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흥행실패의 열풍이 불고 있는(...) 20세기 소년을 보고 왔습니다. 3부작 동시에 촬영했으니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영영 2부는 못볼 뻔했군요. 이런이런.(우리나라에서도 2주차까지 17만명)
처음에 서태지 뮤직비디오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가, 갑자기 웬 서태지가? 아무래도 마케팅 관련해서 협력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영화는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워낙 악평이 많아서 상당히 각오를 하고 갔는데... 보다가 힘들어지긴 했어도 재미없진 않더군요. 중간중간 살짝살짝 슬슬 한계에 달해서 집중이 끊어지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이건 일종의 템포 문제. 그러니까 영화적으로 뭔가를 각색할 생각을 안하고 만화 스타일을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두시간 반에 걸친 러닝타임 동안 만화의 어느 정도 잡고 조이는 듯한, 하지만 치고 올라가는 일도 없고 느슨하게 풀어주는 일도 없는 그런 템포가 계속되니 아무래도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영화로 만들 거였으면 완급이 필요해요. 30분짜리 혹은 1시간짜리 드라마였으면 상관없겠지만 이건 두시간 반짜리 영화란 말이죠. 제작비 많이 들어간 것 같은 몇몇부분을 제외하면 차라리 드라마로 만드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뭐 어떤 의미에서는 제작진이 영화화를 하면서 쓸데없이 욕심을 부려서 모 아니면 도의 결과를 내지 않아서 좋기도 했지만.
배우들은 은근 호화 캐스팅이더군요. 일본 영화를 거의 보지 못한 제가 아는 얼굴들이 꽤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지요. 제작비를 많이 쓰긴 썼구나 싶었습니다. 배우들도 원작의 이미지에 딱딱 잘도 들어맞는다는 느낌이고, 아역배우들은 잘도 이렇게 비주얼이 딱 매칭되는 애들을 찾아냈구나 싶었습니다. 쌍둥이 얀보, 만보의 경우는 이건 뭐... 우라사와 나오키가 사실은 얘들 데려다 앞에 두고 캐리커처를 해서 그림을 그렸던게 아닌가 싶은 수준이고, 애들 연기하는 것도 보는데 얼마 전에 어느 분이 말씀하신대로 CG로 복사해서 붙이기 한 것 같은 똑같음이 압권이더군요. 덤으로 칸나 엄청 귀엽습니다. 아기 때 살인미소, 유치원 때 필살미소, 그리고 에필로그에 나오는 소녀시절에는 '칸나, 너 어쩌다 이렇게 됐니!' 어흐흑, 슬퍼요, 너무 슬퍼요.(...)
아역배우의 연기가 형편없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솔직히 어설픈 건 사실입니다만 그 평에 대해서는 '글쎄?'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영화 보는 기준으로 보면 전 일본인들의 연기 전체가 이상하다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연기력을 논하기 이전에 그냥 스타일이 달라요. 일본 실사 영상물을 보다보면 배우들의 연기가 일본인들만 자연스럽다고 납득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건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요. 전 예전부터 일본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나도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는데, 영화 열 몇편과 드라마 몇개를 본 다음에는 그냥 저게 저들의 정서고 스타일이라는 결론을 얻었어요. 마치 애니메이션 성우들의 연기처럼 과장스러운게, 영화용 연기라기보다는 무대용 연기라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일본의 영화가 세계적으로 흥행성적이 별로일지도 모르겠는데;
전 원작팬도 아니고 사실 '몬스터'와 '20세기 소년'에서 보여준 우라사와 나오키의 스타일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중반 이후로는 도무지 뭘 보고 있는지 알 수도 없고 상관도 없는 경험을 했지만('플루토'는 좋아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톰이기 때문이고) 이 영화는 원작을 안본 사람에겐 권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완벽하게 원작을 본 사람들을 위한 영화에요. 원작을 안보고 가면 중간에 지쳐서 나가 떨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사실 저도 20세기 소년의 내용은 반 이상이 희미했기 때문에 기억이 안나는 부분들에서는 거침없이 집중력이 끊겼습니다. 근데 역시 원작팬들이 욕하는 경우는 잘 이해가 안가네요. 이거 그야말로 원작을 영화로 옮겨놓는데만 총력을 기울인 물건이던데.
철저하게 원작에 기반해서 원작을 본 사람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실패의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뭐랄까, 20세기 소년 자체가 별로 영화로 보고 싶은 물건이 아니어서일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다 보고 나니 '20세기 소년은 만화로 충분했구나. 애니메이션도 필요없네'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건 몬스터도 플루토도 마찬가지 아닐까. 전 아톰이 좋아서 플루토를 보고 있지만 이게 만약 애니화된다면 딱히 보고 싶다는 마음이 안드는군요. 즉 만화 외의 매체로 옮겨놨을 때 기대할만한 메리트가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
그외에는 이제와서 6, 70년대의 풍경을 그리며 그리움과 향수, 로망을 이야기해도 그게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것 같다는 거죠. 일본사람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확실히 그렇지 않은가 싶어요. 일단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은 영화를 잘 안보는 층이거든요. 전에 영화계 관련자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보는 세대는 아직까지는 '젊은 세대'라고 합니다. 이제야 30대까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고 해요. 10년 뒤에는 40대까지도 확장될지도 모르겠고. 물론 몇몇 영화처럼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요. 그런 관객들에게 있어서 그 시절은 별로 매력있는 배경이 아니라는 겁니다. 게다가 유명한 만화 원작이라는 점이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고.
마지막에 2부 예고편이 나오긴 했지만 과연 우리나라 개봉이 될지 모르겠네요. 3부작을 동시에 촬영했으니까 일본에서야 개봉이 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물론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으면 좋겠습니다. 보면서 매우 힘들었기 때문에 1부를 다시 볼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2부, 3부는 나오면 꼭 보러갈 거에요.
자, 그럼 여기부터는 스포일러와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입니다
친구의 목소리가 아주 카리스마 만빵이더군요. 오오, 멋있어. 과연 교주님이야. 목소리 좀 간지나는데? 하지만 사다키요의 핫토리군 가면은 만화에서라면 몰라도 현실에서 보자니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싸구려 느낌이다. 희극적이라던가 그로테스크 같은 뭔가 그럴싸한 표현으로 말해주고 싶지 않고 그저 닥치고 싸구려 느낌. 애들 때라면 모를까 어른 되어서 그걸 쓴 당신, 미안하지만 좀 싸게 보여.
제작비는 쓸데없이 낭비 많이 했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습니다. 2부, 3부에서 뭘 보여줄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1부는 그래요. 어린 시절의 마을을 재현하는데도 돈 꽤 많이 들어가긴 했을 것 같은데... 마지막에 거대 로봇이 튀어나와서 난동을 부릴 때도 '제작비는 좀 썼네'라는 느낌은 들지만 딱히 스펙터클하다거나 멋지다거나 하는 느낌이 안듭니다. 정말로 돈 들인 보람이 없어서 차라리 좀 대충대충 만들지 그랬냐는 생각마저; 이 영화는 샌프란시스코, 런던 등의 배경을 현지촬영했지만 이건 그야말로 쓸데없는 돈낭비라는 느낌밖에 안 들어서 5개국 현지로케의 신화를 보여준(...) 다찌마와 리를 본받으라고 말해주고 싶고.
근데 핵폭발이 일어난 상황에서 바로 그 근방에 있던 녀석들 다 어떻게 살아나는 거지? 원작에서도 같은 전개였던 것 같긴 한데 그때는 어떻게 살아났더라? 그냥 머리만 하얘지고 끝났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