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니클 - 초능력자의 어둠이 폭발하는 과정



초반 10분은 좀 힘들었습니다. 1인칭 핸드헬드 기법으로 계속 잡고 있는 화면을 보고 있자니 멀미 날 것 같았어요. 이대로 가면 30분 내에 관람을 포기하고 나가는 사태가 벌어지겠다 싶었는데, 감독도 그렇게 극단적인 '리얼하게 흔들리는 화면'에 대한 추종자는 아니었나 봅니다. 중간중간 고정 시점으로 환기를 시켜주는데 이거 타이밍이 꽤 좋았어요. 1차 사건 후 캠코더가 바뀌니 좀 낫고, 초능력을 써서 캠코더를 띄워놓고 다니기 시작하니 점점 흔들림이 줄어들어요. 확실히 초능력으로 카메라를 띄우면 안 흔들어도 되죠. 천잰데? 막 구름 위로 올라가도 고딩이 산 일반용 캠코더 주제에 서리 하나 끼지 않는 건 초능력 역장이 카메라 렌즈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인 겁니다. 초능력 브라보.


이 영화의 제작비는 불과 1200만 달러로, 헐리웃 기준으로 생각하면 그야말로 초저예산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호러 영화들이 이런 페이크 다큐멘터리(모큐멘터리) 스타일로 초-저렴한 제작비를 자랑하곤 하지만 그런 영화들은 다들 공간이 제약되어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이 영화는 어쨌거나 이 영화는 꽤 많은 공간을 활용하고 있는데도 저렴하게 아주 잘 찍었습니다. 카메라 하나만으로 모든 걸 처리하면 시점이 지나치게 제약된다는 것도 '다양한 카메라의 시점'을 활용하는 것으로 커버. 친구의 카메라, CCTV, 사람들의 폰카, 이런걸 활용해서 입체적인 시점을 보여주는데 감탄했습니다. 내용을 연출하는 기법으로도 그렇지만 제작비를 최대한 저렴하게 들이면서도 상황을 그럴싸하게 보이게 만드는데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더군요. 특히 막판 재난씬에서는 모든 '진짜 돈 들어갈 것 같은' 부분들은 죄다 CCTV, 인근의 캠코더, 폰카 등으로 처리해버리죠. 그래서 분명 싸게 찍었다는 건 알겠는데 재난 분위기 자체는 아주 잘 나는 데다가 장면들이 다 그럴싸해요!

근데 하늘 위... 정확히는 '촬영지 바깥의 먼 곳 어딘가'는 죄다 어디 BBC 다큐멘터리 같은 데서 영상 빌려온 것 같습니다. 꽤 티나요. 뭐 그건 저예산이고 카메라도 저질이고 하니까 그냥 피식 웃을 뿐, 트집잡고 싶은 부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맨 마지막 티벳 영상은 좀 심해요. 블루스크린으로 찍을 거래도, 거기서 조금만 합성 잘하는 인력 쓰지 그랬어요. 너무 티나잖아, 이건ㅠㅠ


보다 보면 일단 내용이 멀쩡하지 않은 고딩과, 멀쩡하고 심지어 잘나기도 한 고딩들이 초능력 때문에 친해진 뒤 서로 사랑한다느니 뭐니 하는 위험한 대사를 날려가며 게이게이호모호모해지는 과정... 을 그린 것 같기도 하지만 상관없고.(...) 일단 고딩이 초능력 갖게 되면 진짜 저러고 놀 것 같은 느낌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모든 발상이나 하는 짓이 완전 고딩들이 할 법한 느낌이라서 보면서 킬킬거리게 되더라고요.


앤드류가 어찌나 찌질하던지 초반에 앤드류가 찌질거리다가 얻어맞을 때는 울컥하는게 아니고 '와, 진짜 맞을 짓 해서 맞네'란 느낌이 듭니다. 깝깝해요. 그런 애가 초능력 갖고 밝아지는 것 같다가 점점 엇나가고, 제어가 안되어서 실수하고, 그 실수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자기합리화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게 집안환경 등과 맞물려서 미쳐가는 과정... 아니, 미쳐간다기보다 '내 안의 중2병을 봐줘, 이렇게 커졌어, 내 안의 어둠이 다크해지는 게 느껴져?' 라고 묻는 것 같은 과정이 설득력 있게 잘 그려졌습니다. 특히 세상은 양육강식, 난 먹이사슬의 정점 어쩌고 하는 부분은 쩝니다. 너무 쩔어서 막 심각한 클라이맥스에서도 웃음을 참느라 죽을 것 같았어요. 이거 노린 거겠죠? 노리지 않고서 저렇게 멋진 대사를 쓸 수 있을 리가 없어!

근데 아무리 그랬어도 모든 비극이 폭발하게 되는 계기가 하필 남자가 되지 못한 순간이었다는 것은 참... 거기서 토하지만 않았어도, 그대로 남자가 되었다면 이 모든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안구에 습기가 찹니다, 진짜.


