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디 에어 - 지구와 달보다 더 먼 사람과 사람 사이



원제는 'Up In The Air'인데 왜 제목에서 '업'을 빼버렸는지는 의문. 그냥 '인 디 에어' 쪽이 우리나라 쪽에서 볼 때는 어감이 좋았기 때문일까요? 단순히 그런 이유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번역이 좀 깼습니다. 번역자가 치킨런. 이 번역자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이유는 마지막 엔딩곡까지 모두 번역해주었기 때문이었어요. 히든 씬은 없지만 이 영화에서 엔딩곡은 나름 의미를 가집니다. 스탭롤 중간에, 연출인지 실제 사연인지 알 수 없지만 실직한 사람이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에게 지금 그 기분을 이 노래로 표현해봤다면서 당신의 영화에 쓰이면 좋겠다는 말을 하며 두 번째 노래를 들려주죠. 여기까지 충실하게 번역되어있다는 점이 베리 나이스.


영화의 소재가 신선했습니다. 처음 시작 부분은 뭔가 10년도 더 된 영화 같아서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 후에 조지 클루니가 자기직업에 대해 설명하면서부터는 그 좋지 않은 인상이 확 바뀌었어요. 어떤 직업을 소재로 삼을 때는 역시 그게 신선하냐 아니냐가 중요하겠죠. 차마 자신이 직접 해고통보를 할 용기가 없는 겁쟁이 사장들을 대신해주는 해고전문가라니, 이거 정말 멋지지 않아요? 직장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 넘버원이지 않을까 싶군요. 산업화가 이루어진 세상이니까 이런 별의별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직종도 있는 거겠죠.

오랫동안 1년 중 322일 동안을 비행기에 타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해고해오고, 궁지에 몰린 그들을 다독여 다음 스텝으로 이끄는 역랑을 하던 라이언. 그런데 세상을 잘 모르는 젊은 아가씨 나탈리의 야심으로 그 작업마저 인터넷 화상채팅을 통한 방식으로 디지털화되어갈 때, 오랫동안 아날로그적으로 사람의 상처를 직면해왔던 라이언은 거기에 반발하게 됩니다. '그런 방식으론 안 돼!' 하고 말이죠.


자기자신도 인생에 구멍투성이인 라이언이지만 그 야심찬 계획을 내놓은 나탈리에게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직접 느끼게 하기 위해 여행하는 동안, 그 사이에 겪는 일들로 인해 변해가는 과정이 이 작품의 내용인데, 배우들의 연기는 역시 좋습니다. 조지 클루니는 작품 속의 라이언을 정말 멋들어지게 연기해냈어요. 그와 로맨스를 펼치는 알렉스 역의 베라 파미가는 저는 이 영화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근데도 왜 어디선가 한번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상당히 개성적인 생김새인데 말이죠.

세상물정 잘 모르는 엘리트 아가씨 나탈리는 엄청 귀여워요. 나탈리 역의 안나 켄드릭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도 나왔다는데 기억이 희미하군요. 아니, 실은 그 영화는 에드워드와 벨라의 애정행각에 계곡 손발이 오그라들었던 것 빼면 전혀 기억이 안 나긴 하지만. 앞으로 그녀가 나오는 다른 영화를 기대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달까지의 거리보다도 더 먼 거리를 여행해오며, 역사상 7번째의 천만마일 마일리지 달성자가 되는 것에 집착하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할 의미를 찾지 못하는 라이언. 그가 사람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을 보니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보다도 더 멀고 우리는 그 사이를 힘겹게 날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맛과 함께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영화였어요,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배드엔딩입니다. 여기서 어쩌면 우리는 라이언이 마음을 고쳐먹고 알렉스에게 달려갔을 때, 알렉스도 쿨하게 노는 것만 즐기는 듯 하면서도 자신에게 그가 달려와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엔딩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맺어지고 라이언의 인생도 변하는 그런 엔딩.

하지만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파국이었습니다. 처절하기까지 한. 처음에는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잠깐 기대했어요. 그런데 곧 '여보'라는 소리가 들어올 때는 뭔가 같이 쩌적, 금이 가고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죠.


나탈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라이언을 따라서 미국 전역을 비행하다가 남자한테 차이고 울고불고하고, 자신이 고안해낸 온라인 해고 시스템 때문에 상처받고, 자신이 해고한 사람이 스스로 말한대로 정말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해버리자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그 직장을 떠나고 마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직장으로 찾아갔을 때, 그래도 끈은 남아있었습니다. 밉살맞고 한심하지만 그래도 왠지 선배로서 듬직한 구석도 있었던, 그래서 더 그 사람이 좀 더 인간적으로 살아갔으면 하고 바래서 주제넘는 참견을 하게 되었던 그 선배가 그 직장으로 남겨준 한 장의 편지. 그 결말은 참으로 인간적입니다. 문자 하나로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온라인 화상 채팅으로 해고됐다는 소식을 통보하는 세상에서도... 사람은 아날로그적인 교류를 지속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말해주는 듯한.


