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우강호 - 비정한 정통 무협과 괴악한 개그의 크로스



정우성의 첫 해외진출작인 검우강호. 사실 큰 기대를 안하고 양자경 액션이나 볼까 하고 봤는데 꽤 재미있었습니다. 모두에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냐고 하면 그건 아니라고 하겠지만 무협팬이라면 한번쯤 보라고 하고 싶어지는 영화로군요. 실로 무협스러운 클리셰가 작품 전체에 가득해서 무협팬 둘이서 모아서 보면 '아니, 저것은!'하고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좋아하는 맛이 각별합니다. 작품 전체가 그런 맛으로 꽉 차 있어요. 스토리도 그런 편이라서 양자경에게 시선을 주고 보면 그야말로 강호의 비정함이 물씬 풍겨나는 슬프고도 비장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실로 당사자들은 심각하기 이를데 없지만 보는 사람은 눈에서 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웃을 수밖에 없는 괴악한 개그가 크로스된다는 점이 이 영화를 상당히 아스트랄하게 만들어주는데, 그것도 나름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액션도 꽤 좋고, 양자경의 연검 액션 표현은 엄지손가락을 세워줄만합니다. 실로 무협스러운 병기 활용! 초반부터 장면연출을 꽤 특이하게 하는 편인데, 다만 액션 중간중간에 스톱 연출이 너무 남발되는 느낌이 좀 있었습니다. 슬로우 연출은 괜찮았는데 스톱 연출은 좀 거슬리더라고요. 오우삼은 어째 이런 식의 연출을 한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 작품 내에서 끝장을 보려는 쓸데없는 근성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지요;

정우성의 경우는 일단 놀란 점이 중국어를 무지 자연스럽게 구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기사를 보면 오우삼이 정우성 중국어 잘한다고 칭찬했더라, 하길래 립서비스인 줄 알았더니 이 정도면 정말 칭찬할만하군요. 정우성이라는 것을 모르고 봤다면 중국 배우인 줄 알았을 정도. 분위기 잡을 때도, 다소 개그스러울 때도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구사해줍니다. 액션 쪽은 솔직히 후까시는 잡지만 비중은 별로 없네, 란 느낌이고 눈에 띄는 부분은 없는데 기럭지로 다 커버가 된다는 느낌이... 그래, 원래 얼굴 잘 생기고 기럭지가 우월하면 그냥 칼만 들고 서 있어도 간지가 좔좔 흘러서 상대방을 열폭하게 만드는 법이지!

영화가 글로벌 프로젝트라 그런지 화면 때깔이 꽤 좋은 편. 하지만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간 것 같진 않습니다. 요즘 중국쪽으로 나오는 블록버스터들처럼 대규모 전투씬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배경이 웅장한 것도 아니며 거창한 파괴 장면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하지만 화면 때깔이 좋은 만큼 양자경은 나이에 비해 상당히 곱게 찍혔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처음 정우성이랑 커플로 나온다고 했을 때 이거 심하게 무리수 아냐? 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예상했던 것보다는 커버가 되는 레벨이랄까?

어쨌든 사실상 정우성이 주인공인 척하는 것은 페이크, 어디까지나 양자경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서 그녀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보면 강호의 비정함을, 그리고 그외의 모든 요소에서 괴악한 개그 요소가 작렬해주시기 때문에 보면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만족감을 선사하는 영화입니다. 서희원은 참 심한 광증 레벨의 자뻑, 공주병 작렬의 캐릭터를 연기해주시는게 인상적이었고 묘하게 이순재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던 파이널 보스 전륜왕은... 후후, 안녕, 전륜왕. 나는 너를 잊지 못할 거야. 나중에 불쌍한 악역 시리즈 다시 꼽으면 이모텝 형님이나 엠브로즈하고 동급으로 꼽아줄게ㅠㅠ



