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시민 - 막판에 푹 고꾸라지는 안타까운 영화



처음부터 이 영화 감상평들은 막판에 대한 혹평이 워낙 많아서 기대감을 완전히 접고 갔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판 10분간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드라마틱한 붕괴의 현장을 보면서 벙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대단해요. 분노 혹은 짜증이 일어난다거나, 허탈하다거나 그런 감정은 생기지 않아요. 남아있는 것은 그저 미칠 듯한 안타까움. 뭔가 만든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전 이 영화 솔직히 재미있게 봤어요. 막판에 모든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말이죠. 스포일러라고 할 수도 없는 스포일러 하나 찌르자면, 시작하자마자 클라이드(제라드 버틀러)가 야구방망이로 얻어맞는데 그러고 쓰러지고 나서도 안면이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것이 살짝 거슬렸지만(...) 동기가 되는 사건을 전혀 망설임 없이 푹 찔러놓고, 굳이 '동기를 설득력 있게, 이후 내용과 완전히 대비되는 상황을 머릿속에 박아주겠다'는 욕심 없이 스피디 있게 시작해서 아주 적절한 템포로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꽤 좋았습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몰입감 있었어요.


하지만 이것도 막판에 마술의 트릭이 밝혀지기 전까지. 이 영화는 몰입하면 몰입할 수록 보는 입장에서 기대치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는 영화였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고 '도대체 비밀이 무엇인가'라는 점이죠. 마술 같은 전개로 사람의 궁금증을 계속 올려놔요. 도대체 무슨 수를 써서 이렇게 할 수 있는 걸까? 여기에 대해서는 아주 무난한 추측이 가능하고, 그런 무난한 반전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떡밥도 여기저기 흘려놨어요. 그리고 차라리 이런 무난한 반전으로 갔으면 다소 욕은 먹었으되 무난한 완성도를 보이면서 즐거운 2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걸 만든 사람들은 그 이상을 원했던 것 같아요. 스스로 허들을 한도 끝도 없이 높여놓은 다음, 무난한 움직임으로 너무 높아져서 '벽'이 되어버린 허들을 돌아서 가는 대신 독특한 점프 스타일로 어떻게든 이걸 넘어보겠다고 발버둥쳤죠. 마치 옛날 애니메이션 '대운동회'에서 아라레 포즈~를 취하면 세계신기록을 돌파할 수 있는걸 벤치마킹한 것처럼요.


결과요? 만약 그렇게 해서 경이로운 도약력으로 넘는데 성공했다면, 이 영화는 올해 본 영화 중에 가장 인상적인 영화 중에 하나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결국 못 넘고 꼴사납게 허들에 걸려서 푹 고꾸라지고 말았죠. 이 결말은 관객도 영화 속의 인물들도 그리고 만든 사람 자신들조차도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막판이 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한 방향으로 기대치가 집중되어있었는데 - 여기까진 꽤 좋았는데, 도대체 이걸 어떻게 드라마틱하게 망가뜨렸길래 그렇게 욕을 먹는 거야? 하고 - 그걸 뛰어넘는 한방을 보여주네요. 안쓰러움이 폭풍처럼 몰아치다가 허허, 웃고 말았습니다.



자, 그럼 여기부터는 스포일러와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입니다


클라이드의 마법 같은 '교도소 안에 앉은 채 검찰을 농락하고 온 도시를 공포로 몰아넣는' 행각은 솔직히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차라리 작중 인물 중에 누군가를 '공범자'로 설정해서 반전을 때렸다면 '에이~'하는 느낌이 안들 수는 없었어도 무난한 결말이 됐겠죠. 그때까지 즐긴 기분이 허망하진 않았을 거에요. 예를 들어 그 죽은 닉의 수제자 아가씨나 막판까지 함께 하는 그 살집 있는 아저씨 같은 사람이 사실은 클라이드의 공범자였다면 좋지 않았을까. 특히 그 수제자 아가씨는 체스터라는 남자친구에 대한 떡밥이 좀 있는 편이라서 그걸 활용했으면 그냥 깔끔한 끝이 됐을 텐데, 굳이 죽여버리는 쪽으로 몰고 가다니. 아니, 죽여버린 후에 '사실 그건 훼이크! 그녀는 살아있었고 진정한 공범자였다!'라고 했어도 욕은 먹었어도 이거보단 괜찮았을 듯;

아무리 그래도 땅굴왕은 아니잖아요. 도대체 교도소 안에 있는 놈이 어떻게 바깥에서 계속 사건을 일으키나 했더니 10년간 자기 소유의 공장에서부터 교도소의 모든 방에 통하는 땅굴을 파놓고 이 순간을 준비했다니, 어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발상이 가능한 거야_no 차라리 정부와의 거래로 활동하는 동안 그를 위해 움직이는 외국의 비밀조직이 있었다고 하지?;


