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로서의 미덕을 가진 작품인 것은 맞으나 슈퍼히어로물이라기보다는 슈퍼히어로적인 힘을 가진 주인공이 활약하는 판타지물에 더 가까운 재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요약하자면 천둥신 토르의 이계진입깽판 히로익 판타지죠. 아이언맨과 헐크 덕분에 마블 코믹스와 어벤저스 프로젝트에 대해 많은 것이 알려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영화는 많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미국식 슈퍼히어로물에 대해 가졌던 인상에서 상당히 어긋나는 작품이니까요.
북유럽 신화의 신이 천계에서 신화 속의 거인들을 상대로 무쌍난무를 펼치고, 힘을 잃고 지상에 떨어진 뒤 개그를 작렬시켜주며 적응하고, 마침내 힘을 되찾아 사악하다기보다는 불쌍한 형제신이 보낸 파괴병기와 싸우고 천계로 날아가는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토르라는 캐릭터를 모르는 사람들은 몰랐겠지요. 실은 저도 몰랐습니다. 이거 이런 내용이었어?
제 경우 특히 판타지적인 맛이 강한 아스가르드 파트에서 얻은 만족감이 컸습니다. 다만 이쪽에 비해 지상 파트가 너무 초라해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군요. 신들끼리 행성 단위의 운명을 걸고 슈퍼 스케일 배틀을 벌이다가 갑자기 지구의... 번화한 도시도 아니고 변방의 시골마을의 안위를 걸고 싸워주면 스케일 차이가 나도 너무 나는 게 사실이니까요. 최소한 중소규모 도시 정도는 위기에 처해서 빌딩도 좀 부서져 나가고 그래야 토르가 인간들을 위해 싸우는구나! 하는 느낌이 살아나지. 아무리 봐도 제작비를 아스가르드 파트에서 다 쓴 티가 너무 나서 살짝 불쌍하기도 했습니다.
하다못해 마지막에 아스가르드에서 로키와 신나게 날아다니면서 신들의 싸움을 보여주었다면 좋았을 겁니다. 그런데 토르 vs 로키는 솔직히 시시했지요. 로키, 너도 궁니르를 쥐고 있는데 왜 신의 힘을 쓰질 못하니. 슈퍼 파워와는 거리가 멀게 좀 투닥거리고 짤방감으로 밖에 안보이는 환영술 쓰며 하하하 웃기를 보여준 뒤 한방에 처발리는 로키를 보니 안구에 습기가 차요. 가뜩이나 애가 사악하다기보다는 불쌍해서 슈퍼히어로물에서 당연히 등장해야 할 히어로의 대적자, 슈퍼 빌런으로서의 정체성이 흐릿한 판에 마지막 대결에서조차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니 그냥 불쌍한 녀석으로 끝나버리고 말았죠.
제작진은 자신들의 문제를 잘 알고 있는지 아스가르드에서는 장대한 볼거리를 신나게 쏟아붓고, 지구 쪽에서는 다른 재미를 주려고 노력합니다. 힘을 잃고 지구로 내려온 토르는 천둥의 신이 아니고 개그의 신이죠. 온몸을 던지는(...) 그의 개그에 웃어주고 묠니르를 묘묘라고 부르는 달시 역의 캣 데닝스가 귀여워서 쓰러지다 보면 토르 각성의 때가 다가와 있는 거에요. 아, 여성분들은 토르 역의 크리스 헴스워스의 귀여운 얼굴과 폭풍근육의 갭에 꺄아꺄아 하악하악해주신 모양인데, 이해합니다. 제가 봐도 이 양반 좀 멋졌으니까요. 그는 토르는 이런 캐릭터야! 라고 외치는 듯한 외모와 연기를 보여주었죠.
