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만 빼고 다 좋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제목도 빼고. 그외엔 도무지 나쁜 구석을 찾기 힘들었던 영화, 그것이 바로 '과속스캔들'이었습니다.
사실 전 우리나라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이라서(왜 안 보냐고 묻는다면 아마 '소재와 그걸 풀어나가는 스타일이 시장 크기만큼 한정되어 있는데, 그 소재와 스타일이 별로 취향이 아니라서'라고 대답할 듯하군요) 이 영화도 별로 볼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평이 너무 좋아서 한번쯤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무엇보다 다들 박보영 박보영 하는데 도대체 얘가 영화 속에서 얼마나 사랑스럽게 나왔길래 이 난린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봤는데...
와, 완전 사랑스러워!ㅇㅁㅇ;;;
박보영은 소중합니다. 넵. 인정해요.(...) 포스터나 스틸샷만으로는 영화 속에서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럽게 표현됐는지 단 1%도 전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 작품 포스터는 그녀의 매력을 깎아먹느라 안달이 난 것으로 보이기까지; 하지만 직접 영화를 보면, 첫 등장씬은 꾸밈없이 약간 후줄근하면서도 왜 그리 귀엽던지. 이후 그녀가 나오는 장면마다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니까요.
개봉 전에 이 영화가 이렇게 대박 터지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설마하니 500만 관객을 넘어버릴 줄이야! 게다가 잘하면 600만이나 700만까지도 가능성이 보이네요.(천만은 좀 오버고) '쌍화점'에 밀려서 2위로 내려오긴 했지만 기세는 전혀 줄지 않은 상태니까요.
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실감한 것은 한국영화의 촬영기술은 상당한 수준이라는 겁니다. 순제작비가 25억원에 불과한 이 영화의 때깔은 헐리웃 영화들과 비교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습니다. 심지어 3700만 달러 들인 '트와일라잇'과 비교하면 이쪽은 1억 달러쯤 들여야 이런 화면 뽑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때깔이 좋죠.
이 영화는 제목과 홍보문구 그대로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영화입니다. 사이좋게 과속한 아버지와 딸, 그리고 손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이야기이기도 하달까. 이 영화는 음악에 많은 공을 들였고 공들인 보람이 있는 음악을 들려줍니다. 박보영이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부를 때, 그리고 무대에 서서 코러스들과 함께 노래를 부를 때, 왕석현이 피아노 천재의 재능을 드러낼 때 이 영화가 주는 만족감은 한층 더 깊어지지요.
작중에서 박보영은 노래도 본인이 직접 불렀다고 하던데(물론 녹음은 따로 했지만) 그 사실을 알고 좀 놀랐습니다. 노래 정말 잘 부르더라고요. '미녀는 괴로워' 이후로 작중 음악으로 이만큼이나 만족감을 얻은 한국영화는 처음인 것 같아요.
센스 좋아서 장면장면마다 웃을 수 있고, 화면 좋고 배우 좋아서 보면서 흐뭇해지고, 음악 좋아서 귀가 즐거우며, 가슴 따뜻해지기까지 하니 도대체 더 뭘 바랄손가. 스펙터클은 헐리웃에 맡겨두고, 한국 영화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한 편의 영화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뭐 하나 흠잡을데 없어서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보여주지요. 차태현의 캐릭터는 보고 있으면 비겁하기도 하고 치졸해서 살짝 짜증도 나지만 어른의 관점에서, 자기를 대입해서 저런 일이 생겼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는 이해도 가고(물론 용서하곤 다른 문제) 그가 여러가지 어른의 문제 속에서 울컥해서 해선 안될 말을 내뱉고 스스로도 상처받을 때는 같이 가슴이 아프고. 그의 연기가 아니었으면 이 영화가 이만큼 건실해질 수 없었겠죠. 박보영은 말이 필요없어요. 그저 사랑스럽습니다. 저런 딸이 찾아왔는데 어른의 사정을 들어서 비겁하게 내치려고 하는 남현수 씨는 한대 맞아도 쌉니다. 훗.(이해한다며?) 뻔뻔하고 뚱한 것 같으면서도 똑부러지게 세상을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한구석에는 여린 구석이 있는 황정남이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해낸 그녀는 이 영화를 이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만들어놓은 일등공신입니다. 그렇다면 역시 매력폭발의 왕석현은 어떤가? 전 솔직히 애가 너무 착하고 똑똑하고 이해심과 배려가 넘쳐흘러서 살짝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애가 조금만 더 애답게 나왔으면... 으음. 이 영화 분위기가 완전 달라졌겠지요; 그런 면에서 왕석현 또한 아주 사랑스러운 꼬맹이 캐릭터를 잘 연기했고, 그 결과는 관객을 미소짓게 만듭니다.
혹자는 황정남이 미혼모라는 설정을 갖고 좀 더 깊게 사회적인 시각으로 파고들어가지 않는 것을 문제 삼기도 하던데, 글쎄요. 애당초 영화 분위기가 전혀 그런 쪽이 아니라서 그걸 진지하게 다루고 있었으면 대단히 어색하고 어정쩡하며 지루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요. 어느날 갑자기 닥쳐온 헤프닝으로부터 이어지는 좌충우돌 가족 코미디로서 이 영화는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관 가서 한국어를 들으면 알러지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닌 한에야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영화 되겠습니다. 솔직히 근래 들어 본 영화 중 제일 좋았어요. 강형철 감독의, 그리고 세 주연 배우들의 다음작품도 기대합니다 :)
P.s - 이 영화는 딱히 스포일러 감춰두고 할 말은 없고... 끝나고 곧바로 자막과 함께 에필로그격의 보너스 영상이 나오는데도 사람들이 우르르 다 나가버리는 게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사실 며칠 전에
우리나라 사람은 정말로 엔딩 크레딧을 보기 싫어한다 포스팅을 쓰게 된 원인도 그거였고요. 단순히 보너스 영상에 그치지 않고 영화 속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정리되었는지도 조금씩 보여주는 내용의 연장선상에 있는 귀중한 영상이었는데 말이죠. 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