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작이 폭풍 같은 악평을 받았음에도 충분한 흥행실적을 가졌기에 보다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어 볼거리면에서 화끈하게 파워업한 후속편. 스토리니 이런 거에 대한 기대는 전작을 회상하며 싹 접어버리고 그저 아이맥스 3D의 좋은 자리에서 시각적 쾌감을 얻을 목적으로 보러 가면 이 영화는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해줍니다. 그쪽 방면으로는 과연 올해 이 영화 능가할 게 몇 편이나 나올지 궁금해질 정도더군요. 하지만 아이맥스 3D가 아닌 칙칙한 일반 3D나 디지털로 봤을 때 이 영화를 얼마나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쪽에서 보신 분들 감상을 보면 뭔가 저랑 다른 영화를 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볼거리 면에서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이 영화와 '신들의 전쟁'을 비교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 영화에 굉장히 실례가 된다고 봅니다. 뭐 스토리 면에서는 개찐또찐이지만. 그리스 신화라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워낙 많고 합리성이 결여되어있는 막장 원작을 가진 영화는 시작부터 리얼리티가 부재되어 있고 이걸 어떻게 각색하건 제대로 된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습니다. 애당초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제대로 된 구석을 찾기 힘든 존재고 따라서 이런 놈들이 뭘 하건 거기에 감정이입하기가 힘든 거지요. 그러다 보니 화끈한 볼거리 외의 부분은 뭘 해도 지루해지는 게 당연한 결과라고나 할까.
'신들의 전쟁'과 '타이탄의 분노'의 차이는 이 부분을 어떻게 처리했느냐인데, '신들의 전쟁'이 볼거리에 해당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던데 비해(이건 정말 예고편의 시퀀스를 길게 늘려놓은 것도 아니고, 그냥 예고편만큼이 다였죠) '타이탄의 분노'는 오히려 볼거리만으로 꽉꽉 채워놔서 그 외의 부분이 거의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 만큼 스토리는 처음부터 설득이나 공감을 포기하고 있어요. 제대로 된 서사가 성립하기 위해 채워넣어야 할 많은 부분들을 그냥 공백으로 남겨두고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는 겁니다. 이 점에 유의해서 가면 화끈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토리 따위 아예 신경이 안쓰일 정도로 시각적 쾌감이 크다 보니까 스토리는 차라리 까고 씹으면서 깔깔거리면서, 그리고 상상력으로 중간중간을 좀 메워보기도 하면서 즐기게 되더군요.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만빵.
풍부한 볼거리의 중심에 있는 크리처들의 디자인이나 디테일은 굉장히 좋았습니다. 맨 처음에 눈길을 사로잡아준 키메라의 경우 제가 본 그 어떤 키메라 디자인보다도 그럴싸하게 구현된 데다가, 그냥 불을 뿜는 게 아니라 태우기 위한 기름 같은 액체를 끼얹고 그 다음에 불을 뿜는다던가 하는 디테일도 감탄스러웠죠.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갔을 때 싸운 사이클롭스들도 역시 인간이 '자신보다 훨씬 큰 거인들'과 싸우는 박력을 아주 제대로 표현해냈습니다. 그들을 잡는 과정도 납득 가게 그려졌고요.
한몸에 두 개의 상체가 달린 마카이 전사들도 막판에 잠깐 간지를 뽐내주시는데, 사실 잘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 부대가 저기서 버티고 있었는지 납득이 안 가거든요. 쟤네들은 그냥 도망가는 게 도와주는 거였는데 자연재해 앞에서 뭔가 해보겠다고 버티고 있어요. 마카이 전사들은 그들이 왜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부여해주는 친절한 존재들입니다. 그야 간지나는 마카이 전사들의 활약을 멋지게 보여주려면 인간이 거기에 맞서서 퍽퍽 맞고 날아가줘야 할 거 아니에요? 사실 그거랑 크로노스가 우워어어 할 때 마그마 폭격 맞고, 마치 마치 폭격기가 쓸고 지나간 캠프처럼 비명 지르며 날아가는 거 외에 인간들이 거기서 버티고 있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요.
그렇게 인간들이 무의미하게 쓸리는 가운데, 제우스의 마성에 사로잡힌 하데스(...)가 제우스를 회복시키고 둘이 함께 무쌍난무 찍는 부분은 너무 멋져서 웃다 죽을 것 같았습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제다이와 시스가 손 잡고 포스로 무쌍난무 찍고 있잖아! 둘은 무지 진지하고 매우 화려해서 볼만하기도 한데 웃겨! 진지하고 멋진데 웃기다고요 이거! 마카이 상대로 포스 장풍도 펑펑 날리고 언리미티드 빠와-로 뇌격도 뿌려주시고! 근데 제우스가 리암 니슨이라서 오해하기 쉬운데(...) 잘 보면 제우스가 시스고 하데스가 제다이인 게 분명합니다. 언리미티드 빠와-는 황제 폐하께서 선보이신 시스 기술이라고요?