어벤저스 떡밥 부분은 '아이언맨2'에 비하면 훨씬 적절한 수준으로 던져졌습니다만, 역시 시리즈 1편으로서의 독립성은 부족합니다. 어디까지나 마블이 깔아둔 어벤저스 마케팅에 익숙해져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보게 된 거고, 그렇지 못한 관객이 보기에는 '어? 이거 뭐야?'하는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해달까요? 브루스 배너와 토니 스타크가 스쳐가듯이 언급되는 것으로 끝났으면 모를까, 실드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이 나왔는데 얘들이 누군지는 작중에서는 전혀 가르쳐주지 않는 데다가 중간에 토르를 저격하려고 했던 호크아이도 뭔가 있어보이는 캐릭터라는 느낌은 풀풀 풍겼는데 역시 아무것도 정보가 주어지지 않아서 '아니, 엑스트라 치고는 너무 분위기가 있잖아? 뭐야?'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죠. 적어도 이 물건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마블 코믹스의 영화화에 대한 최소한의 배경지식이 있거나 혹은 '아이언맨2'를 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이런저런 약점들이 있긴 하지만 토르는 근사한 볼거리와 유머로 무장한 블록버스터 영화입니다. 돈 들인 영상으로 눈요기를 시켜주는데 인색하지 않으며, 밑도 끝도 없이 볼거리만 퍼부어서 관객이 질리게 만드는 일도 없이 다채로운 볼거리를 적절한 타이밍에 딱 좋은 분량으로 보는 능숙함을 보여주죠. 또한 볼거리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명세계에서 왔지만 지구를 비롯한 아홉세계의 존재를 알고 영리하기도 한 토르가 문화적 차이를 느끼는 부분을 아주 즐거운 개그로 버무려놓았습니다. 지구에 떨어진지 며칠만에 제인과 사랑에 빠지고 갑자기 사람이 변해버리는 토르의 모습은 깊이를 느끼기에는 너무 가볍고 설득력이 좀 부족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경쾌하면서도 전혀 루즈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하고 신나는 블록버스터를 만드는데는 성공했습니다. 시리즈 1편으로서는 좋았고 다음편부터는 서사를 강화에서 깊이를 더해준다면 더욱 좋겠죠.
덧글
실상 너무 삼삼하다고 해야 할까....
요즘 너무 쾅쾅 도시 단위로 터지는 걸 봐서 그런지 그냥 몸으로 싸우는 건 좀..
언제나 기억에 남는 건 히든 영상뿐이네요.
안소니 홉킨스는 오딘의 초반에는 강인하고 중후반 이후로는 쇠약해져가는 오딘을 잘 연기했습니다. 일단 연기 내공이...
호크아이였군요!(...)
다른 영화들과 연관성을 줘서 뭐 실드라던가 어벤져스라던가를 찍던말던 상관할바 아닌데
그걸 몰라도 즐겁게 즐기고 알면 더 즐겁게 즐길 수 있게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싶네요
그냥 토르라는게 재밌어 보여서 보러간 사람이 왜 관심없는 다른 작품 배경까지 알아서 이해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네요
뭐... 개인 취향이겠지만서도
"아, 재밌었다" 정도의 감상이라서 약간은 기대에 못미쳤다고 할까요.
물론 재밌게 보긴했습니다. 영화 보는 내내 지루한건 못느꼈으니까요.
근데 같이 볼 사람이 없는 객지벌이 인생[...]
같이 볼 사람따위 팝콘을 약탈하는 빌런일 뿐이죠
저도 하하하 ㅜㅜㅜㅜㅜㅜㅜㅜㅜ
확실히, 로키는 포스터에서는 꽤 트릭스터같은 얼굴인데 정작 영화에서
가엾은 적자로 나와서 좀 아쉬웠습니다;;;
뭐 근데 가엾은 놈이더라도 인상이 조금만 음습한 구석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너무 불쌍해보여서...
그리고 그냥 마지막에 화끈한 배틀만 해줬어도 인상이 확 바뀌었으리라 봅니다. 가뜩이나 불쌍해죽겠는데 힘도 압도적으로 차이나서 처맞는거밖에 할일이 없다니...
아, 이건 스타2가 아니잖아.......
그런 순진함[???]에 기사도[???]에 몸짱에 하앍...
저도 그 순간 '응, 그런거 같은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스타크 인더스트리는 아스가르드에도
물건을 팔아먹을수 있다 으쌰 으쌰(....)
개그 부분같은 건 웃기기는 했고, 초반에 프로스트 자이언트들과 싸우는 장면은 멋있었지만요...
아, 그리고 호크아이는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가 맞습니다. 대신 아이언 맨, 캡틴 어메리카, 토르, 헐크 등과는 달리 따로 영화는 안 나오고 어벤져에서만 출연한다는군요.
http://www.superhero.x-y.net/marvel/character/clintbarton.htm 호크아이 정보...긴 한데 이녀석은 아이덴티티가 여럿인지라 코스튬도, 이름도 여럿입니다. 이녀석이 캡틴을 사칭한 적도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