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 더 레전드 - 노장들과 이병헌이 총질하는 영화



원제는 그냥 심플하게 'Red2'인데 왜 국내 제목은 '레드 : 더 레전드'인 건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속편이 넘버링을 달고 나오는 대신 다른 제목을 선택해도 넘버링으로 바꾸더니, 이제는 거꾸로 가는군요. 전 이런 유행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더 레전드'라는 부제가 이 영화에 딱히 어울린다고 보지도 않고요. 이 영화는 시작부터가 냉전시대의 전설이었던 하지만 이제는 은퇴한 노장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인데 거기다 '더 레전드'라는 말을 붙여봤자 구차하기만 해요.

전편을 보면서 이게 DC 코믹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거의 안들었던데 비해 이번에는 그런 티를 냅니다. 내용이 그렇다는게 아니라 영상적으로 꽤 자주 실제 인물 -> 만화 그림 -> 실제 인물로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이번 '밤 그림자' 에피소드가 원작 만화에 있었던 에피소드인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전편은 브루스 윌리스와 모건 프리먼과 존 말코비치와 헬렌 미렌이 뭉쳐서 젊은 애송이들을 때려부수는 영화였습니다. 딱 기대한 것만큼 보여주는 영화였고 그래서 속편에 대한 기대감도 그 정도에서 형성되었습니다. 감독이 전작의 로베르트 슈벤트케에서 딘 패리소트로 바뀌긴 했지만, 그 역시 관객이 이 설정에서 무엇을 바라는지를 잘 알고 충족시켜주는군요. 여전히 그들은 백전연마의 노장들다운 노련함으로 무장하고 있고 젊은 애송이들을 상대로 무쌍하면서 간지를 폭발시킵니다. 이병헌의 드리프트 + 헬렌 미렌의 쌍권총질 합격기 같은 부분은 진짜 너무 노골적으로 노리고 넣은 티가 나서 빵터졌죠. 전작보다 나은 속편이라고는 못하겠고, 딱 전작만큼 해주는 속편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관객이라면 특별한 기대요소가 추가될 겁니다. 바로 이병헌의 출연이지요. 예고편에서는 제법 비중 있게 나왔지만 본편에서는 별거 아닌 역할 아닌가... 라는 걱정은 필요없습니다. 비중도, 역할도 썩 괜찮아요. 이병헌은 이 영화 출연을 따내기 위해서 프로듀서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에게 식사 대접과 레드와인 선물로 로비를 했다고 솔직하게 밝힌 바 있는데, 그런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브루스 윌리스가 감독에게 부탁해서 단독 총격신을 주기도 했다는데, 어쨌거나 거기 말고도 거의 모든 액션신에서 특출난 존재감을 과시고 있습니다.

다만 보면서 약간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의 캐릭터가 지.아이.조 시리즈의 스톰 쉐도우와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헐리웃에서 요구하는 이병헌의 캐릭터가 이런 풍으로 굳어져버릴 우려가 좀 드네요.


어떤 의미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 '한'은 정말 베지터를 닮았습니다. 일단 처음 나올 때부터 강렬한 포스를 풍기고 근접전에서는 대적자가 없을 정도로 막강한 액션을 자랑하지만 번번히 허점을 보여서 우스꽝스러운 꼴을 당한다는 것부터가 그래요. 브루스 윌리스와의 과거 때문에 최고의 정보요원 자리에서 쫓겨나서 범죄자가 되고, 그리고 세계최고의 킬러가 되지만 본성이 나쁘지는 않아서 엄청난 수의 사람이 죽을 상황이 되자 원한을 접어두고 힘을 보태는... '따, 딱히 내가 정의의 마음을 가져서 너희들을 도와주는 건 아니야!'쯤 가면 노골적이죠!

원래 '한'은 원래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설정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병헌이 특별히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면 한국인으로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한국인이 되었다는데... 음. 아주 좋아요. 한조배라는 풀 네임은 완전 이상한지라 이것도 좀 바꾸지 그랬나 싶지만요. 설정이 한때 한국 최고의 정보요원이었던지라 능수능란하게 영어를 구사하다가도 감정이 격해지는 부분에서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데 이게 정말 웃깁니다. 한국인이 아니고서는 빵터질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한국인에게는 완전 직격이에요.


이병헌 이야기만 길게 했는데, 이번에는 브루스 윌리스의 캐릭터는 전편에 비해서 좀 안 좋았어요. 여자 때문에 갈팡질팡해서 허점이 너무 많이 보이거든요. 그 원인인 메리-루이스 파커가 연기한 사라는 너무 똘끼 넘치는 사고뭉치로 나와서 살짝 비호감. 애당초 사람 죽이는 살벌한 세계를 유머러스하게 다루는 시리즈이긴 하지만 사라는 조금 선을 넘어가버린 것 같습니다. 조금만 자제했다면 딱 좋았을 것을.

이번에 존 말코비치는 유머러스하게 멋졌는데 초반에 '사람 못죽인지 꽤 됐잖아'부터가 빵터져요. 아, 이 무슨 사이코패스의 대화법인가요. 처음부터 같은 팀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그에 비해 헬렌 미렌은 이번에는 이야기 속에서는 비중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할머니가 총질하시면 얼마나 간지가 폭발하는지를 보여주실 뿐이죠. 스나이핑이면 스나이핑, 무쌍이면 무쌍, 쌍권총질이면 쌍권총질까지... 아, 이건 그야말로 여왕의 포스에요.


또 하나 빼먹을 수 없는 배우가 있는데, 안소니 홉킨스입니다. 처음에는 너무 선량하게 나와서 별로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중간부터 본성을 드러내주시면서 포스가 폭발합니다. 역시 이 분은 이러셔야죠. 후덕한 얼굴에 선량한 미소를 지은 채로 사람 픽픽 죽여대는데, 마지막까지 한결같아서 멋집니다.


