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의 백스토리를 굳이 요약하자면 리눅스의 창시자 리누스 토발즈가 스티브 잡스의 아이돌적인 카리스마를 갖고 윈도우 같은 점유율을 갖는 리눅스를 만들어내고 미야모토 시게루 같은 역사상 최고로 많이 팔린 게임까지 만들어낸 후에 현실세계의 인간을 양자변환하여 데이터화하는 사이버 세계를 창시한 후 그것을 토대로 세계를 혁명한다, 정도?;
그렇기 때문에 IT 역사를 피상적으로나마 아는 입장에서 초반 설정을 보다 보면 미칠듯한 미묘함에 시달리게 되는데, 어쨌든 사실 영화 속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현실 파트고 제작비를 팍팍 써서 만들어낸 이것이 영화의 세일즈 포인트라고 주장한 가상세계의 이야기는 영 재미가 없으니 이것 역시 참 미묘해요. 현실파트와 가상세계파트는 정말 다른 감독이 만든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스타일이 차이나는데 이 두 개를 적절히 혼재시켰다면 영화는 훨씬 좋아지지 않았을까.
다프트 펑크의 음악은 흠잡을데 없이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멜론에서 그들의 앨범을 결제해서 들어보고는 취향의 스트라이크존을 미묘하게 비껴나가는 느낌에 살짝 좌절했었는데, 그것과 별개로 영화의 분위기와 완벽하게 어우러지면서 무너져가는 몰입감을 어떻게든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선 그야말로 눈에서 땀이 날 정도의 대분투.
미술 역시 흠잡을데가 없습니다. 이 영화 최고의 볼거리를 꼽으라면 역시 가장 처음에 나오는, 트론스러운 디자인으로 그려지는 월트디즈니 로고인데(...) 척 보는 순간 '오, 이 디자인은 정말 트론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빛과 선만을 이용해 그려내는 세계와 의상의 모습은 스타일리쉬한 매력이 있었어요. 정말 일레트로닉 SF 그 자체. 광원효과만은 정말 CG스럽다는 느낌이 팍팍 들 정도로 황홀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명암이 극단적으로 두드러지는 화면을 2시간 내내 보고 있노라면 정말 눈이 아프다는 단점도 있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이토록 매력적인 비주얼 기반을 갖췄으면서도 그것을 토대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할 연출을 해내는데는 실패했다는 절망적인 문제를 가졌습니다. 제작비 만빵으로 퍼부은 SF 액션 영화면 볼거리가 충만해야할텐데 그러기는커녕 도대체 어딜 볼거리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지경이에요. 액션 부분은 기껏 사이버 세상까지 가놓고 하는 짓이 좀 특이한 도구를 쓸뿐 현실세계와 뭐가 다른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 물리법칙조차 거스르지 못할 거면 대체 왜 거기 가서 놀고 있는지... 예전 1편에서는 직각기동이라도 했다던데 여긴 그런 것조차 없고; 거기에 도대체 3D로 보는 메리트를 느낄 수 없다는 점도 왠지 눈물나게 만들고요.
내용은 진부한 게 문제가 아니고 필요한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텐션이 굉장히 느슨하다는 것이 문제. 일레트로닉 SF 액션 영화인데 멜로영화 같은 템포로 드라마틱해야 할 부분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줘야 할 서사를 다 빼서 어디론가 던져버리는 채 그저 내용이 흘러가기만 하다 끝. 당연히 뜨거워져야 할 포인트, 당연히 감동해야 할 것 같은 포인트에 이토록 아무런 자극이 없는 영화는 참 오랜만인 듯. 영상으로 밀지도 못하고 내용으로 밀지도 못하다 보니 2시간 동안 보고 나면 눈은 아프고 본전생각은 나고...
아, 하지만 히로인 쿠오라를 연기한 올리비아 와일드의 비주얼은 흠잡을데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문제는 캐릭터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이지만 그래도 그 미모 하나 때문에 적어도 영화 끝나고 나서도 캐릭터 이름은 기억나더라고요.(다른 캐릭터들은 진짜 영화관에서 나오면서 '걔 이름이 뭐였지?'하고 고민해도 생각이 안 났음;)
2012년에 스핀오프를, 2012년에 3부를 개봉해서 완결짓는다는데 감독과 각본가 교체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한 절대 기대하지 않는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_-;
그럼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까면서 재미나게 즐겨보겠습니다.
그래도 볼만했던 부분들을 꼽자면 1980년대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아날로그적 소품들. 주인공 방에 있던 오래된 애플 컴퓨터, 오락실, 아주 오래됐고 당시에는 엄청나게 비쌌을 근데 왜 굳이 썼는지는 알 수 없는 대형 터치스크린 등등.
장면적으론 역시 월트디즈니 로고가 최고였고(...) 도스 시절 컴퓨터로 타이핑치듯이 3D 효과에 대한 경고문을 띄우는 부분, '트론 : 새로운 시작'이라는 타이틀이 박히는 부분, 그리고 처음 사이버 세계에 진입해서 여성 프로그램들이 무슨 패션쇼를 하듯이 모델워킹을 해서 다가왔다 물러가면서 주인공의 복장을 바꿔주는 부분, 그리고 바이크 배틀 정도? 처음 격투게임 부분은 영 별로였고 사실 바이크 배틀도 기대 이하였고 공중전은 이건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레벨이고. 어지러운 공중기동과 긴박감 넘치는 집중포화가 펼쳐져야 할 것 같은데 마치 갤러그 첫판을 하는 듯 느슨하기 짝이 없는 화면을 보면서 '오, 저 나선을 그리는 광원효과는 정말 예쁘구나'하고 감탄하게 만들면 어쩌자는 것일까.
