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에 먹으러 왔다 - 냉면과 고기와 해물파전과

1년만에 백제여행을 갔습니다. 이번에는 인원도 무려 다섯명이고, 목표도 처음부터 문화재 구경 같은 게 아니라 지난해에 먹었던 그 맛난 것들을 다시 한 번 먹으러 가자! ...라는 건전하기 이를데 없는 여행! 당일치기로 해결하기로 하고 스타렉스를 이용해서 고속도로를 타고 달렸으나...

어머나 세상에. 뭐 이렇게 고속도로에 차가 많은거여? 오늘 월요일이잖아? 고속도로 뻥뻥 뚫려있어야 정상이잖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슬슬 휴가철이 시작되는 시기라서 막히는 게 당연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그래서 몇 시간 동안 고속도로에서 느릿느릿하게 가다가 점심시간이 지나버려서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서 가볍게 보급을 실시. 사람 참 많이 바글거리더군요.

결국 부여에 도착하여 부소산성에 올랐습니다. 문화재 관심없다면서 여긴 또 왜 올라가냐고요? 에이, 작년부터 보신 분들은 다들 아시잖아요. 여기에 유네스코에 등록시키고 싶은 근사한 해물파전과 도토리묵과 동동주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째서 죄다 닫은 거야!?


작년에 먹었던 가게는 물론이고 그 주변 가게까지 모조리 다 폐쇄되어있다! 처음에는 오늘이 월요일이라 쉬는 날인가 싶었으나 아무리 살펴봐도 문 닫은지 한참 된 것 같고 싸그리 철수한 것 같은 느낌이 풀풀! 사정을 알아보니 미관상 보기 안 좋다고 민원이 들어와서 국가에서 철수시켰다나?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 싹 깔끔하게 새로 지을 예정이라나? 젠장, 관광객은 절대 안 넣었을 것 같은 그딴 민원을 듣고 이런 만행을 저지르다니! 절망했다! 백제여행을 온 목표 중 하나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린 사실에 절망했다!_no 아악,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우리가 왜 힘들게 작년에 다 봐서 새삼 별로 볼 것도 없는 부소산성에 올라온 건데!ㅠㅠ 

아, 진짜 상심이 보통이 아니라서 축 늘어져서 터덜터덜 걷다가 3천궁녀가 의자왕을 엿먹이기 위해 투신했다는 전설로 유명한 낙화암에 올라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래도 여기가 전망 하나는 좋아요. 흑흑흑. 우리한테서 해물파전과 도토리묵과 동동주를 빼앗아간 모든 인간들을 저주할테다ㅠㅠ

약수로 유명한 고란사에서, TV출연도 했다는 유명한 멍멍이 해탈이를 만났습니다. 그 녀석 참 불가의 개다운 이름에 거기에 어울리는 풍모를 갖고 있구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쯤은 익숙하다는 듯, 유명견의 숙명이 이러한 것을 알고 있으니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을 용서하겠다는 듯 만사에 해탈한 풍모를 보여주는 이 녀석에게 한눈에 반해버렸어요. 아우, 귀여워.

그리고 헉헉거리며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가 부소산성을 내려온 뒤, 이 분노와 허탈감을 달래기 위해 공주로 달려가서 한국관 냉면을 먹었습니다. 1년만에 먹어도 진짜 끝내주는군요. 게다가 가격도 착해요. 세숫대야 냉면 같은 사이즈에 가격은 고작 5000원! 일행 중에는 냉면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국물까지 싹 비워버리고는 '놀라워! 이건 정말 맛있어! 아니 그 전에 이게 냉면이 맞단 말야? 냉면하고 닮은 다른 음식 아냐?'라고 물었을 지경. 다들 정말 눈부신 속도로 한 그릇을 비우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맛있어. 이거 너무 맛있어. 아우, 행복해ㅠㅠ 부소산성에 올라 느꼈던 절망감과 배신감이 걷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진짜 이거 하나 먹으러 공주까지 내려올만 하다니까요.

