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리어스 웨이 - 뻔뻔스럽게 괴작을 추구한 결과물



첫주부터 무참하게 흥행에 실패해버린 장동건의 첫 헐리웃 진출작 '워리어스 웨이'. 사실 이 영화는 예고편만으로도 호불호를 명확하게 판가름해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색깔을 명확히 보여주는 예고편을 보고 '어, 이거 왠지 멋진데?'라고 생각했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지만 '이건 완전 괴악한 것이 영 아닌데?'라고 생각했다면 절대 즐겁게 볼 수 없는 그런 물건이죠.

예고편만 봐도 풀풀 풍기는 괴작의 포스 때문에 주변에도 별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봐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친구 하나가 나서서 같이 봤는데...



적어도 저는, 아니, 우리는 대단히 만족했습니다.



...설마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만들었을 줄은 몰랐어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얼굴에 철판 깔고 괴작을 추구한 결과물입니다. 제정신 박힌 영화를 만들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런 뉘앙스 따윈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한조각도 비치지 않아요. 전체적인 스토리를 요약해놓고 보면 의외로 정상적으로 착각할 법 싶다는 것도 외려 괴작을 추구한 결과에 불과하죠. 요즘은 개그로만 쓰이기 마련인, 과거 미국인들에게 엇나간 환상으로 박혔던 오리엔탈리즘과 고전 서부영화 클리셰를 이렇게까지 뻔뻔스럽게 추구했을 줄이야. 진짜 영화 시작되고 초반 5분만에 대략 정신이 멍해져서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맛을 선사받았습니다. 그게 초반으로 그쳤으면 모르겠는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런 스타일을 관철하는 뻔뻔함이 저를 폭소하게 만들고 오그라들게 만들고 마침내 엄지손가락을 처억 세우게 만들었어요. 바, 바보 같지만 멋있어...!

대놓고 CG 냄새 물씬 풍기는, 일부러 현실감 떨어지게 만든 것이 보이는 인공적인 색채의 서부시대 마을 세트하며, 그 속에서 엄청 고전적인 서부영화 액션이나 오리엔탈리즘 무협 액션이 실로 진지하게 펼쳐지는 광경이란. 으아아, 진짜 미치겠다. 이거 너무 멋지잖아. 황량한 서부의 마을에 총 들고 설치는 악당 건맨들과 그들의 머리 위로 동양의 살수들이 까마귀떼처럼 내려앉는 장면에선 진짜 할말을 잃고 엄지손가락을 처억. 그리고 그들을 죄다 한칼에 베며 달려나가는 차가운 서부 남자 장동건의 폭풍간지는... 으어어, 곤란해. 이거 계속 보다가는 진짜 반해버릴 것 같아서 무서울 지경.


장동건은 그 속에서 자기 역할을 다했습니다. 영화가 워낙 괴악하다 보니까 정상적으로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닌데 이 괴작 속에서 요구되는 캐릭터와 액션을 아주 잘 소화해냈어요. 그리고 악역으로 나온 대니 휴스턴은 정말 인상적이었죠. 저질스럽고 잔인한 악역의 이미지를 아주 잘 연기해내더군요. 아, 아기 역시 빼먹을 수 없죠. 찌푸린 얼굴도 해맑게 웃는 얼굴도 어쩜 그리도 사랑스럽던지. 케이트 보스워스는 그냥 딱 저런 캐릭터로 나오겠지 하는 기대대로 연기한 느낌이고 제프리 러쉬 아저씨는 엉덩이까지 까주면서 열연. 그외에는 장동건의 스승역으로 적룡이 나왔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적룡 아저씨도 나이가 드셨군요.


이 영화는 예고편을 보고 상상할 수 있는 B급의 향취를 극한까지 뻔뻔스럽게 관철한 영화입니다. 뭔가 메이저하고 정상적인 센스를 기대하고 가면 절대 재미를 느낄 수 없겠지만, 예고편을 보고 코드가 맞겠다 싶으면 빵 터져요. 하필 장동건이 첫 헐리웃 진출작으로이런 영화를 택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긴 합니다. 동양 배우들이 헐리웃 가서 망가지는 전형적인 패턴인 B급 영화를 통해 B급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져서 결국 그렇게 끝나는 것이 우려되긴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전 이 영화 좋았어요.


