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스틸 - 인간과 로봇의 혼연일체 성장담



근미래에 로봇이 복싱하는 영화. 영화의 포인트는 기본적으론 역시 인간 대신 로봇들이 나와서 복싱을 한다는 부분입니다. CG 기술이 발전하다 보니 이걸 과연 얼마나 멋진 눈요기감으로 만들어줬을지 기대하고 가게 되는 거죠.

그런 흥행 포인트를 가진 '리얼 스틸'은 자신의 아들조차 외면하고 도망쳐버린 패배자 인생을 살고 있던 주인공 찰리가 그동안 얼굴조차 보지 못한 아들 맥스와 만남으로써 제대로 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 성장 드라마이며, 아버지와 아들이 진정한 부자관계로 거듭나게 되는 가족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고철더미 속에서 발굴해낸 오래된 구형 로봇인 아톰이 세계 챔피언과 싸울 정도로 성장해나가는 복싱 드라마도 함께 하고 있고요.


찰리는 진짜 초반에는... 아들의 존재 자체를 귀찮게 생각하고 양육권을 팔아넘기는걸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에다가 새로 산 로봇을 제대로 테스트도 기능파악도 안해보고 아무 생각 없이 나가서 한방이면 다 역전이야 하는 식으로 몰빵했다 말어먹는 도박으로 패가망신 하기 딱 좋은 캐릭터로, 정말 저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팍팍 드는 훌륭한 인간 쓰레기입니다. 그런 그가 맥스와의 만남을 통해 변해가는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참 좋았어요. 근데 찰리는 저러고 살면서도 누가 봐도 불한당 몇 명 정도는 순식간에 때려눕힐 폭풍근육을 유지하고 있는 게 참... 사실은 맥스 앞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만날 닭가슴살을 조리해먹으면서 피눈물 나는 운동을 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맥스는 애들다운 구석이 별로 없는 애늙은이이긴 한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성격이 만만치 않은게 애가 곱게 자라진 않았구나 싶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사실 맥스 캐릭터가 그냥 순진무구한 애였으면 찰리가 그와 티격태격하면서 변해가는게 그리 납득이 안갔을 것 같습니다. 혼자서도 잘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천재적 공돌이 스킬을 가진데다 한성깔하는 녀석이다 보니 둘이 아주 잘 어울렸죠. 미소년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이 밤 새우면서 러닝 셔츠 입고 미묘하게 미래적인 노트북 두들기면서 캔맥주 대신 캔소다를 빨고 있는 모습은 진짜 푸하하하. 가장 강렬했던 부분은 역시 아톰에게 춤을 가르친 뒤에 둘이 같이 춤추는 부분이긴 했지만요. 이건 마지막 제우스전에서는 안나왔다는 사실이 불만사항으로 남을 정도였어요.


영화의 포인트인 로봇들의 복싱도 아주 좋았습니다.

일단 로봇들의 CG는 요즘 시대답게 자연스러운 느낌이고, 움직임이 아주 좋아요. 사실 고작 2020년에 저렇게 움직이는 로봇들로 세상 사람들이 죄다 열광하는 복싱을 하고 있다니... 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대부분의 로봇들은 로봇답게 투박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그 와중에 미묘하게 복싱스러운, 세련된 움직임들이 나오는게 이 영화가 복싱 영화구나, 하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복싱 부분은 전설의 복서인 슈거 레이 레너드의 협력으로 만들어졌다던데 그런 보람이 넘쳐요. 특히 주인공 아톰은 다른 놈들이 그냥 복싱스러운 펀치를 날리면서 싸운다는 느낌인데 비해 확실히 복서라는 느낌이 들죠.

막판에 모션 캡처 시스템으로 주인공 찰리와 혼연 일체가 되어 싸우는 부분은 그야말로 와우! 이게 정말 뻔하면서도 필살이란 말이죠. 이젠 복싱 따윈 할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아들의 부탁에 못이겨서 주먹을 쥐는 찰리가 아톰을 움직이는 부분은 이 영화의 절정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렇게 싸움에 나선 찰리가 예고편에도 나왔던 점핑 펀치를 날리는 부분은 그야말로 긴장감 넘치는 시합에서 제대로 한방 들어갔다는 느낌이 팍 들어서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영화를 보다 보면 기존에 유명한 복싱 영화들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마지막 제우스전은 누가 봐도 록키의 오마쥬. 구도 자체가 그래서 그런지 약간 어거지로 끼워맞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죠. 로봇이 초반에 그렇게 두들겨맞다가 내구도고 뭐고 다 상했을 때부터 움직임이 확 좋아져서 역전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달까^^;


아쉬운 점은 일단 일단 시대가 너무 가깝다는 것. 2020년에 저 정도의 로봇들이 저 정도 판을 벌릴 수 있을까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단 말이죠. 게다가 영화 설정상 이미 2014년쯤에는 로봇들의 퀄리티가 상당한 수준이라 굉장히 인기를 끌고 있었던 것 같고요. 10년만 더 뒤로 늦췄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2020년이라는 시대상황을 감안해서 대부분은 현대와 똑같은데 컴퓨터를 비롯해서 몇몇 부분들만 미묘하게 미래적으로 만들어둔 것은 좋았어요.