전편과 이번편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꼽자면 스케일이 커졌다는 점보다는 첩보조직을 다루는 태도입니다. 전편은 CIA와 치고받으면서도 '첩보조직이 좀 너무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는 괜찮은 놈들도 있다'는 뉘앙스였던데 비해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첩보조직은 다 쓰레기다'라고 비난하고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전작에서 나왔던 괜찮은 젊은 친구인 윌리엄 쿠퍼(칼 어번이 연기했죠)는 나오지도 않고 '한물 간 퇴물들 따위가'하고 으스대다가 한방에 훅가는 쓰레기 같은 애송이들만 보여요. 헐리웃 영화에서 CIA를 까는 게 트렌드가 된지는 꽤 되었는데 이제는 '007 스카이폴'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첩보조직이 이 시대에 존재하는 게 정말 옳은 일인지 의심하게 하는군요.





덧글

  • 창천 2013/07/21 16:06 # 답글

    이병헌의 비중이 어느정도는 되는군요. 예고편이 훼이크는 아닐까 하고 걱정했는데, 그럴 필욘 없어보이네요.
  • Uglycat 2013/07/21 16:37 # 답글

    이번 편에서는 프랭크보다 사라가 더 크게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임팩트가)...
  • 로오나 2013/07/21 19:49 #

    눈에 들어오는데, 전 솔직히 좋은 의미로 들어오진 않더군요. 그녀로 인해 재미있었던 부분도 많기 때문에 약간만 자제해줬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rumic71 2013/07/21 17:06 # 답글

    한씨 조씨 배씨입니까... 뭐 토코칸 타에조보다야 한국 이름답네요.
  • ㄴㄴㄴ 2013/07/21 18:09 # 삭제

    작가가 한국이름 알아본다고 검색을 한모양입니다.
    이쪽 사람들이 우리나라 성과 이름을 구별하지 못하는것 같더라고요.
    한 조 배 라는게 한국인 성을 쭉 이어 붙인겁니다.
    한씨 조씨 배씨 요 ㅋ
    이병헌씨 욕설은 감독이 재미있어해서 분량을 늘릴려고 해서 나중엔 오히려 이병헌씨가 말렸다는군요.
  • 로오나 2013/07/21 18:42 #

    욕설은 딱 이 정도가 좋았던거 같아요. 감정이 격해지면 튀어나오는 정도니. 그 이상 했으면 과잉이었을 것 같네요.
  • 미션루스 2013/07/21 18:37 # 답글

    이병헌 인터뷰 보면 한조배의 이름도 바꿔달라고 할까 하다가
    독특한 이름이 다른 재미를 줄수 있겠다 싶어서 일부러 이름에 대한 건의는 안했다고 하더라고요
  • 로오나 2013/07/21 18:41 #

    그렇군요. 전 바꾸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보는데...
  • 험험 2013/07/23 04:09 # 삭제

    엇, 제가 본 거랑은 다르시네요. 제가 본 내용에선 이병헌씨가 한조배란 이름의 어감이 이상해서 건의를 해서 '한'으로 바꿨다고 했거든요. 전 관련 인터뷰 내용을 보고 극장에 가서 한조배 그대로 사용하는 거 보고 이상했는데, 전체 이름은 그냥 한조배 그대로 가고, 대신 극중에선 이병헌씨의 건의대로 이름을 '한'으로 통일한 것 같더군요. 실제 한조배라는 이름은 처음 소개될때 빼놓고는 전체이름으로 불리진 않았습니다.
  • gini0723 2013/07/21 18:38 # 답글

    그래도 이정도 영화에서 딱 기대할만하게 재밌는것 같더라구요 ㅎㅎ 내일 보러 갈까 생각중입니다. 이병헌도 마음에 들구
  • 로오나 2013/07/21 18:41 #

    딱 전편만큼 해요. 이병헌의 요소가 한국인에게는 + 이기도 하고.
  • 김안젤라 2013/07/21 21:36 # 답글

    ㅋㅋ엄청 웃으면서 봤었는데 개그도 있어서 보면서 즐거웠었어용
  • 날개 2013/07/22 00:06 # 삭제 답글

    레드2라고 안하고 부제를 붙인게, 레드 1편이 한국에서 워낙 듣보 수준으로 망했던지라...
    레드2라고 하면, 시리즈물인게 티가 더 나고 그러면 아무래도 전 편을 안 본 사람은 망설이거나 안보게 되잖아요.
    그래서 전략적으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저같은 경우도 이병헌씨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기 전에는 레드가 개봉했었는지도 몰랐었거든요..;;
  • 로오나 2013/07/22 07:55 #

    하긴 1편이 50만명 정도 들고 쫑나긴 했죠.
  • rumic71 2013/07/23 14:01 #

    그래도 TV에서 물리도록 틀어주었는데요 (요즘 또 틀고 있고...)
  • 험험 2013/07/22 20:21 # 삭제 답글

    레드1편이 국내에서 영 신통치가 않았었군요. 위엣분 댓글보고 알았습니다. 하긴, 레드1은 케이블vod로 처음봤군요.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만 레드2는 국내에서 1편보다는 확실히 흥행할듯 합니다. 이병헌 티켓파워도 한몫을 하겠지만 일단 재미가 좋았습니다. 저 스스로는 1편보다 나았다는 느낌마져 들었는데 빵빵터트리는 스케일과 개그력이 1편보다 높은 느낌이었거든요. 이병헌 자체는 개그캐릭이 아닌데, 상황이 이병헌을 웃기게 만들고 말이죠.ㅋ 특히 마지막 이병헌 우리말 대사는 깨알같아서 극장이 빵터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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