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컴퓨터 학원 이야기.

아마도 몇년은 지났을 것 같은, 너덜너덜해진 광고용 플래카드의 모습. 그래도 홈페이지 주소가 써있는 것을 보면 고작해야 4, 5년 정도 지나지 않았을까 생각되지만 왠지 느낌이 그 이상으로 오래되었을 것 같아요. 저런거 보고도 뭔가 배우러 가는 사람이 있을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요즘은 굉장히 전문적인, 혹은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다니는 컴퓨터 학원만 남았지만 옛날에는 컴퓨터 학원이라는 곳이 꽤 많았습니다. 정확히 뭘 가르치냐고 하면 사실 컴퓨터가 그다지 쓸모있는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인터넷도, 심지어 VT기반의 통신서비스도 안되는 컴퓨터 따위 어설픈 게임기일 뿐!) 쓸모있는 거라고는 올바른 타자법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외에는 DOS 사용법을 비롯한 기본적인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쳤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컴퓨터라는 쓸데없이 어렵기만 한 물건을 게임하는데 쓸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는 곳이었다고나 할까.

물론 이건 엄청난 편견! 왜냐면 저는 컴퓨터 학원을 안다녔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독수리 타법을 쓰고 있죠!(어이)

친구들의 말을 종합해본 결과 저런 편견으로 가득찬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이고 실제로 저는 그 시절에는 컴퓨터를 게임하는 것 이외의 용도로는 전혀 써본 적이 없어요!(당당) 아, 생각난다 생각나. 젤리아드라던가 페르시아 왕자라던가 킹콩, 다이하드 같은 게임들이. 지금 보면 이게 뭐야 싶을 정도로 조악한 그래픽이었지만 당시에는 그거 하나 하려고 얼마나 광적인 집착을 보였었던지... 후후후. 게다가 저희집은 모니터가 컬러가 아닌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로 출력되는 녹색의 화면이었기 때문에 컬러 모니터를 갖춘(컴퓨터도 있는) 컴퓨터 학원이 정말 대단해보였습니다. 게다가 이 컴퓨터 학원이라는 곳은 토요일에는 수업 대신 컴퓨터실을 개방해서 게임하러 놀러 들어갈 수 있었거든요!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했죠. 아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곳이 바로 악의 온상이었던가!(...)

시간이 지나 컴퓨터의 쓸모도는 그때와 비교하면 62억의 제곱승배 정도 상승했고, 성능은 애니악과 XT컴퓨터의 차이 그 이상으로 벌어졌으며, 가격은 물가대비로 치면 10배 이상 낮아지지 않았을까. 덤으로 사용법도 상당히 쉬워져서 이제 컴퓨터 학원 같은 곳을 돈 내가면서 다니지 않아도 쉽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죠. 물론 사용하면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는 여전히 왕짜증이고 미스터리어스하며 학구적이기까지 합니다만 현대인다운 무심함으로 넘어가기로 하고. 어쨌든 지금은 컴퓨터는 게임기 이상의 훌륭한 가치가 있고 전문적인 뭔가를 원하지 않는 이상 컴퓨터 그 자체를 원해서 학원에 가는 사람은 없는 세상이 와버렸어요. 아, 과연 21세기! 컴퓨터의 보급률에 대해서만은 2, 30년 전의 예측이 정말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긴 했다니까요.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21세기가 되어서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당장 10년 전만 떠올려봐도 너무 달라졌어요. 컴퓨터가 발달하는 만큼, 보급되는 만큼,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문득 느끼게 만들어준 낡은 플래카드였습니다.

덧글

  • intherain 2008/01/08 12:37 # 답글

    ..근데 저거 안망하고 아직 운영되고있을까요(..)갑자기 그런생각이;;
  • Sirjhswin 2008/01/08 13:43 # 답글

    확실히 세상은 어떤 형태로든지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걸 실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예전에 인터럽트나 이스2스페셜, 프린세스메이커, 울펜슈타인 3D, 둠1-2 등의 게임을 해봤는데 정말 재미있었지요.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그래픽이 비교도 안될만큼 발전했습니다.
    그때는 울펜이나 둠2만 보고도 그래픽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월 참 많이 변했지요...

    하지만, 게임 자체는 그때가 더 재미있었던거 같네요^^...
  • 강철마왕 2008/01/08 14:58 # 삭제 답글

    주산학원과 컴퓨터 학원을 모두 거친 세대로서 아련한 감상에 젖게 되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쓸데없는걸 가르쳤었지-.-

    베이직으로 그리는 그래픽 따위를 어따 써먹을까-.-;;;
  • windxellos 2008/01/08 20:19 # 답글

    저는 컴퓨터 학원을 다녔는데도 독수리 타법이었죠. 교정한 건 군대에 와서였습니다. 그나저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희 어린 시절에는 역시 컴퓨터학원이야말로 진정한 게임의 온상이었죠.(웃음)
  • 로오나 2008/01/08 22:24 # 답글

    intherain // 저도 매우 신기했어요. 랄까... 이미 망한 후의 흔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Sirjhswin // 그때는 희소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 지금은 뭐든지 넘쳐흘러서 쉽게 질려버리고, 소중하게 느끼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강철마왕 // 그러게 말예요. 근데 당시엔 그런 것도 뭔가 대단한걸 배우는 것 같았으니 참^^;

    windxellos // 그곳은 멀고도 아득한 낙원이었죠^^
  • 흑염패아르 2008/01/09 09:52 # 답글

    그러고보니 저도 컴퓨터 학원을 한 달 가량 다니면서 도스를 배웠군요 ㄱ-;
  • 인형사 2008/01/09 11:24 # 답글

    ... 컴퓨터 학원에서 게임이 들어있는 디스켓을 서로서로 복X해주곤 했었다죠 ;;;

    그러고보니 그린컴퓨터아트학원인가요?...
  • 창운 2008/01/09 13:37 # 삭제 답글

    하아_ 생각하니까... 억울한 느낌이 드네요..
    한 10년 전에 팬티엄2 쯤이었을까? 가격이 100만원 넘었죠...
    그런데, 요즘엔 팬티엄4 상위버젼(?)인 듀얼코어 80만원으로 살수 있는 시대가.. 흑흑흑흑흑흑흑흑흑흑흑흑(미친듯이 흐느끼고 있다.)
  • 로오나 2008/01/09 19:50 # 답글

    흑염패아르 // 도스, 너무나도 그리운 울림을 가진 말이지요.(먼눈)

    인형사 // 아득한 추억이죠. 생각해보면 동네 컴퓨터 가게에서는 게임 하나 복사해주는데 천원씩 받아먹었던 일도;

    창운 // 컴퓨터 가격은 정말 많이 내렸죠. 성능은 파격적으로 올랐고, 가격은 미친듯이 내렸습니다. 10년 전과 물가를 비교해보면 더 그래요. 지금 30만원이 그때 30만원하고 똑같겠어요 어디?
  • 창운 2008/01/10 09:03 # 삭제 답글

    음? 그런가요?
    10년전이라면 식료품, 공산품 물가를 무척 쌌어요.
    지금... 2배정도 넘었지만... 흑....
    10년전의 30만원과
    지금의 30만원 다르겠죠~
    물가 때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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