클라이드의 복수대상은 지나치게 확대되어 있었고, 정작 때려야 할 닉을 안 때리는 채 다른 사람들만 계속 죽여버리는 게 가장 웃기긴 한데... 뭐, 원래 지독한 상실과 부조리를 맛본 사람이 어떻게 폭주할진 알 수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세상 전체를 상대로 공포를 각인시켜서 그로써 어떻게든 바꿔보겠다는 발상을 할 수도 있죠. 그래서 딱히 거기에 대해선 트집을 잡고 싶지 않았습니다. 최종적으론 '닉에게 공포를 안겨줘서 그를 바꾼 다음 그를 파멸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 저 결말을 본 후엔 그딴거 아무래도 상관없어!;


게다가 닉 이놈도 결국 법 위에서 어떻게든 클라이드와 싸워보겠다고 아웅다웅하더니 결국 낸 결론이 클라이드의 행동에 따라 그의 엉덩이 아래쪽에서 네이팜을 터뜨려서 그를 저승으로 보내버린다는 불법적인 '살인행각'이라니 이렇게 한심할 수가. 그러고 나서 뭘 배우고 뭘 알았다고 떠드는 거야?; 그렇게 클라이드 보내버리고 나서 변호사가 되어 그와 비슷한 처지의 고객에게 첫 의뢰를 받아서 법정에서 '이의 있소!'를 날린다니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기분이었지만, 저 결말을 본 후엔 그딴거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지만 중간에 스너프 필름 찍을락말락하는 부분은, 결국 보여주진 않았지만 전 이런 분위기에 약해서 눈을 돌리고 있었어요. 무서워, 흑흑흑. 이런걸 열살 짜리 꼬맹이한테 보여주다니 해도해도 너무한다, 클라이드ㅠㅠ


여러모로 참 헛웃음 흘리게 만들어주는 영화였습니다. 어이쿠.







덧글

  • 유나네꼬 2009/12/16 19:35 # 답글

    으와...왠만해서는 네타 안읽는데 ...이영화는 안보는걸로 결정 -_-;
    아! 오늘 영업끝내고 아바타3D를 보러간다네~~ 룰루랄라~
  • 로오나 2009/12/16 19:38 #

    난 내일.
  • Skullist 2009/12/16 19:42 #

    전 한동안 휴식합니다. ㅋ
  • 샤린로즈 2009/12/16 21:05 # 답글

    재미는 있었지만, 허탈한 영화;; 내가 이걸 왜 본거지
  • 로오나 2009/12/16 23:43 #

    꽤 허탈한 영화죠. 막판이 끝장이란걸 알고 봤는데도 참-_-;
  • 사헤라 2009/12/16 21:31 # 답글

    예고편도 좋았고, 초중반엔 좋았는데... 꼭 끝을 그렇게 내지 않았어도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기대 많이 했는데도 재밌었어요. 차라리 시리즈로 가서 완벽하게 끝맺었더라면.ㅜ_ㅜ
  • 로오나 2009/12/16 23:43 #

    그냥 무난한 방법을 택했으면 중간은 갔을텐데 말이죠
  • 역설 2009/12/16 22:18 # 답글

    망가뜨리는 기대치...라니 꼭 트랜스포머 스타스크림이 떠오르네요

    "날 이만큼 실망시키리라 기대했는데 실망이다 스타스크림!" (어?)
  • 로오나 2009/12/16 23:43 #

    음;;;
  • 메타트론 2009/12/16 23:31 # 답글

    제목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포스를 뿜어내는군요;;
  • 로오나 2009/12/16 23:46 #

    모범시민의 길이란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는 영화.(응?)
  • LONG10 2009/12/17 00:04 # 답글

    재미없다는 대부분의 의견에 그냥 '아마도 안 보겠지' 하고 내용누설을 펼쳤다가...
    옴마나! 저렇게나 충격적인 반전이면 모르고 봤을 때 염통이 벌렁벌렁했겠지 하고 후회중입니다. OTL

    반전을 보고 든 생각이, 디스커버리 채널의 Dirty Jobs란 프로그램 진행자가 했던 일 중에
    연구용 물뱀을 잡는 일이 있었는데 물뱀을 잡는 방법이 '수풀 속에 손을 넣어 물리는 것'
    이더랍니다. (아무리 독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그동안 수많은 더러운 일을 해본 진행자가 결국에는 'You... You are not right.' 라고 했다는데,
    저 주인공에게 저 말을 들려주고 싶네요. ^^;
    (그냥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해!)

    그럼 이만......
  • 로오나 2009/12/17 00:05 #

    이건 뭐 거의 실은 심령스릴러였다고 해도 동급이었다고 해줄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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