크로노스는 아무리 봐도 공격이고 뭐고 한게 아니고 그냥 깨어나서 기지개 좀 켜고 몸 좀 스트레칭하며 돌려줬더니 대재앙이 일어난 것 같아요.그러다가 포스의 힘을 믿는 제우스와 하데스가 힘을 합쳐 한방 날리니 우워어 하면서 지면을 쳐서 파워웨이브 좀 쳐주신 게 전부. 근데 그것만으로도 크로노스가 나오는 부분은 웬만한 재난영화 블록버스터 클라이맥스 부분만큼이나 웅장한 임팩트를 보여줍니다. 특히 손을 휘두를 때 용암이 화면을 가득 메우며 쏟아져 내리는 부분 같은 건 아이맥스 3D에선 움찔할 정도의 박력을 선사하죠.
이렇게 다 정리하고 나서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멋지기만 한 것 같은데, 실은 시시한 게 딱 하나 있었습니다. 미노타우로스. 다른 놈들은 다 박력 쩔게 만들어놓고 왜 미노타우로스만 그렇게 만들어놨는지 모르겠어요. 시시각각 조립식으로 변하는 타르타로스 미궁은 꽤 멋졌는데, 왠지 크레타의 미궁에 있어야 할 미노타오로스가 거기에 등장하더니 무진장 시시하게 까불대다가 가버렸습니다. 제작진이 미노타우로스한테 안 좋은 감정이 있기라도 했나?
스토리는 다시 말하지만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 을 떠나서 거의 없다시피한데, 캐릭터들이 하는 짓을 태클 걸고 씹으면서 깔깔거리는 재미는 제법 쏠쏠해요. 전편에서는 아들한테 혹독한 것 같지만 남들 안보는데서는 아들 피규어를 쓰다듬으며 애틋한 표정을 짓던 마성의 남자 제우스, 델리케이트한데다 우유부단의 극치를 보여주는 하데스, 그리고 시작부터 끝까지 열폭의 클라이맥스를 달리는 아레스! ...근데 다른 신들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오는 신이 제우스, 하데스, 포세이돈, 아레스, 헤파이스토스로 끝이에요. 아폴론이라던가 아테나라던가 기타등등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여기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습니다. 전작에서 했던 짓 때문에 인간들이 '신앙 때려쳐! 신들 꺼져!' 모드로 돌아서는 바람에 신앙의 힘을 잃은 신들이 불멸에서 멀어져서 쇠락해간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다른 신들의 실종으로 이어질 이유는 없을텐데?
퀘스트 수행 후 핵심 조력자로 등장하는 헤파이스토스의 경우는 보는 순간 '나의 헤파이스토스는 이렇지 않아!'를 외치고 말았습니다. 헤파이스토스가 왜 이렇게 잘 생겼어! 너무 멀쩡하게 생긴데다가 심지어 예전에 인어들 꼬시고 놀았다고 플레이보이 기질을 과시하기까지 해! 덤으로 안드로메다 공주 보고 아프로디테랑 똑같다고 그러는데, 나의 아프로디테는 저렇지 않아! 페르세우스한테 차이고 10년 동안 마음 고생하며 폭삭 늙은 것 같은(하지만 사실은 배우가 바뀐) 안드로메다를 보고 아프로디테랑 닮았다니 납득할 수 없다! 사과해! 전세계의 미의 여신 신봉자들에게 사과해라!