앞으로 이승무 감독이 헐리웃에서 또 다른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뭔가 굉장히 회의적이지만, 언젠가 그가 또 이런 괴악한 영화 만든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저는 기대할 것 같습니다;



그럼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까면서 재미나게 즐겨봅니다


초반에 수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다가 비도탈명하는 연출 하며, 물 속에서 솟구치는 살수들을 일섬으로 베어버리는 연출은 단번에 이 영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멋진 부분이었죠. 이 지독한 뻔뻔함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리고 거기에 이어지는 최강의 전사 타이틀 이동은 진짜 빵 터져버리고 말았는데 그만큼 터져준 것은 역시 후반부에 악당들과 한참 투닥거리기 시작했을 때 좌우의 건물들 지붕에 동양 살수들이 까마귀떼처럼 내려앉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진짜 완전 감동해버렸어요. 예고편으로도 봤던 장면이거늘 왜 이렇게 간지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나요.

전투 부분의 연출은 이렇듯 정상적인 센스로 보면 '이건 개그도 아니고 뭐야?'라고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장면들이 참 좋았습니다. 케이트 보스워스가 위기에 처한 순간 창문을 깨고 날아들어와서 한숨에 모두를 베어버리는 부분부터 시작해서 천막 뒤에서 보이는 그림자로 일렬로 선 적들을 한칼에 한놈씩 베고 지나가는 부분이라던가, 지붕에서 뛰어내려 덮쳐오는 살수 ABCDEFG... 기타등등을 죄다 자신의 칼 닿는 범위 안에 들어오는 순간 한칼에 격살하고 나아가는 부분이라던가, 그리고 마지막에 총격이 난무하는 복도를 누비며 번쩍번쩍하는 빛 속에서 모두를 베어버리는 연출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되는 부분은 하나도 없지만... 멋있잖아요!;ㅁ;


그나저나 떼거지로 몰려오는 악당 건맨들을 날려버리는 방법이 결국 폭탄마라니 이거 너무 현실적인 것 아닌가_no 뭐 그렇게 펑펑 터뜨려주면 적이 우르르르 쓸려서 숫자가 파바바박 줄어드는 것도 납득이 갔지만. 관람차 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총격과 폭탄을 병행해서 적들을 두들기는 부분도 그렇고. 이 부분에선 내내 주정뱅이로만 나오던 제프리 러쉬가 완전 스타일리쉬한 저격수 + 폭탄마로 변신해서 카리스마를 뽐냈죠. 하지만 그래봤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엉덩이 까고 쓰러졌던 장면이지만.(...)


초인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동양의 살수들도 결국 무기의 우월함 때문에 악당 건맨들에게 죽어나가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리 초인이라도 총 앞에선 대책없죠.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긴다면 오리엔탈리즘과 고전 서부영화의 로망이 서로 상충하는데 이건 밸런스를 적절하게 잡아났네요.


아, 그리고 난전 속에서 빛났던 마을 사람은 역시 피에로였던 것 같아요. 가짜 얼굴로 페이크 걸고 일어나는 재주가 거기서 그런 식으로 쓰일 줄이야_no


대니 휴스턴이 맡은 악역의 맨 마지막 뻔뻔함도 좋았습니다. 그저 공포에 질려 죽어가는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회개하는 것도 아니고 음습하고 폭력적인 악역다운 마지막을 보이며 죽어가는 그 모습이란.


적룡은 마지막에 진짜 멋있었음. 그가 서부까지 따라온 것은 어디까지나 아기를 죽이고 아끼던 제자를 다시 거둬가기 위함이었죠. 그렇기에 진짜 뻔뻔하게 석양 속에서 꽃잎 날리는 연출을 질러주는 배경 속에서 과거 회상까지 해주면서 제자의 칼을 받아내며 마지막을 맞이하는데... 으어, 이건 뭐랄까, 정말로 서툴기 짝이 없는 애정표현이랄까. 적룡은 자신의 내공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그리고 그렇게 초토화된 마을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뒤로 하고, 살수들의 추적은 이걸로 끝이 아니고 시작일 뿐이라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쿨하게 석양을 향해 걸어가는 고독한 영혼이라니. 남자는 등으로 말한다, 크으. 근데 왜 석양을 향해 걸어가서 알래스까지 간 것인지는 상당히 의문.(...) 뭐 어쨌거나 눈덮인 설원 한가운데서 솟구치는 최강의 자객들과 맞서는 장동건의 모습으로 마무리하는 끝까지 정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대류... 폭룡이 최고다!(응?)