여기서부터는 노골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륜왕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악역이 될 것 같습니다. 라마의 시신을 찾아 무림을 제패할 기적의 무공을 얻으려는 이유가 썩둑 잘려버린 거시기를 되찾아 진정한 남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라니. 전륜왕, 당신이, 당신이 고자라니! 아니게 무슨 소리요! 절륜왕이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은 그렇게 보는 사람의 눈에서 땀이 흐르게 만들면서 종말을 맞이하니... 아아, 정말이지 제가 본 영화 역대 불쌍한 악역 TOP3 안에 넣어줄 수밖에 없잖아요, 이건!;

그와 어울리는 서희원의 캐릭터도 장난 아니었습니다. 이 여자는 초반에는 광기 어린 미녀로 나오는 것 같더니 사실은 역시나 괴악한 개그 캐릭터였어요! 고자인 전륜왕을 꼬시려고 옷을 벗었다가 수모를 당하는 장면은 그렇다 치고, 그 다음에 정우성 꼬시려고 야시시한 화보처럼 꾸미고 기다리다가 미친년 취급받고 도망가는 장면은... 뭐랄까, 그녀와 전륜왕의 콤비는 그야말로 최강이 아닌가 싶을 정도, 실력도 안되는 주제에 양자경한테 깐죽대면서 매를 버는 것도 그렇고, 마지막에 전륜왕이 고자라는 사실을 알고 비웃을 때는 도대체 뭐 믿고 저렇게 매를 버나 싶은데, 진짜 궁극의 자뻑 혹은 공주병이라 불리는 광증이 시달려서 때려달라고 최선을 다해 도발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전륜왕이 너를 사랑해서 묻는 거야~하고 다리 밑에 묻을 때는 진짜, 본인들은 진지한데 보는 저는 눈에서 땀이 막ㅠㅠ 엔딩 스탭롤 끝나고 땅에서 그녀의 손이 팍 튀어나오는 히든 씬 하나 들어갔으면 최강이겠다 싶었는데 안 나오더라구요, 쳇.(...)

무협 클리셰가 꽉꽉 들어찬 부분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예를 들면 초반에 양자경(으로 변하기 전이었지만!)을 암살하려던 집단이 그야말로 남녀노소로 이루어졌다던가, 그녀를 사랑하던 남자가 목숨을 바쳐서 전륜왕이 의도적으로 만든 초식상의 허점 4가지를 짚어주며 가르쳐주는 부분이라던가, 흑석파가 서희원을 구출할 때 감옥 지붕으로 숨어들어서 특수한 약물을 식사에다가 아무도 모르게 떨군다던가... 아,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어쩜 이렇게 무협스러운지! 흑석파가 부하 늘리는 방법은 진짜 끝내주더군요. 사회적으로 완전 죽은걸로 해둔 뒤에 깨끗하게 신분을 세탁해버리다니. 게다가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약은 24시간 동안 심장은 멈추는데 오감은 살아서 다 보이고 다 들리는 말도 안 되는 효과를 가지다니, 이것이야말로 무협이죠. 크으~!

이선생의 의술은 그야말로 화타를 찜쪄먹을 레벨, 천년 이상을 앞서가는 의술의 신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겠습니다. 저 시대에 성형수술이 부작용이나 흔적조차 없이 되다니! 벌레를 쓴다는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발상은... 아아, 이것이 무협! 게다가 주인공은 그 얼굴에서 정우성이 될 수 있다니 이건 진짜 신의다, 신의! 이 페이스 체인지는 완전 인생역전 레벨이군요!

