71 2014/05/18 18:43 #

    제목만 다른 걸로 했으면 지금도 좋은 평 들을 영화였지요.
  • Arcturus 2014/05/18 00:44 # 답글

    '인류는 괴수의 적으로 인식되지도 않는다'는 평에 공감 1000%입니다. 사실 무토는 악한 게 아니죠(...) 염장질 빼면(...)
  • 듀얼콜렉터 2014/05/18 10:40 # 답글

    저도 어제 재밌게 보고 왔습니다. 북미에서 첫작품이라(1998년에 나왔다구요? 그게 무슨 소리요, 의사양반!) 그런지 괴수 장면을 아꼈던건지 아니면 너무 괴수 부분이 많았던 퍼시픽 림(같은 제작사)에서 배워서 절제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작품은 대히트 할듯 하니 후속작에서는 더 많이 나올수 있을수도 기대해 볼만할것 같네요~
  • sg랑랑랑 2014/05/18 13:05 # 삭제 답글

    ㅋㅋㅋ마지막에 빵터졌습니다
  • Uglycat 2014/05/18 18:56 # 답글

    진정한 솔로부대 대원수 목격...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7 대표이글루_mo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