앤드류는 보다보면 하는 짓이 하나부터 열까지 멋져요. 돈도 써본 놈이 쓸 줄 안다고, 엄마 약을 위해 돈을 벌어야한다고 절박해진 놈이 하는 짓이 너무 찌질해! 아무리 슈퍼 파워를 가졌어도 그걸 활용할 방법도 모르고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게 없으니 발상은 빈곤하기 짝이 없고! 앤드류의 세계는 너무 좁고 정신적으로 찌질하고 발상도 빈곤해서, 양아치들을 습격하고 편의점 터는 정도밖에 생각을 못하는 거죠. 왜 그러고 사니. 차라리 장거리에서 염력으로 ATM기를 통째로 뜯어내서 그 안의 돈만 들고 튀기라도 하던가! 보다 보면 깝깝해지는데, 그런 한편 얘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면 저게 다 말이 되어보이는 거에요. 이 영화는 누가 봐도 납득할만한 서사, 억압 속에 루저로 살아온 앤드류가 초능력을 얻은 뒤 내면의 중2병이 어떻게 빅뱅하는지 그 과정을 너무나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똑같은 스토리라인으로 연출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설득력 넘치게 보여주기 힘들죠, 저거.


이와 관련해서 진짜 잘 만든 캐릭터라는 생각에 감탄했던 것은 역시 앤드류 아빠였습니다. 앤드류 아빠가 하는 짓을 보니 앤드류가 저러고 사는 게 이해가 가요. 앤드류 아빠의 명대사 '사과해! 일어나서 나한테 사과해!'는 진짜 최고의 명대사에요. 저런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태어나서 저런 환경에서 자라면 애가 저렇게 되겠구나! 하고 압도적인 설득력이 포퐁처럼 저를 압도했습니다.


스티브는 진짜 안타까웠습니다. 그와 앤드류의 관계는 그야말로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너무 갑작스러워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벙쪄있었고 그 다음엔 앤드류 어머니가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설마 스티브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근데 나중에 스티브를 연기한 배우 이름이 마이클 B. 조던이라 좀 뿜었음. 미국인이 보기엔 이상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보기엔 강렬하네요.


보면서 참 감탄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촬영기법적인 면에서도 재미있는 것도 재미있는 거지만 '우와'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다만 흠 하나 잡자면 아무리 봐도 맷이 좋아하는 케이시는 오로지 감독이 또 하나의 카메라 시점을 필요로 해서 등장한 캐릭터라는 게 너무 티 났습니다. 그외에 이 애가 앤드류처럼 카메라로 많은 걸 찍고 다니는 그런 캐릭터로 설정된 이유를 알 수 없어요. 작중에서 가장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서 살짝 거슬렸던 캐릭터.


후속작 제작도 확정된 상황인데, 아마도 맷이 여기저기서 삽질하는 내용이 될 듯? 맨 처음 지저의 초능력 발생원에 대한 떡밥을 안 풀고 남겨뒀으니 다음작부터는 아마 또 다른 초능력자들이 탄생하고 맷이 거기 얽히는 내용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덧글

  • 미르누리 2012/03/21 18:49 # 답글

    이야 진짜 엄청 저렴하게 찍었네요.....능력 좋군요
  • 로오나 2012/03/21 20:36 #

    그 부분은 정말 대단합니다.
  • leiru 2012/03/21 19:36 # 답글

    그 마이클 조던과 동명이군요

    얼마전에 입원했을 때 옆 환자 이름이 빈이였죠. 성은 원 ( ... )

    보면서 음.. 어렸을 때 힘들었겠다 생각했습니다.
  • 로오나 2012/03/21 20:36 #

    성은 원이요 이름은 빈이라니 강렬하군요.
  • 유나네꼬 2012/03/21 19:43 # 답글

    케이시는 앤드류와 이어졌어야 했어 하지만, 그꼴을 못보는 맷의 질투로 케이시를 선점해버렸고.... 그렇게 앤드류는 망가져갔지..[..]
    그리고, 앤드루가 찌질하게 성장한 이유중에 하나가 맷의 뒷 공작으로.. 앤드류는 맷이 없으면 등교조차 할 수 없는 의존 적인 상황으로 몰고나가는..어쩌구 저쩌구하는 맷의 얀데레설...
  • 로오나 2012/03/21 20:35 #

    그리고 스티브 사건 때 맷은 '계획대로!'