냉면님만 영접하면 고기님께서 섭섭해하실까봐 돼지갈비님을 시켰습니다. 우리의 강렬한 욕구를 받아 타오르는 불길 위에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진정한 모습, 익혀졌다 모드로 변신하고 계신 고기님의 모습. 물론 그 맛은 강렬하게 정의로워서, 분명 5인분을 시켜놓았건만 광속으로 사라져서 우리가 고기를 씹어서 먹었는지 아니면 냉면 국물과 함께 마셔서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맛있어. 너무 맛있어! 아우, 그래. 바로 이런 것을 원했다니까. 너무 행복해ㅠㅠ 냉면님과 고기님이라도 그대로라서 너무너무 다행이에요.

밤에는 아무리 떨쳐버리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 해물파전에 대한 열망을 채우기 위해, 아니 그 전에 실은 비가 갑자기 엄청 퍼부어대서 운전자의 피로도 좀 많이 쌓였겠다, 냉면도 한번 더 먹고 싶겠다(실은 후자의 비중이 압도적) 대전으로 이동해서 하룻바 묵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트에서 재료를 사와서 해물파전을 자체생산! 물론 저는 이런 근사한 것을 만들 재주가 없으므로 열심히 먹고 나서 설거지를 했을 뿐.(...) 밖에는 비가 쏴아아, 쏴아아 잘도 내리는데 갓 부친 해물파전을 뜯어먹으며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니 이 또한 행복하지 아니한가, 캬아~!>ㅁ<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일단 PC방에 와서 인터넷 좀 둘러보고 있는 중입니다. 더 자세한 것은 내일 가서 포스팅할 예정. 내일도 한번 더 냉면님을 만두님까지 함께 껴서 영접하러 갑니다. 후후후.



덧글

  • 앙탈 2009/07/27 23:43 # 답글

    저는 오늘 동해도 레이드를 다녀와서 내성 성공!
  • 로오나 2009/07/29 21:19 #

    오호, 동해도!
  • DukeGray 2009/07/28 00:22 # 답글

    저 해물파전님과 냉면이 참 슬프게 하는 군요.
  • 로오나 2009/07/29 21:19 #

    사랑해야 마땅한 존재들이죠
  • 깊고푸른 2009/07/28 01:01 # 답글

    대전의 냉면은 사리원면옥이 좋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좀 애매한 맛을 보였었지만,
    다시 예전 맛을 찾아가고 있었었는데...

    안간지 2년이 넘어서...확신을 못하겠네요.
    대전이시라니까..
    사리원면옥에 냉면 먹으로 가고 싶네요..
  • 로오나 2009/07/29 21:19 #

    대전의 사리원면옥... 다음에 가게 되면 참고할게요^^
  • 해츨링아린 2009/07/28 03:22 # 답글

    해물파전!!! +ㅁ+)

    ...이상하다. 난 원래 해물을 싫어하는데 왜 저 사진을 보고

    해물 파전이 먹고 싶다고 생각한거지 (...)
  • 로오나 2009/07/29 21:19 #

    그건 해물파전이기에!
  • 리하이트 2009/07/28 10:41 # 답글

    역시 정의는 고기님과 냉면님이 동시에 등장하시는 거죠!
  • 로오나 2009/07/29 21:19 #

    충격의 고기님 현혹의 냉면님
  • 지연 2009/07/28 11:22 # 삭제 답글

    부여가 제 고향이에요~ 여기서 이렇게 고향 사진 보니까 반갑네요:)
  • 로오나 2009/07/29 21:19 #

    이야, 부여에서 태어나셨군요^^
  • 카이º 2009/07/28 14:26 # 답글

    행복하겠어요 ㅠㅠ 어흑
  • 로오나 2009/07/29 21:20 #

    그럼요.
  • SoulLoss 2009/07/28 20:07 # 삭제 답글

    대전이시라니! 대전이시라니!!! (내가 대전사는데!!)

    어쨌든 해달이 정말 해탈한 모습입니다 그랴 ㅇㅅㅇ
  • 로오나 2009/07/29 21:20 #

    포스가 느껴집니다, 해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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