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지난주에 보려다가 여차저차한 사정으로(늦잠이라고는 절대로 말 못함) 이번주로 미뤄서 보게 된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 왕자'. 덕분에
'인디아나 존스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을 먼저 보고 말았습니다. 요즘 영화관 무지 자주 가네요. 블록버스터 시즌은 즐겁긴 한데 왠지 힘들어......;
일단 3줄 감상 때리고 시작하죠.
1. 볼거리 하나는 착실하게 업그레이드됐다. 100% 전작보다 나은 후속편.
2. 왜 여자들이 피터한테 꺅꺅거리는지 이해했다. 이 자식, 혼자서 미모도가 업됐어!
3. 믿는 자'만' 구원받는다. 또한 아슬란의 종교 마케팅은 '신도가 되기 전까지'만.
...이것만으로 끝나면 심심하죠? 일단 저는 무척 재미있게 본 영화였습니다. 전작 때문에 별로 기대치가 높지 않았던 것도 도움이 된게 사실입니다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극장에서 보기에 좋은 영화인 것은 사실입니다. 돈을 투자해서 만든 만큼 볼거리가, 그것도 판타지 팬이라면 소품 하나하나부터 시작해서 스펙터클까지 시종일관 즐거워할만한 볼거리들이 가득해요. 전투씬 부분도 꽤 볼만했고요. 판타지스러운 공중강습부터 시작해서 현란하지는 않았지만 갑옷 입으면 저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도 꽤 날렵한 거라는 느낌이 들게 해주는 검투씬 등도 그렇고. 주요인물들 행태가 찌질한지라 스토리라인이 어쩔 수 없이 찌질한 것은 사실이고 사상적으로도 거부감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피터가 훈남이고 캐스피언 왕자도 은근 미소년이라 여성 관객들만 흐뭇하게 만들어주고 남성들이 흐뭇해할 포인트가 아무것도 없다는 게 정말로 슬프긴 하지만!(수잔이랑 루시는_no) 그래도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뭐?) 찌질하긴 하되 적당한 완급이 있는 스토리에 훌륭한 볼거리가 매치되었으면 표값이 아까울 일은 없죠. 물론 취향 따라서 '미소녀가 없는 상황에서 이 반감까지 이기라니 너무한 것 아니냐! 난 이 영화 재미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음악도 꽤 좋았습니다. 특히 엔딩곡은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OST를 멜론에서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참이에요.
다만 자막은 좀 거슬렸습니다. 아예 대사가 없는데서 자막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몇번 있었어요. 그리고 분명히 1300년이 흐른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영화 내에선 내내 100년이라고 말하다가 맨 마지막에 수잔이 '난 너보다 1300살이나 나이가 많아' 한번. 뭐 어쩌라는 거냐 이건-_-;
개인적으로는 2편과는 비교도 안되는 볼거리들이 풍성하게 준비되어있다는 3편이 기대되는군요. 스케일 큰 성 세트 등등으로 환상적인 효과를 내주고, 이종족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구현한 CG는 무척 즐거운 볼거리였습니다만 역시 스펙터클한 맛은 좀 부족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런 부족함이 3에서 메워지길 기대합니다.(이러쿵저러쿵 해도 결국 이 영화는 '볼거리'에 기대를 걸고 나머지는 기대도를 팍 낮추고 가서 봐야 재미있을 거라는 이야기)
자, 그럼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분이 듬뿍 함유된 이야기.피터, 캐스피언 이 찌질한 자식들아!
아, 솔직히 피터랑 캐스피언은 보는 내내 그 찌질함에 울컥울컥. 아니 뭐 물론 피터가 훈남인 것은 인정해요. 같이 보러 간 동생도 '오빠, 그 피터역 맡은 애랑 캐스피언역 맡은 애들 너무 귀엽더라!>ㅂ<'하고 좋아하더라고요. 에드워드 지지파도 많은 것 같던데.(...) 하지만 미소녀가 없어! 미녀가 없어! 왜 '미'자 붙을만한 존재는 남자들 뿐이냐!ㅠ_ㅠ 수잔이랑 조시는 진짜 완전 안습_no 똑같이 나이 먹었는데 어쩜 그렇게 안 예쁘고 안 귀엽게 커버린 거냐, 너네들은. 정말 슬프다!