    ...아니 근데 보면 상당히 분위기가 참... 안보는데서만 부끄러워하면서 사랑해 하고 말이지.
  • 흑설공주 2012/03/21 19:50 # 답글

    사방에서 크로니클에 대한 리뷰가 마구 올라오니 이거 진짜 물건인가 싶기도하고 한번 보고싶기도 하고 그래 봐야지
  • 로오나 2012/03/21 20:35 #

    추천입니다. 재미있어요.
  • 창천 2012/03/21 20:11 # 답글

    크로니클 한 번 봐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 로오나 2012/03/21 20:35 #

    추천입니다.
  • 유동 2012/03/21 20:22 # 삭제 답글

    케이시는 엔드류와 반대항에 가까운 위치였죠. 똑같은 촬영광이더라도 엔드류가 의미없이 촬영을 하는 것에 비해서, 케이시가 촬영을 하는 이유는 블로그에 그걸 올리고 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것이였으니까요.
  • 로오나 2012/03/21 20:34 #

    그걸 딱히 잘 어필한 느낌은 아니었어요. 막판으로 갈수록 더 그렇고...
  • marlowe 2012/03/21 20:28 # 답글

    앤드류가 왜 카메라에 집착하는지를 설명해줬으면 좋았을 거예요.
    앤드류는 루크 스카이워커 같지 않나요?
    (아나킨에 더 가깝지만...)
  • 로오나 2012/03/21 20:34 #

    그쪽하고도 닮았네요. 저랑 친구들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랑 닮았는데 별로 잘 생기진 않았다! ...고 생각했는데.
  • 알트아이젠 2012/03/21 21:22 # 답글

    생각보다 우리나라에서는 평이 많이 (안 좋은 쪽으로)갈리는 느낌인데, 한 번 봐야겠군요.
  • 로오나 2012/03/21 21:27 #

    전 개인적으로 추천입니다. 무척 재밌게 봤어요.
  • 홍쎄 2012/03/21 21:25 # 답글

    보면서 생각했는데, 앤드류가 많이 불쌍하더군요. 아빠한테 시달려, 엄마는 아파, 사촌이라는 멧은 잘 해주다가 중간에 튀고 (역시, 커플이 되면 당연한 것인가?!) 나중에 달려와서 다독이려고 하는데... 이 영화에 대해서 사람들 리뷰가 많은 거 같더라고요 ㅋㅋ
  • 로오나 2012/03/21 21:26 #

    가정환경은 불쌍하긴 한데 그외에는 별로... 친구들은 충분히 잘해줬죠. 자기가 뭐 해주는 것도 없이 받기만 하고 산 주제에 연민 받기를 원하면, 글쎄. 제가 보기에 스티브나 맷은 성자였음.
  • 잠본이 2012/03/21 21:59 # 답글

    케이시의 작위성이 제일 돋보이는 게 클라이막스에서 맷이 그냥 날아가면 될걸 케이시 차 빌려타고 간다고 해서 케이시도 카메라 들고 따라가는 식으로 흘러가는 부분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연스러웠음.
  • 로오나 2012/03/23 15:26 #

    네. 케이시는 아무래도 너무 그런 티가 심했어요.
  • FlakGear 2012/03/21 22:21 # 답글

    이 영화는 정말 그대로를 보여주는 영화로 느껴졌습니다. 보고나서 누가 잘못했느냐, 누가 더 멍청하냐를 따지자면 열띤 토론일 영화더군요. 확실히 각기 살아온 환경이나 경험에 의해서 영화에 대한 느낌과 의견이 극명히 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쨌건 이 영화보고나서 친구와 이야기할때 누가 더 잘못했냐는 이야기는 화젯거리로 안떠올리시는게 낫습니다. 정말 싸울뻔하게 되더군요. 어쨌건 제가 클로버필드 이후로 본 최고의 페이크다큐 영화였습니다 ;ㅅ; 마지막 앤드류는 데미안급으로 무섭던;;; 하늘 그래픽에서 김새버려서 좀 아쉽 엉엉. 리얼리티 어디로 갔니.
  • 로오나 2012/03/23 15:27 #

    리얼리티는 제작비로.(...)
  • 어흥씨 2012/03/21 23:07 # 답글

    앤드류 행동이 너무 찌질해서 보는 내내 저는 답답했습니다!
    아 그 좋은 초능력을 가지고 저렇게밖에 못하나!
    찌질하게 동네 깡패 삥이나 뜯고 말이죠...
  • 로오나 2012/03/23 15:27 #

    애가 살아온 환경을 생각하면 발상이 그렇게 빈곤해지는 게 이해가 가죠. 오히려 엄청 똑똑하게 처신했으면 얘가 왜 이래? 라는 생각이 들었을 듯.
  • 몽고메리 2012/03/22 02:04 # 답글

    초능력 브라보! 라고 하신 부분에서 뿜었습니다. ㅋ
  • fiello 2012/03/22 15:31 # 삭제 답글

    저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저예산영화라는 걸 알고 갔기 때문에
    어색한 CG부분은 감안하고 봤는데, 영화자체의 흡입력이 정말 무시무시하네요.
    저도 재미있게 봄..'ㅅ')
  • oIHLo 2012/03/24 09:14 # 답글

    그 둘이 6년차 커플이라 경악했습니다.
    그래 앤드류는 남자 맞았던거야!!!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7 대표이글루_mo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