그리고 로봇 복싱 룰을 잘 모르겠다는 것도 단점. 작은 물에서 놀때야 제대로 된 규칙도 없어서 마구 싸운다는 느낌이었으니 괜찮은데, 제대로 된 큰물에서 싸울 때도 이게 1라운드가 3분이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휴식시간은 적어도 1분이 아니고 로봇 수리하고 정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은 확실하고, 세번 다운됐다고 TKO가 되지 않는 것도 확실하며, 다운됐던 상대가 일어나면 파이팅 포즈를 취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막 패도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 챔피언전에서 제우스가 아톰이 일어나면 패고 일어나면 패고 하는 건 저러면 진짜 대책없지 않나 싶었습니다.


스토리적으론 찰리의 복서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초반에 마지막 은퇴 링에서 쓰러진 채 후회스러운 끝을 남기는 부분을 짤막하게 보여준다던가, 하는 게 하나라도 더 들어가있었다면 찰리의 트라우마나 패배자다운 모습이 더 와닿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리고 아톰에게 복싱을 가르치는 부분도 너무 짧게 들어갔어요. 그가 지금까지 완전히 손 떼고 있던 복싱을 이런 방식으로나마 다시 열정을 갖고 시작했다는 부분을 더 와닿게 보여줄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아톰의 연승이 다이제스트로 지나갈 때 중간중간에 조금 더 넣어줬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악역과의 갈등이 별로 없다는 것은 진짜로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제우스 팀은 그냥 사실 악역도 아니고 그냥 잘나가는 팀이었을 뿐이에요. 좀 특이한 로봇인 아톰을 보고 그냥 돈으로 사서 분석해보고 스파링 파트너로 쓰고 싶어했을 뿐 달리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죠. 이상할 정도로 특이하고, 버림받은 구형인 주제에 성능도 좋은 아톰에 천재 로봇 디자이너 탁 마시도와 이어지는 어떤 비밀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예를 들면 그의 스승이 제작한 물건이었고 그래서 탁 마시도가 아톰에 구애받으면서 사실 아직 대전할 위치가 아닌데도 챔피언전이 치러진다거나 했다면 훨씬 뜨겁게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것 없이 제우스가 핀치에 몰리니 탁 마시도가 지금까지 성과를 올렸던 조종사들을 집어던지고 자기가 조종하다 패배하는 부분은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제일 잘 조종한단 말이야!'하는 모 작품이 생각나서 안구에 습기가 차더군요.


이런 아쉬운 점이 있긴 해도 '리얼 스틸'은 전반적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잘 살리면서 나머지는 눈속임 없이 정중한 스트레이트로 달린, 잘 만들어진 가족 드라마이자 블록버스터였습니다.







덧글

  • 창천 2011/10/15 22:27 # 답글

    재밌겠네요. 생각지도 못한 진주 같군요.
  • pyz 2011/10/15 22:52 # 삭제 답글

    저거 로봇들 cg만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서 찍은 부분도 있다고 들었던 걸로...
  • 도리 2011/10/15 23:42 # 답글

    그런 저런 의미에서 정말 예매율 1위더군요 ;;;
  • 알트아이젠 2011/10/15 23:43 # 답글

    예고편에서도 예상했지만 막판에 아톰과 혼연일체된 찰리의 움직임은 예술 그 자체더군요.
    아무튼 아쉬움은 있어도 가슴에 제목다운 (좋은 의미로)묵직한 펀치를 안겨준 영화였습니다.
  • 로오나 2011/10/17 19:16 #

    좋더군요. 뭐 기술적으론 태클 걸고 싶은게 하나 둘이 아닌데 그런건 그냥 넘어가줘야겠죠.
  • choiyoung 2011/10/16 13:46 # 답글

    조금 과격한 가족영화라고 봐도 될 영화지 않나 합니다.
    저는 조금 밋밋한 영화이지 않을까 했는데 무게감있는 촬영과 연출에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후속작을 만들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니 후속작을 기대해봅니다.
    왜 아톰을 사려고 했는지 그 이유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 로오나 2011/10/17 19:16 #

    가족영화로서도 꽤 좋았다고 봅니다.
  • 미르누리 2011/10/17 14:16 # 답글

    오 볼만 한가 보군요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조만감 감상 해야 겠네요 오늘 오직 그대만 시사회랑 27일 이후 오늘 예매권이 있으니 이 두 영화 사이쯤 해서 보러 가야 겠네요
  • 로오나 2011/10/17 19:16 #

    네. 간만에 좋은 블록버스터였고, 가족영화였고, 스포츠 영화였습니다.
  • 사루 2011/10/27 23:22 # 삭제 답글

    저는 예고와 좋은 평점에 끌려 보러갔다가 너무 억지스러운 스토리흐름에ㅠ_ㅠ 사실 비유하자만 2000년식 아반떼랑 2012년식포르쉐랑 경기 했는데 정말 아슬하게 포르쉐가 이기는 것과 비슷한 연출이랄까요.....^^; F1에서 말이죠 ㅎㅎ 기술적인 배경이 너무 부족했던거 같아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재밋게 보셨네요ㅎㅎ 저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거죠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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