설정은 재미있기도 하고, 태클 걸고 싶은 부분도 넘치고 그렇습니다. 일단 신들의 개념이 그리스 신화에서 이탈해버렸어요. 인간의 기도에 의해 신성이 좌우된다니, 이건 최소한 그리스 신화 신들에게 일어날 일은 아니죠. 게다가 매번 하데스가 악역이 되는 것도 지옥을 무슨 사악한 놈들의 감옥처럼 묘사해놔서 그런데, 그리스 신화에서 하데스처럼 선량하고(신들 중에서) 사고 안 치고 산 존재가 어디 있다고! 모든 악의 원흉은 제우스고 하데스는 그냥 조용히 사자의 나라를 다스릴 뿐이거늘. 게다가 이 사자의 나라는 지옥이 아니라고요. 완전 지옥처럼 묘사해대고 있는데, 그러면 마치 제우스가 다스리는 곳이 천국이어야 할 것 같잖아요. 덤으로 계속 제우스가 맡형이라고 나오는 건 영화의 문제가 아니고 번역자의 문제... 제우스는 형님 아니라고! 막내라고ㅠㅠ
신들의 힘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굳이 반신인 페르세우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역시 작중에서 설명 따위 전혀 없긴 한데 보여준 것들을 근거로 추측해보면 일단 이 영화의 신들은 스펙빨 쩔고 내면의 힘(코스모가 불타오르는지 아니면 포스를 믿는 건지 모르겠지만)으로 초현상을 일으킬 수 있으며 간지나는 에픽템도 가졌지만, 인간의 기원에 그 존재가 좌우됩니다. 심지어 인간이 기도하면 해피 콜 받은 서비스 업자처럼 위치 파악하고 슝 날아올 수도 있는데... 잘 보면 이거 수신거부도 불가능한 스팸 콜입니다? 여기저기서 이놈저놈들이 개념 따위 달나라로 보내버린 기도를 올려도 그거 다 들어야 한다는 거잖아? 수도 없이 많은 인간들한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런 스팸 테러를 당하고 나면 애가 맛이 갈만도 하지. 그것도 인간의 막장도가 최고조에 이르는 전장 한복판에서 그런 게 빗발쳤다면 아레스가 미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근데 그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자기랑 같이 고생한 아빠가 자기 무시하고 이딴 고생 안하고 탱자탱자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페르세우스를 편애하니 빡치겠지. 응. 그래도 아레스 네가 찌질해보이는건 어쩔 수 없지만.
이런 신들에 비해 반신은 겉보기론 별로 인간과 다를바 없는데 몸뚱이 내구도가 좀 쩌는 것 같고 신혈을 가져서 신들 에픽템도 쓸 수 있으며, 이러한 신적 요소들이 인간의 기원에 영향을 안받습니다. 그래서 결국 신들이 자신의 역할 일부를 맡길 수 있는 조력자로 선택할 수 있는 건 반신이어야 한다는 거죠.
이런 설정 중에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건 역시 신과 반신의 몸뚱이 내구도인데... 페르세우스 몸뚱이가 진짜 단단해보이는 건 그렇다 치고, 초반에 아레스가 뒤치기할 때 생각한 건 제우스 마빡 내구도 진짜 쩐다는 거; 어떻게 아레스가 에픽템 해머로 저렇게 마빡을 두들겨대는데 댕댕 소리만 날 수가 있는가. 뭐 아레스가 쓸데없이 거창한 패륜 펀치를 날려댈 때도 신의 주먹다운 이팩트가 펑펑 터지는데 마치 드래곤볼에서 전투력 격차나는 놈한테 얼굴 맞았을 때처럼 일그러짐 하나 없는 단단한 제우스의 면상. 과연 그리스 신화 최강의 철면피답다! 뭐 그런 이유로 신들은 좀 신 같았습니다. 기도 하면 슝 날아오기도 하고, 에픽템 갖고 무쌍도 찍고, 주먹으로 한대 치면 충격파도 터지고, 포스의 힘을 과시하기도 하니.
그나저나 1편에도 나온 저 기계 부엉이는 정체가 대체 뭐여? 이건 무슨 J.J 에이브람스도 아니고 밝혀지지 않는 떡밥? 후속작 나올 건덕지도 없어보이는데. 하긴 1편, 2편에서 혼자 살아남은 하데스가 사실은 힘도 다 갖고 있었고 모든 건 계획대로였습니다, 라는 설정으로 3편 찍는 게 불가능하진 않겠습니다만. 한 10년쯤 후에 페르세우스 아들이 장성해서 모험하면 되겠죠. 신들의 시대가 끝나고, 그리고 그 후 새롭게 도래하는 판타지에서...
덧글
길잡이였던가 열쇠였던가..
박력있는 신화의 괴수들이 등장하는 PV보고 '오 멋진데'하고 생각하다가 곧 이어서 '크레토스라면 몇 초만에 저놈들의 눈깔을 뽑아놓을까'하고 생각해버려서;;
근데 현실세계에 스팸은 아니어도 "일거리"를 하달한다는 면에서 블랙베리가 비슷하긴 하네요.
적어도 신들의 전쟁보다는 설정은 제대로 잡혀있는 것 같군요. 그쪽은 진짜 신들이 왜 나와서 뭐하는건지 알수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