그렇게 라이언의 인생은, 변하지 않았지요. 목표로 하던 1천만 마일을 달성해서 기장과 이야기도 해보고 역사상 7번째로 카드와 비행기 옆에 이름도 새기게 되지만 결국은 똑같아요. 잠시 흔들려서 일탈을 꿈꾸며 강연까지 내팽개치고 달려가봤지만 파국. 세상이 인간미 없게 변해가려나 싶더니 젊은 후배는 상처받고 도망쳐버리고 자신은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1년 중 322일을 비행기로 여행하는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처럼, 계속 그렇게 살아갈지도 모른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가 변했다는 것을 압니다. 어색하나마 가족을 위해 돌아와서 여동생의 남편될 남자를 설득하고, 그 결과가 파국이었을지언정 정말 사람을 사랑해보았으니까요.








덧글

  • Dragon 2010/03/25 18:38 # 답글

    음 봐야겠군요...ㅠ 희한하게 여기 올라온 영화는 다 보게 된다능...-_-;;
  • 로오나 2010/03/26 19:02 #

    좋은 작품입니다^^
  • 샤유 2010/03/25 19:16 # 답글

    진짜 걸작입니다 이 영화.

    왠지 지금 제 모습이 겹쳐서 더 쓸쓸하게 느껴지더군요.
  • 로오나 2010/03/26 19:03 #

    누구나 한번쯤은... 살아온 궤적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영화죠.
  • 호앵 2010/03/25 20:02 # 답글

    이번에 해외출장 가면서 있길래 오예~ 하고 봤는데,
    자막이 없... ㅠ_ㅠ 영어 자막이라도 있었으면 좀 나았을텐데... 그래서 못 봤죠 - _-
  • 로오나 2010/03/26 19:03 #

    저런^^;
  • killroo 2010/03/25 21:52 # 답글

    내일 시간이 나서 보려했더니 동네 CGV에서는 이미 내렸네요. 아으으으 ㅜㅜ
  • 로오나 2010/03/26 19:03 #

    아무래도 크게 흥행하는 영화는 아니다 보니;
  • FeLLEN 2010/03/25 22:18 # 답글

    무슨 영화를 볼까 하고 개봉 영화들 하나씩 시놉시스 읽으면서 확인했는데, 이 영화가 눈에 딱 들어오더군요.. 바로 표 예매하고 봤는데 정말 많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명작이에요..^^
  • 로오나 2010/03/26 19:04 #

    네. 정말 보길 잘했어요.
  • 그라드 2010/03/25 22:56 # 답글

    나탈리 우는 장면에서 저도 덩달아 몹시 당황하면서도 진짜 귀엽다고 생각했던...
  • 로오나 2010/03/26 19:04 #

    그 부분 진짜 좋았죠. '어, 얘 연기 잘한다'라는 생각도 뒤늦게 들더라고요.
  • 지나가는이 2010/03/25 23:06 # 삭제 답글

    저는 이영화보니 왜이렇게 우울하던지...
  • 로오나 2010/03/26 19:04 #

    우울해져도 이상하지 않은 영화이긴 하죠
  • rumic71 2010/03/26 00:15 # 답글

    영화제목을 외국어로 표기 할 때 3마디까지만 된다는 제한이 옛날에는 있었습니다. 그게 아직 남은 것일수도...
  • 로오나 2010/03/26 19:04 #

    아, 그런게 있었나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 냐무 2010/03/26 03:36 # 삭제 답글

    저도 이 영화를 봤습니다.저 역시 베라 파미가를 처음 봤는데 어딘가 익숙하더라구요. 같이 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여배우랑 닮은 것 같다는 얘기를 하던데..이름이 기억안난다는;;;
  • 로오나 2010/03/26 19:05 #

    그쵸? 왠지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필모그래피를 찾아봤는데 여기서 처음 봤더라고요-_-;
  • 天時流 2010/03/26 23:04 # 답글

    지난주 출발 스포일러 여행을 보니 영화 초반에 실직통보를 받는 사람들은 실제 실직자들을 데리고 촬영한 걸로 알고있습니다. 스탭롤 중간에 나오는 음악 작곡해준 사람도 실제 실직자로 그 노래로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고 하더군요...
  • 로오나 2010/03/27 10:30 #

    아, 그럼 그 노래 사연은 진짜였군요. 궁금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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