정우성이 양자경에게 접근한 것이 의도적이었고 둘 다 무공을 숨기고 살았다는 부분은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가 생각나는 설정이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모든 것이 페이크, 너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죽이려고 연기한 거였다! 는 정우성의 말에도 그저 가슴 아파하면서 그를 위해 죽고자 하는 양자경의 각오는 진지하게 눈물나는 부분인데 그 시각,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절륜왕이 되고 싶었던 전륜왕이 서희원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산 채로 파묻고 있었으니 이 괴악한 크로스가 주는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맛이라니_no

그러고보니 사실 가장 의외였던 것은 중후반부 가면서 안나오게 되어버린 집주인 아줌마. 죽거나, 혹은 마지막에 호들갑 정돈 떨어줄줄 알았는데^^;




덧글

  • 幻夢夜 2010/10/20 18:14 # 답글

    어머 저 기럭지 좀 봐 부왘
  • 가라나티 2010/10/20 18:16 # 답글

    아아...전륜왕...아아
    진정한 전륜, 아니 절륜이 되기 위해서 생을 건 그를 잊지 못할거에요...ㅠㅠ
  • 로오나 2010/10/20 22:33 #

    그는 영원히 제 기억 속에 남을 겁니다.
  • eigen 2010/10/20 18:21 # 답글

    정우성은 허우대만 멀쩡한 기둥서방역으로 딱 어울리더군요. 워낙 체격좋고 얼굴이 잘 생겨서요.
    가사상태로 만드는 약이라든가 성형벌레는 SF버전으로 치면 동면약이나 나노머신으로 볼 수 있을거 같네요.
  • 로오나 2010/10/20 22:33 #

    그, 그렇게 보니 정말 그렇군요;
  • 2010/10/20 18:2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로오나 2010/10/20 22:34 #

    서희원 예쁘게 나왔어요. 캐릭터도... 음. 귀엽고.(...)
  • spargo 2010/10/20 18:49 # 답글

    저도 영화봤습니다만 로오나님 글이 영화보다 더 미있네요. ^^ 정말 근래 보기드물게 '무협'스러운 영화였습니다. 무협 좋아하셨던 분들은 꼭 보시길..
  • 로오나 2010/10/20 22:34 #

    참 무협스러운 클리셰가 많아서 즐거웠죠.
  • choiyoung 2010/10/20 19:12 # 답글

    저는 무지 진지하게 봤네요.^^
    다리가 없어 라마의 시체를 원하는 부자(富者)나 전륜왕의 절망감이 넘칠 정도로 이해가 가기에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거운 철판을 많이 다루고 위험한 기계를 많이 다루는 일을 하면서 주위에 손가락 하나 둘 없는
    분들을 많이 보고 저도 손가락 4개가 부러진 경험이 있어 더욱 진지했겠죠.^^;;;)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봐서인지 무지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악역들의 연기도 꽤나 충실했고 정우성의 중국어 실력은 기대 이상으로 자연스러워
    그게 꺼꾸로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연기면에서는 굉장했습니다.
    뭐 양자경이야 말 할 필요도 없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예고편에서 보여지던 어두운 영화가 아니고 해피엔딩인게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지막에 그 악역 둘의 죽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부분에서는 어쩌면 후속작을 감안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로오나 2010/10/20 22:34 #

    그 부자의 경우는 정말 아, 저런거에라도 매달리고 싶었구나 싶었죠.
  • JOSH 2010/10/20 19:13 # 답글

    > 정우성이 양자경에게 접근한 것이 의도적이었고

    그건 정을 떼기 위해 일부러 한 거짓말 같습니다.
    아니면 그 무덤 안의 자료들을 보고 그때서야 오열할 필요가 없지요.

    각본/감독이 초짜티가 나서 여러가지 아기자기한 점을 못 살린게 아쉽더군요.

    남편의 페이스오프 동기가 영 뜬금없다던지,
    남편이 무공 숨기고 살 때에도 뭔가 관객들에게는 보여주는게 있었어야 했다든지,
    그렇게 발리던 애가 뭔 계기로 렙업해서 그리 고수가 되었는지...

    흑백양검이 나왔을 때 관객들이 팍 알 수 있게
    원래 인물의 무기를 좀 강조해줬어야 할거 같기도 하고,
    서로 진짜 정체 모르는 상황에서도 무공이 들통난 부부의 대결이라든지
    적을 협공한다든지 하는 내용이 들어갔으면 좋았을텐데...