그리고 이게 영화 전체의 문제이기도 한데, 차라리 영화 전체를 쉴새없이 몰아치는 스타일로 만들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영화 전체가 트론 월드로 진입한 후부터 극도로 느슨해지는데다가 이 안의 세계는 생긴 거만 특이하지 지구랑 뭐가 다른지 알 수가 없어요. 뚜렷한 차이점이라고는 필요한 도구를 마법처럼 소환할 수 있다는 거랑 인간이 한대 맞고 죽으면 유리처럼 깨져서 흩어진다는 거 정도? 물리법칙이 다르질 않고, 인간들의 움직임 역시 지극히 상식적인 레벨이기 때문에, 게다가 액션연출을 잘 짜놓은 것도 아니라서 액션이 나오면 지루해지고 그렇지 않아도 멜로드라마 같은 템포로 전개되어서 지루하고...
내용이 현실 -> 트론세계 진입 -> 바이크 배틀까지 좋다가 아버지 만나면서부터 급지루해집니다. 솔직히 현실편이 훨씬 재미있어요 그냥 기업드라마로 엔컴사를 두고 암투 벌이면서 트론 세계를 왔다갔다하는 내용이었으면 훨씬 좋았을 듯. 최소한 연결고리를 줘서 현실 쪽과 협력해서 부자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던가. 근데 엔컴사의 프로그래머는 뭔가 있는 것처럼 나오던 결국 아무것도 안 하고. 그리고 OS도 숫자만 바꿨다는 부분도 헛웃음이 나오는게, 20년 전의 시스템을 숫자만 바꿔서 올리면 짱이에염~이라니-_-;
전개는 진부한 게 문제가 아니고 필요한 서사가 실종되어있는데, 예를 들면 보스캐릭터에게 세뇌당해서 블랙 트론이 된(...) 트론이 후반부에 뜬금없이 각성하는데, 이건 그야말로 뜬금없어요. 최소한 주인공 혹은 아버지를 보고서 고뇌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각성하는 정도는 해줘야지 이거 뭐 어쩌라고. 그리고 사실 주인공 아버지와 보스캐릭터의 관계 역시 딜레마와 배신감 등등을 깔아서 맛깔나게 보여줄 수도 있었는데 그런게 전혀 없죠. 영화 전체의 인물관계도가 그런 식이라서 얘네가 뭘 하던 감정이 움직이질 않아요. 심지어 아버지가 마치 드래곤볼에서 신이 피콜로를 죽이기 위해 희생하듯 자신을 희생하고 죽을 때도 하품이 나올 지경.
그리고 내용상의 중요한 부분이나 설득력을 부여해줘야 할 부분이 부족한 것도 문제. 아버지는 디지털 DNA의 가능성이 어쩌고 하는데... 그래서 이게 무슨 가능성이 있고 세상이 바뀐다는건지 모르겠어요. 뜬구름잡는 소리만 하다가 끝나버리는데(특히 역사가 어쩌고 하는데 대체 뭐가 바뀌냐고!) 구체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요소라는걸 작중에서 제시해주지도 않고 납득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습니다. 그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ISO는 왜 그리 무력한지도 모르겠고.
덧글
뭐 사운드트랙 예기를 건너뛰고 말하자면 계연성이 상당히 부족한 각본에 눈물이 좀 납니다만, 저는 그래도 후속작을 기대해보려고 합니다...
(.....)
21세기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설정들이 참...
개인적으로 '현실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건 개인적으로는 납득이 가는 설정입니다.
트론 원작시대에는, 8bit의, 현실과 전혀 다른 모습의 컴퓨터 공간이 배경이 되어 이루어지던건데, 그것을 대표한는것이 바로 직각기동의 바이크 CG 신이였죠.
하지만 지금 게임 세대는 영화 BGM못지않은 사운드를 자랑하고 8bit 배경음악은 추억의 한켠에 묻어져있을뿐입니다.
다시말해 게임도 당시 기술의 한계로 표현할수 없었던 또 다른 현실을 구현하고 있는거죠.
이로인해, 원작에서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던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다'라는 명제는 이미 효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곡선기동과 여러가지 레이어로 이루어진 바이크 배틀이 기술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과 다를바 없는 현재의 가상세계를 제대로 표현하고 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연성은 깝시다. 아오.
죽은줄 알았던 트론이 부활해서 각성...뭐?
ISO...뭐?
아니. 주스를 왜 그렇게 죽인건지, 정말 매력있는 케럭터였는데.
마스터 디스크를 훔쳐갈때 '복사해서 가짜를 주는건가? 헐킈 기대된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냐?
그냥 죽네?
으아니 감독양반 그게 무슨말인가! 주스가 폭사라니, 으아니!
그리고 물리법칙 문제는 솔직히 연출이 재밌고 쾌감을 주기만 했어도 딱히 지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문젭니다만, 그래서 결국 재미가 없어서 문제.(...)
확실히 이야기 전개는 좀 거시기하죠.. 눈과 귀는 즐거운 반면에...
새로나온 트론이 만족스럽진 않지만, 전편의 연장선에서 본다면 흥미로운 구석이 많을 것 같구요. CG나 음악만 놓고 보면 아주 훌륭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원작을 꼭 챙겨보시길 추천하구요. 그 이후에 다시 평 올려주면 또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같이 보러 간 친구는 원작을 본 친구였는데도 저랑 감상이 같은 레벨이었음.(...)
편집도 오오 다펑 하면서 거기에 완전 맞추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