덧글

  • 유나네꼬 2010/12/09 09:54 # 답글

    왠지 나는 마블이나, 혹은 ㅋ믹스 원작 영화를 만들때 불려 가지 않을까 싶은 일말의 기대감이 남아있어 이 감독....
    아, 그냥 갑자기 생각났는데, 요즘 돌아다니는 간지나는 이순신 코믹스를 영화화 한다면 이 사람 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듯....[..]
  • 로오나 2010/12/09 19:55 #

    아, 그럼 적어도 난 기대할 듯.
  • 새누 2010/12/09 10:14 # 답글

    흐흐흐.. 대단했죠. 그리고 무사들도 총에 충분히 잘 상대했다고 봅니다.
  • 로오나 2010/12/09 19:55 #

    네. 무공의 움직임과 총격의 버서스!
  • Charlie 2010/12/09 10:52 # 답글

    이걸 보면서 몇가지 만화와 애니, 게임이 머리속을 좌라락 지나가는것이....;;
    이정도로 대놓고 뻔뻔하다면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 로오나 2010/12/09 19:56 #

    진짜 철판 깔았죠.
  • 콜타르맛양갱 2010/12/09 11:33 # 답글

    저도 낄낄 거리면서 봤습니다.

    그리고 왠지 마지막에 서양과 동양의 운명에 대한 대응자세에 대한 차이를 통한 동양과 서양의 인생관.... 에 대해서 도 생각....[끌려나간다]
  • 로오나 2010/12/09 19:59 #

    그리고 설원에서 살수들이 솟구치겠죠!
  • Uglycat 2010/12/09 11:52 # 답글

    전 오늘 보고 왔는데 그 정도 제작비를 들인 것치고는 너무 싼티가 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a
  • 로오나 2010/12/09 20:00 #

    확실히 세트도 한정되어있고, 제작비는 예상보다 좀 많이 들어갔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 아인베르츠 2010/12/09 13:45 # 답글

    블랙 라군 샤이타네 바디를 읽었을때 느꼈던 그 감상을 재체험할 수 있었지요…. 코우가 데스 섀도우류 30단의 체득자 섀도우 팰콘!
  • 로오나 2010/12/09 20:00 #

    블랙 라군 소설판 이야기인가요? 뭔진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쪽도 바보 같지만 멋있는 부류인가 보군요;
  • rumic71 2010/12/09 14:20 # 답글

    예고편을 보고 그 어느 쪽도 아닌, 무척 궁금함을 느꼈었는데 글을 보니 제 입맛에 잘 맞을 거 같은 기분이 듭니다.
  • 로오나 2010/12/09 20:01 #

    아마 오래 걸려있진 않을 것 같으니 보실거면 후딱 보시는 쪽을 추천^^;
  • 플로렌스 2010/12/09 14:43 # 답글

    아, 이런 막나가는 B급 좋아하는데...
  • 로오나 2010/12/09 20:01 #

    진짜 막나갑니다.
  • 미르누리 2010/12/09 15:22 # 답글

    뭐 스카이 라인이라는 작품이 있는 이상 그어떤 작품도 올해는 후하게 봐줄수 있는 관대함이 생겼습니다요..ㄷㄷㄷ
  • 로오나 2010/12/09 20:01 #

    스카이라인은 예고편에 낚이지 않고 어떤 영환지 알고 가면 의외로 괜찮다는 평도^^;
  • Lenscat 2010/12/09 16:53 # 삭제 답글

    요즘 관객들도 슬슬 이런거 적응하는 것 같아요. 관객 수준이 높아졌나?!?!
    그보다 장동건씨에게는 정말 유감스러운 영화가 될 듯 하구요
  • 로오나 2010/12/09 20:01 #

    마니악한 쪽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웹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뿐 아닐까요^^;

    장동건에게는 진짜 여러모로 유감스러운 영화일 듯.
  • 홀리홀릭 2010/12/09 22:25 # 답글

    헉. 적룡 아저씨면 혹시 외팔이 시리즈의 그분 입니까?;; 아직도 활동하고 계셨나 보군요;
  • 로오나 2010/12/11 16:29 #

    영웅본색 1의 주인공이시기도 하죠.
  • 창검의 빛 2010/12/11 16:22 # 답글

    어제 나니아 연대기3편 보고 한시간뒤에 봤는데, 역시 B급을 기대하고 가면
    상상 이상의 재미를 주더군요. 후반부의 3파전은 정말......ㅋ

    p.s. 일섬으로 시작해 일섬으로 끝나는 영화.
  • 로오나 2010/12/11 16:29 #

    그 부분 진짜 킹왕짱이었죠. 예고편을 기대하고 가면 예고편 이상의 재미를 주는 영화.

    그러나 예고편을 보고도 이거하곤 다를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는다면 절망만 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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