이 훈남 피터 & 캐스피언이 하는 짓이 정말 찌질합니다. 잘난 척할 의욕만땅으로 무리한 작전을 세운 피터나 자기 욕심을 내세워서 그나마 맞아떨어져가고 있던 작전을 망쳐버린 캐스피언, 거기에 물러날 타이밍도 모르고 때려박은 피터의 찌질합격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병력 절반을 희생시켜놓고 서로의 탓만 하는 꼬락서니라니. 피터는 등장부터 나니아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온 후유증을 겪어서 찌질이가 되어있더니 나니아 가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기질을 보여주면서 찌질함을 온 나니아에 떨치더이다. 사실 결국 아직까지도 완독하지 못한(네버랜드 클래식 일곱권을 다 사놓고 기독교적 사상 등등이 걸리적거려서 끝까지 못읽었음) 원작에서는 분명히 피터가 한번 환란을 헤쳐나온 영웅으로서 어린 캐스피언 왕자를 이끌어주는 스승역할이었는데 이건 서로 동급위치에서 투닥거리니, 거기에 뭔가 되도 않는 수잔과의 로맨스가 스리슬쩍 끼여드니 이렇게 된 것도 당연한 결과일지도. 뭐 적인 미라즈 왕 일파도 찌질한지라 수준이 적당히 맞아떨어지긴 하는데-_-;
그래서 인물은 맘에 드는 녀석 찾기가 힘듭니다. 일단 피터는 찌질하고, 캐스피언도 찌질하고, 수잔은 전투력은 강력한데(사람 죽이는데 아무런 망설임도 없는 잔혹무쌍한 명사수가 되었다;) 뭔가 외모로나 감정적으로나 확 어필하는 맛이 전혀 없고, 에드워드는 사실상 비중이 없고, 루시는 이런데서 종종 나오는 용기 있고 순수한 어린아이 캐릭터 이상도 이하도 아닌지라. 개인적으로는 쥐 기사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자식들 잔혹한 주제에 너무 귀여워. 이런 종족이 현실에 있다면 난 당장 팬클럽을 결성해버릴 거야;ㅁ;
아, 근데 이 영화는 헐리웃 영화 티내는 건지 피가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안나옵니다. 칼로 사람 베도 피가 안나오는 것은 물론이요 방금 사람 몸속에 들어갔다 나온 따끈따끈한 칼날에도 피 한방울 안묻어있어요. 피를 볼 수 있는 것은 피가 직접 대사로 언급되는 순간뿐입니다. 정말 귀한 피지요.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 리얼리티를 바라는 사람은 짜증날 수도 있겠지만, 잔혹도가 옅기를 바라는 사람은 편하게 볼 수 있기도 해요.
그리고 역시 영화에서도 드러나는 기독교적인 부분은 좀 맘에 안듭니다. 아슬란이 문제에요. 아직 어른이 아니기 때문일까, 혼자서 순수함을 간직한 채 아슬란의 존재를 알아챈 루시가 스스로 찾아가기 전까지는 구원의 손길을 뻗쳐오지 않습니다. 1편과는 다르게요. 그래서 예전과 마찬가지로 아슬란이 자신들을 도우러 오길 기다리던 4남매는 실패를 거듭하게 되죠. 그리고 종반에 루시가 찾아가서 '왜 예전처럼 우릴 도우러 오지 않아요?'라고 물으니 하는 말이 '같은 일은 두번 반복되지 않는단다' 이게 저한테는 이렇게 들렸습니다. '신이 몸소 신자 모으러 종교 마케팅 나가는 건 한번으로 족하단다. 일단 신도가 된 이상 구원을 바란다면 빨리 찾아와서 고개를 조아려야지?' 아이쿠, 그렇군요. 참 위대하셔서 좋겠습니다, 아슬란. 그리고 루시가 구원을 청하자 그때부터는 1300년간 봉인되었던 마법의 힘이 아낌없이 발휘, 압도적인 병력차와 병기의 차이 따윈 코웃음을 치면서 무시하고 죄다 쓸어버립니다. 정말로 믿는 자'만' 구원받는, 스스로 뭔가 해보려는 자가 성공하지 않고 신에게 기대어 구원을 구하는 자'만'이 구원받는 이 행태는 아스트랄한 느낌밖에 안들어요. 이래서 제가 원작을 끝까지 못봤죠-_-; 뭐 그때보다는 둥글둥글하게 넓은 취향을 수용할 수 있게 된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2시간의 상영시간 동안 조금도 지루해하지 않고 끝까지 봤어요. 역시 올바른 방향으로 기대를 잡았기 때문이겠죠. 이 영화에서 인물의 매력이라던가 공감이 팍팍 가는 스토리를 기대하지 말고 볼거리에 시선을 집중하세요. 그래야 이 영화를 100% 즐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3편도 되도록 빨리 개봉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