    여튼 참... 70~80년대 무협영화를 현대 비주얼로 만든 느낌이었습니다.. -,-
  • 로오나 2010/10/20 22:35 #

    접근한게 의도적이었나... 에 대해선 그런 의문을 들이댈 수 있겠지만 정우성이 양자경의 정체를 알고 있는 뉘앙스는 계속해서 나오죠. 감독은 오우삼인데 초짜라고 하긴 좀.(...) 뭐 공동감독으로 감독, 연출이긴 합니다만.

    정우성의 뜬금없는 레벨업은 중간에 어떤 기연을 만났는지 설명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 한양댁 2010/10/20 19:38 # 답글

    이 영화, 8살짜리 애([아바타]랑 [인디아나 존스]랑 [엽문]도 애 데리고 같이 봤....)랑 같이 봐도 무리없을까요? (이딴거 물어봐서 죄송합니다........하지만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아서...애 데리고 가야 되는 토요일 말고는.......)
  • 가라나티 2010/10/20 19:50 #

    어...제가 알고 있기로는 이 영화 15세 이상 관람가일겁니다만...
  • 天時流 2010/10/20 21:35 #

    15세긴 한데 제가 본 CGV군자에선 부모가 데리고 들어오더군요.. 그닥 제지는 없을 껍니다.
  • 길시언 2010/10/20 21:55 #

    미성년자 관람불가가 아닌 이상은 어린이도 보호자와 함께라면 볼 수는 있긴 합니다.
  • 로오나 2010/10/20 22:36 #

    애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애가 재미있어할 것 같진 않습니다. 액션은 피가 안나와서 잔인함은 떨어지는 편이고... 중간에 서희원이 좀 벗는 장면이.(...)
  • 한양댁 2010/10/20 23:22 #

    에휴, 벗는 장면 있으면 안 되겠군요. 보나마나 애가 큰소리로 어 아줌마 왜 저러냐고 극장 안을 진동시킬 게 뻔....
  • 남채화 2010/10/20 20:25 # 답글

    원래 보려고 했었는데
    영화 자체도 괜찮다니 더 보고 싶어졌네요
  • 로오나 2010/10/20 22:36 #

    무협 클리셰와 괴악한 개그가 좋아요.
  • 天時流 2010/10/20 21:40 # 답글

    환관이라고 해서 동창이나 될까 했더니 50년동안 9급 공무원 신세인 전륜왕은 대체.. ㅠㅠ
  • 로오나 2010/10/20 22:36 #

    하지만 사실은 암중의 지배자...이긴 하지만 현실 참 안습이죠. 목소리 왜 저래, 라고 생각한 것도 배트맨 변성급 반전이...!
  • 길시언 2010/10/20 21:59 # 답글

    전륜왕의 비밀이 밝혀지는 부분에선 정말 놀랐습니다;; 고자라니!
  • 로오나 2010/10/20 22:36 #

    전륜왕에게는 슬픈 전설이 있었죠.(...)
  • 2010/10/20 23:2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로오나 2010/10/21 04:43 #

    정우성은 꽤 자기 역할을 잘 소화한 느낌이었어요.
  • EST 2010/10/21 03:06 # 답글

    아아 정말이지 한줄 한줄 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읽게 만드는 감상입니다 ㅜ ㅜ
  • 로오나 2010/10/21 04:43 #

    우리는 절륜... 아니 전륜왕 그를 기억하겠죠.(...)
  • 미파솔 2010/10/21 11:13 # 삭제 답글

    내가 고자라는 걸 알게 된 이상 죽어줘야겠어!!!

    여기서 빵 터져서는 영화 끝날때까지 웃느라 집중이 안되더군요;;;
    이건 뭐 잊지못할 개그 영화....
  • 로오나 2010/10/21 15:16 #

    다리밑에 파묻기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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